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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마르다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제가 월요 새벽마다 요한 복음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수요예배도 월요새벽예배 말씀을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1140절 말씀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읽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고, 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줄로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2000년 전에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3가지의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1. 마르다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르다를 칭찬하는 말씀일까요 책망하는 말씀일까요?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마르다야 너는 왜 내 말을 안 믿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무슨 불신앙적인 말을 하였기에 이러한 책망을 받았나? 하면

39절 말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어디에서 하셨을까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시신이 있는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옮겨라는 것입니다.

시신이 들어있는 관 뚜껑을 열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평소 활달한 성격의 마르다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고 시신이 썩어 가고 있고,

시신이 썩는 냄새는 역겨운 냄새이기 때문에 무덤의 문을 열면 안 된다고 만류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였지만 예수님에게 책망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다는 종말의 날에 오빠가 부활할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라 하더라도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가

지금 당장 부활한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마르다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이 금방 죽은 사람을 살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지내고 무덤에 묻기 위해 가던 시신도 살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장사되어 나흘이나 되어 부패한 시신 앞에 서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연 예수님의 부활 능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하는 가늠자가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썩어 냄새나는 시신까지도 살릴 수 있다면, 주님 안에서 자는 모든 성도는 세월이 아무리 오래 지나 시신이 티끌로 변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신 무슨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까? 그 말씀은 25,26절 말씀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믿기는 믿었는데 마지막 때의 부활을 믿었지 지금 당장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무덤문을 열어라 하는데도

왜 썩어 냄새 난다고 하면서 열지 않으려고 있느냐? 라고 책망을 하고 계시 것입니다.

마르다는 부활 신앙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에다 지금 즉시로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순종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신앙이고, 강철같이 강한 신앙입니다.

4:18-22의 말씀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바랄 수 있는 것들을 바라는 것은 믿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며,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바로 이러한 믿음을 가지도록 요구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예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조건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순종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무조건 믿고,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를 내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9:23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므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고,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순종이 없으면 기적도 없고, 즉각적인 순종은 기적이 따릅니다.

 

2.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셨습니다. 이 일은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홀로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과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을 지시하십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들을 보면 믿음을 요구하시고 회개를 요구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 혼자 모든 일을 다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맡기심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시키십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을 옮기는 일은 사람에게 시키시고 나사로를 살리는 일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일이고 구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사로와 예수님 사이에는 돌문이 장벽처럼 가로 막혀 있습니다.

불신의 벽, 불순종의 벽을 제거해야 합니다.

무덤을 막은 단단한 돌문은 우리의 강팍한 마음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겔11:19에서

주님의 은혜를 듣고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이 바윗돌처럼 강팍하다고 표현합니다.

이 강팍한 마음 때문에 출애굽한 일 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강팍한 마음 때문에 통일 이스라엘 국가도 타락하여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또 이 강팍한 마음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십자가 못박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강팍해지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98:7,8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이르시기를 너희는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찌어다

강팍한 마음은 불순종으로 이어지고 불순종하면 마귀가 역사한다고 하셨습니다.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을 강팍한 불신앙의 바윗돌로 막아 놓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겠습니다.

항상 마음문을 열어 놓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동역하시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람의 시선의 벽, 조롱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눈물을 흘리실까 하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은 뒤 늦게 나타나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것이 아님을 몰랐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의 사랑은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썩어 냄새 나는 무덤 속의 송장이라도

능히 살려내는 강력한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는 사람들의 외침은 그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예수님에 의해 나타날 나사로를 향한 사랑의 실체, 곧 부활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현장에는 또 다른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37 그 중 어떤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을 목격하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한 의문을 품게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의 강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말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말과 유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르다, 마리아의 말과 이들의 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함께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녀들이 예수님이 죽은 오빠를 즉각적으로 살리시리라는 사실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 계시기만 했다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분명히 죽지 않게 하셨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더라도 나사로는 죽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흘리는 예수님의 눈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

그들의 눈에 예수님의 눈물은 나면서 소경 된 자는 고칠 수 있어도 죽어 가는 자는 살릴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비탄에 빠져 우는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 만일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면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나사로가 죽은 것으로 보아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것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는 비아냥거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46절에 보면 당시 그곳에는 바리새인들이 파견한 이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한 말이라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보여주는 실로암 소경 치유 사건을 어떻게해서든 부정하거나 뒤집어엎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새인들은 이웃에 대하여 정도, 사랑도, 동정심도 없는 비정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비정함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고귀한 마음을 사단에게 빼앗긴 사람들이며, 또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로 인하여 가뜩이나 불행한 인간들의 처지가 더욱 악화되고 더욱 불행케 되어 슬프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슬픔에 젖은 이웃에게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본받아 위로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 신앙인은 주님의 마음을 품은 자이기에 주님처럼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는 참 성도가 모두 되시기 바랍니다.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7절을 말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메시야 되심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도록 의심하도록 만드는 발언입니다. 이것은 천국문을 가로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행태 와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어도 죽어 무덤에 있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아냥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이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죽었고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시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서도 나사로의 소생에 대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죽어도 끝이 아니고, 무덤에 들어가도 끝이 아니며, 흙으로 돌아가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신 것은 유족과 함께 울며 위로 하거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하여, 무덤문을 활짝 열고 사랑하시는 나사로를 되찾아 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듯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 모든 무덤 문은 활짝 열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자를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친히 무덤에 들어 가셨다가 삼일만에 스스로 걸어 나오시므로 그것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 갑시다. 부활 신앙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오늘 예수님이 저희들에게 주신 말씀대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순수하게 그대로 믿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하여서는 바리새인들의 조롱의 벽을 뛰어 넘고, 무덤을 가로 막은 바위 같은 불신의 벽도 뛰어 넘고, 시신이 썩어 냄새 난다며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막으려 했던 불순종의 벽도 뛰어 넘어 우리 주위의 불쌍한 영혼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동역자가 되어서, 예수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무조건 따르는 무조건 신앙으로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하여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