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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119:112-113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도 다윗의 고백과 같이 일평생 하나님의 법 아래에 살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또한 저희들이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지 아니하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가려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사랑하고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 안에 거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한복음 1141-44.

 

1.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알고 이러한 관점에서 두 분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두 분 사이에는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의 소지가 일체 없습니다.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의 생각과 아들이신 예수의 생각은 언제나 일치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이 세상에 오신 사실에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기 주장을 하지 않았으며, 아버지 또한 언제든지 아들이 원하는 것을 다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치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과 아들이신 성자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함정을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훼손하는 일이고, 둘째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신적 권위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예수님의 신적 권위는 전혀 충돌하거나 상호 훼손하는 일이 없으며 이것이 삼위 일체 교리의 신비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우리는 종종 예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관하여 무엇을 달라는 식의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든지 아버지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서 움직이셨고 아버지의 계시의 전달자로서 일관되게 행동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의 요구를 항상 들으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언제든지 구하신 것은 자신의 뜻이나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영광이었다. 지금 막 예수님께서 행하시려는 나사로를 살리는 이 일도 아들의 요청을 아버지가 들어주는 형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심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알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생명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를 살리는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의 일관된 주장, 곧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주장을 확실히 믿게 될 것이기에 그는 아버지께 감사하였습니다.

 

2. 예수님처럼 간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41.42절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최후의 표적이자, 최고의 기적을 일으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의 시신을 부활시키려는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간구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한 자세와 내용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간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과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간구하셨습니까? 먼저 주님은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셨습니다.

41절에 보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하는 기적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일으킨 것이지만

그 권능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라는 의미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겸손하게 드리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은 받아 주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확신을 지니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기도를 이미 들어주신 것으로 확신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 기도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의와 선과 진리를 이루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지니고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의심하며 드리는 기도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은 것에서 더 나아가

늘 응답해 주시는 그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환난에서 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만 자꾸 달라고 기도해서는 합당치 않습니다.

곤란한 처지에 있어도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중보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럼 나사로를 살려내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

그리고 수많은 조문객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온전한 구주로 믿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이웃을 사랑함으로 드리는 기도가 성숙하고 고귀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 보좌를 반드시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항상 하셨기에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의 기도에 항상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 기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생활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반입니다. 또 기도는 내가 아쉽고 급하고 문제를 당해서만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기쁠 때나 괴로울 때에도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여

그 뜻을 내 영혼에 채우는 작업이 곧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고 그 뜻을 알기에 힘쓰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항상 행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기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시는 가장 중요한 요건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모두 주님같이 기도하여

늘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한 권능과 영광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주님은 장차 무덤에서 성도들을 불러내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43. 44절은 마침내 예수님께서 죽어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소생시키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크게 외치셨습니다.

이는 마치 늦잠을 자고 있는 자녀들을 깨우는 부모님의 태도와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의 이 말씀 한마디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 일어나 걸어 나왔습니다.

시신을 베로 염을 했기 때문에 그 얼굴까지 베로 가려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염한 것들을 풀어주고 자유롭게 다니게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시신을 염하는 방법은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베로 짠 모직물로 시신을 감아서 염을 합니다.

그러므로 되살아난 나사로는 겨우 걸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명령으로 그 염한 것을 풀어주니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증거하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죽어 나흘이나 되어 이내 부패하기 시작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어두운 사망 권세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는 바로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되살아난 나사로는 그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자유스러웠을까요? 죽음에서 해방된 그 기쁨과 자유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사로를 무덤에서 되살린 이 기적은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 있는 성도들을 부활시켜 주실 것에 대한 예표요 모델입니다.

주님은 장차 다시 오실 때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각 성도의 이름을 불러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 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몸은 다시 죽음을 보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한 성도를 천국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그곳은 슬픔도, 아픔도, 죽음도 없는 곳이며 영원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다해 무덤에 들어가도 예수님께서 영생을 누리는 자로 다시 깨워 주실 것입니다. 불순종하거나 자기 고집대로 살거나 세상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은 결코 영원한 기쁨과 자유의 천국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큰 소리로 우리를 깨우실 때 즐겁고 떳떳하게

예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심을 믿게 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히 기도하고,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므로 모든 기도에 응답 받기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