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드리는 첫 말씀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중 하나가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 믿음이 없다 믿음이 좋다 믿음이 좋지 않다라는 말을 하고,
설교 말씀의 마무리도 “믿으시기 바랍니다.”이며 설교의 목적도 믿게 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럼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누구십니까?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우리를 지켜 보호해주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의 정의에 가장 적합한 구절이 바로 히11:1~3절 말씀입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고,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나중에, 가까운 미래에 볼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3절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였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믿음으로 살아간 신앙의 선진들이 믿음의 결과로 구원과 영생을 얻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줍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1절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과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000년이 다 되어가도 지금까지 재림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심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의심하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하신 모든 약속들을 성실하게 다 이루어 주셨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한가지 재림만 남겨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여야 하고,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여야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성도가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민23:19에서는“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에게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시62:1,2에서 자신의 믿음을 노래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시고 더 굳건한 믿음으로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사는 모습이 달라야 합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 곧 성취될 것을 확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지만 곧 미래에 이루어질 사실을
현재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며 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 가짐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미래의 축복을 현재에도
누리는 것이 되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가까운 장래에 판검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비록 지금은 쪽방촌에서 라면과 빵을 먹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한다 하더라도 하루에 20시간을 공부하는 고통을 겪어도 참을 수 있고
미래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고 마음만은 이미 판검사인 것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원리도 이러한데 영적인 원리는 더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은 악한 원수 사탄 마귀로 인하여 세상 속에서 환란과 풍파로 고통을 겪어도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는 천국에서 면류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지금 우리는 세상사람들에게 종 노릇을 하며 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삶은 확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사람과 그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세상에서 온갖 죄를 다 지으며
쾌락을 쫓고 방탕한 삶을 살 것이지만
심판을 믿는 우리는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애쓰고,
또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즉시로 회개하며 사는 것입니다.
심판의 결과 영생의 길과 영벌의 길로 갈라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삶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영생과 영벌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만,
영생과 영벌을 아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매 주일마다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대비해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며,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즉 미래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현실의 삶의 모습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7:20에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 속에는 믿음을 가진 자는 당연히 이 세상에서 남들과 구별되는 모습으로
인생을 살기 때문에,그 열매로 하나님의 자녀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갖고 있는 특성입니다.
곧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확실함이 있기에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즉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을 믿으므로 당연히 내일에 대한 염려와 현실에 대한 불평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영생 얻는 것을 믿는다면,
세상의 부와 명예가 없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믿음을 가진 사람의 현재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마음의 풍요와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 입니다.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 없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맛보며 감사함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주는 성도만의 특권 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현재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신뢰하고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언젠가는 내가 곧 경험할 것입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사실이나,
이미 검증된 것을 신뢰하고 선택하는 것은 믿음이라 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증거로 나오는 선진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경험하지 않았고 검정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고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이성적이고 비지식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경험한 것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십자가 죽음과 부활승천,예수님의 재림,
그리고 영생과 천국과 같은 일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실은 보고,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20:29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본보기로 가장 많이 등장한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한 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믿음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된 것이 없고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이루어질 가망이 없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감으로 역전의 순간, 기적의 순간을 맞이 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은
한 마디로 바꾸면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지금 내 목숨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히브리서1:1~3절의 말씀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자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들이 왜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려고 하느냐 하면
당시에 예수님 믿는 것이 발각되면, 로마황제의 명에 따라 군인들에게 붙잡혀
원형 경기장에 끌려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자의 밥이 되거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고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믿어야 천국인데, 예수님을 믿으면 사자의 밥이 됩니다.
그런데 천국은 죽어 봐야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당시의 성도였다면 죽으면서까지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로마 시민들은 예수쟁이를 보고 바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나는 예수님 안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살려주는데 왜 어리석게도 목숨을 버리냐고,
하지만 여러분 지금 죽는 것이 두려워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어짜피 언젠가는 죽습니다.
50년 후에 지옥 가는 것보다 지금 천국 가는 것이 옳습니다.
암에 걸려 죽을 날짜를 받아 놓은 환자가 1,2년을 더 살기 위해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하고
많은 돈을 드려 좋은 약을 구하고, 최근 뉴스에는 개 구충제를 먹고 암이 치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국에 개 구충제가 품절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1,2년 더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로마시대처럼 영생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고 교회 나와서 예배 드리기 싫고
단지 세상을 즐기기 위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 길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아멘
믿음을 간직한 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재력은 결코 영원한 소망을 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믿음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믿음이 있는데,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동경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 가치, 천국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세상의 것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좌절하거나, 세상의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잠시 후면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는 천국을 얻은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자기 확신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가끔 성도들 가운데 이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새벽마다 나와서
‘하나님 반드시 사업을 성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또 어떤 총각은‘저 자매와 반드시 결혼할 줄 믿습니다’고 매일 한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또 어떤 엄마는‘우리 아들이 서울대에 갈 줄 믿습니다’라고 백일 특별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기도들이 응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만약에 사업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고,서울대에 떨어졌다면,
기도가 부족하거나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잘못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기도했으니,하나님은 무조건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한다.
내가 매일 철야 기도와 새벽 기도와 특별 기도를 했으니,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이며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욕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내가 생각하는 신념이나 자기 확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신념이나 자기 확신은 내 중심이지만, 믿음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곧 믿음이란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로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하나님의 말씀’곧‘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 가나안을 찾아 떠나고,아들을 달라고 하여 낳았고,
낳은 아들을 스스로 번제물로 드렸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약속을 갖은 고생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지 않고 기대하는 것은 자기 확신이나 신념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 뜻과 내 생각대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물질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건강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문제가 있습니까? 다음 세대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와 삶이 내 욕심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하는 영적인 눈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영안이 밝아져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실체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인간들에게는 비현실적이고 실현불가능 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죄악 된 인간은 영적인 일들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영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불신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보지 못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만을 인정하며 과학적인 증거가 확실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믿음이 없어 영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자요,하나님을 모르고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 드리면,
무인도에 갇혀있는 두 사람이 구조선이 오기만 바라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은 배가 오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 춤추지만 다른 한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만 보고 있는 반면,
배가 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망원경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망원경을 가진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믿음은 타락한 인간에게 진리를 보게 하는 영적인 눈으로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심판과 고통과 좌절과 사망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부디 영적인 일들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 곧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사실들에만 매여 있지 말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진리와 그의 약속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영안이 밝아져서 크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믿음뿐입니다.
2절을 보시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선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오직 믿음뿐이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이 일류대학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고, 좋은 집과 넓은 땅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 지위나 명성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 곧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에 따른 열매를 맺는 삶을 통해
우리의 가치를 매기십니다.
즉 믿음의 사람만이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전체에서 이에 대한 구약 성경의 많은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중 특별히 야곱을 보시면, 야곱은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모를 속이고 형제를 속이며 친척을 속였습니다.
부를 쌓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살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적 모습을 가진 야곱을 사랑하시고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인간적인 욕심이 많고 자기 계산대로 일하며 살아갔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큼은 확고 부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에게 매달렸던 창세기 32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하나님밖에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약속도 끝까지 믿었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
곧 창32: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는
약속을 내세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유일한 수단은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인간적인 면모나 우리의 지식 혹은 사회적인 지위를 보지 않으십니다.
오직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가?,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가? 하는
믿음을 보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합당한 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도덕적,윤리적 선행 보다 믿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녕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선한 자녀로 인정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믿음으로 인정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의 생활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매여 있지 말고,
영안의 눈으로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진리와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그래서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 것에 얽메이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내 욕심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천국의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시고
내가 속히 오리라 약속한 주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희에게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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