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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국가 지도자의 위치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119:116-117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대로 저희를 붙들려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없이 저희들의 힘으로는 결코 주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 없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저희가 바라고 원하는 소망이 좌절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일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전념할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일평생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으로 믿고

오늘 이 새벽에도 주의 전에 나왔사오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환란과 핍박 중에도, 요한복음 1149-52.

 

1. 국가 지도자의 위치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49, 50절에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공회원들에게 예수님을 죽여야 민족이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야바는 주후18-36년까지 무려 18년동안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마26:57;과 요18:13,24에서 장인 안나스와 함께 유대 지도자들의 두목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고 심문하고 빌라도에게 고소한 장본인입니다.

가야바는 공회원들간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로 설왕설래하는 모습이 못 마땅하여

공회의 의장 자격으로 공회원들에게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야바는 먼저 44절에서 공회원들에게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이 말은 무식하고 어리석은 바보같은 자들이라고 욕하는 것입니다.

가야바는 공회원들이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면서

같은 공회원들을 어리석고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교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창녀나 세리나 죄인들에게 부드럽고 온유하게 대하신 것과 비교해 봐도 악한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한 마음은 없고 오직 군림하려는 마음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야바는 50절에서 예수가 죽어야만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백성을 선동하여 로마를 반대하고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수님을 모함하였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공회원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가야바가 예수를 제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밝혀지면 자신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반드시 필요한 구세주였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지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내시고, 어떠한 병자도 다 고쳐 주시며,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부패한 주검조차 살려내는 백성들이 간절히 바라던 구세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유익하면 할수록 상대적으로 산헤드린에게는 불리한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자신들의 지배와 기득적 지위와 가르침과 권위 등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반을 총체적으로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거하자니 명분이 없고, 명분을 존중하자니 자신들의 존재 기반이 위험하였습니다. 이것이 당시 산헤드린이 빠진 딜레마입니다.

이에 대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처방은 명쾌했습니다.

첫째, 철저하게 산헤드린의 유익만을 고려하였습니다. 산헤드린은 백성들의 유익이나 필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또 죄 없는 예수님을 희생시키는 데 따른 양심의 가책도 없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희생하기 위한 명분은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장에는 백성들에게 큰 호응 가운데 받아들여질지 모르나 이러한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은 결국 로마를 자극하여 민족의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온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예수의 처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입니다.

유대교를 상징하는 최고의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당시 유대교의 도덕성이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대제사장의 주장에 대해

그 누구도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산헤드린에서 받아들여지고

이것을 기점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가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가야바의 선동으로 인하여 산헤드린 공회는 결국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살해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야바의 말처럼 예수님을 제거함으로 유대가 평안을 얻었을까요? 아닙니다.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가야바는 유대 민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망하는 길로 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후 유대 사회에는 사랑과 인내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대신

바라바와 같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 로마에 대항하다가

주후 70년 티투스 장군에 의해 유대는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11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학살되었고 성전은 파괴하여 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노예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백성들은 타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피신했습니다.

결국 유대 나라는 역사적으로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가야바 같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존중하고 그 사랑의 가르침을 따르고 백성들을 잘 인도하였다면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인해 평화롭게 독립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는 악한 지도자를 만나 멸망의 길로 간 것입니다.

이처럼 국가 지도자의 위치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악한 지도자를 만나 나라가 큰 위기를 만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좋은 지도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 스스로 지도자로 자처하거나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은

자신이 정녕 사심없이 백성을 위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아울러 백성들은 지도자를 선택할 때 모든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정말 나라와 백성을 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때로 악한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십니다.

51. 52절은 요한 사도가 50절에서 가야바가 말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대언한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즉 요한 사도는 가야바가 그리스도 한 사람의 희생으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고 말한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온 인류가 생명 얻는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예언한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야바는 비록 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죽는 것이 온 민족의 살 길이라고 말했으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가야바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자기도 모르게 예언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즉 우림과 둠빔이라는 판결 흉패를 입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사사들도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투를 했었고, 다윗도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야바가 비록 악인이요, 로마제국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대제사장이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던 전통대로 가야바의 말을 통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자는 “가야바는 두 개의 혀로 말했다” 고 본문을 해석했습니다. 하나는 악마의 혀로 또 다른 하나는 천사의 혀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의인 된 성도 뿐만 아니라

악한 자나 불신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모압 땅을 지날 때 모압 왕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람 선지자로 하여금 저주대신 축복을 세번씩이나 하도록 하셨습니다.

또 나귀의 입을 통해서도 발람 선지자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답게 살지 않으면 불신자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저래?” 라고 책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불신자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달아날 때 시므이가 못된 말로 저주를 하였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며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아비새를 말렸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렇게 겸손하게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복귀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악한 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무시하지 말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 뜻을 말하게 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거짓된 목자나 거짓된 은사자들에게 경고가 되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거짓 목자나 거짓 은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은사를 행할 수 있도록 때로 허용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말 때에는 주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정죄하실 것입니다.

이단자들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도 잘 전하고 또 능력도 많이 일으킨다고 해서 자만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과 생활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되고 악한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게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을 선출해야 합니다.

한나라의 지도자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잘못된 지도자가 세워지면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깨달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정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도 이용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분별하여

따르는 저희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