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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12:42-45)하나님은 성도의 주변에 항상 도울 자들을 숨겨 두고 계십니다.

118:1,4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찌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사랑이 영원하십니다.

지난 한 해도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은혜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올 한 해도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요한복음 1242-.

 

1. 하나님은 성도의 주변에 항상 도울 자들을 숨겨 두고 계십니다.

42에서 당시 관원 중에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많았지만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출회란 유대교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교에서 추방당하면 회당에서 예배도 드릴 수 없고,

사회적 신분과 지위도 상실하여 그 지역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두려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이 시대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 다닌다고 직장에서 채용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밝힐 믿음의 청년들이 얼마나 될까요?

만약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면 벌금 10만원을 내야 한다면, 매주 10만원을 내고

교회에 나올 성도님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참으로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자신의 믿음을 밝히 들어내지 못한 사람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믿는 자들이었으나 그 믿음이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신앙고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마10:32.33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누구든지 사람들에게 예수를 부인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직 거듭나지 못하였거나, 신앙의 초보 단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당할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끌려가실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릴 정도로 성숙하고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처럼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은밀히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 협력자로 활동하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믿음이 연약하지만 나중에는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세력 가운데에도 훗날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수고할 협력자들을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지만 열매도 없고 동역자도 없고

나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쉽게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종들을 위해 주변에 말없이 협력하는

믿음의 성도들을 예비해 두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도 홀로 우상 숭배자들과 싸우다가 지치고 낙심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을 천명이나 남겨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늘날 믿음의 동역자들이 없다고 외로워하거나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더욱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힘이요 위로자되신 예수님이 항상 함께 계십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처럼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않은 성도들이 언제 어느때 성령충만함을 받아

우리와 함께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할 때 신앙의 비겁자가 됩니다.

43절에서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관원 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밝히 드러내지 못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은 유대 사회의 지배층으로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다 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산헤드린의 공회원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무조건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다 뛰어난 가문적 배경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의 공회원이 된 사람이 힘들여 얻은 그 신분을 잃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일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죽이려 했고, 또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도

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쫓음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상실되는 것을 두려워 해서입니다.

그래서 공회원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예수를 믿는 것을 밝힐 경우 출회를 당함으로 자신들의 신분과 기득권을 상실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의 신앙을 밝히지 않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한 핍박과 불이익 당하는 것을 감내하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구하였기에 신앙의 비겁자들이 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사후 저들의 신앙은 점차 공개적으로 변모했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때나마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구하여 신앙의 비겁자가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사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사회 생활하면서 자신이 기독교인인 것을 밝힐 경우에

불이익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자신이 기독교인인 것을 밝힐 경우 자신의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여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지 그것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세상 불신자들에게 당당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충만함을 받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당할 때 다 도망하였지만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인하여

후일 대부분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기까지 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함을 받아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다짐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3.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창입니다.

45절을 보면 예수님은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를 보내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의 유대인에게는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을 통해 볼 때 그 누구도 하나님을 직접 뵌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한 모세마저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하고 다만 뒷모습만을 간접적으로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뵙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을 직접 뵈었다는 것도 아니고 바로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자는 누구냐?" 라고 물었던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정확하고도 분명한 대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므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또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고 교회가 싫고 예수님 믿기도 싫다고 합니다.

물론 불신자들의 전적 부패함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책임도 큽니다.

20세기의 성인이라는 인도의 간디는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뼈아픈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성취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한 이러한 세상의 뼈아픈 소리 앞에서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우리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성도로서의 거룩한 모습과 우리 신앙의 본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까지는 세상에게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보여주었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비추어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저 성도를 보면 마치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아’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은 예수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우리 주변에 참된 신자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내 자신이 먼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시고,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지 말고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므로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밝히 드러나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