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신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그때나,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분인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으며,
간혹 예수님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한 술 더 떠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지금도 어두움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태양이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태양에 관심도 없이 오로지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양을 만드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태양을 바라보고 스스로 돌게 하셔서 밤낮이 바뀌게 하시나
사람들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당연히 해가 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게 하셔서 계절이 바뀌게 하시나
사람들은 겨울이 지나면 당연히 봄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태양이 있음을 감사하지 않으며
때로는 태양의 존재 조차도 생각지 않고 무감각하게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이라는 너무나도 짧은 생을 사셨고
더군다나 예수님의 사역의 기간은 3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3년 기간이지만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시어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고, 성경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 하시는 3대 사역을 하신 후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삼 년이라는 기간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세 분류 나뉘어졌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제자들과 같은 분류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줄 알면서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 들이지 않는 학자들과 같은 분류와
예수님을 신성모독을 한 이단자로 낙인 찍고 믿지 않는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분류로 나뉘었습니다. 무지한 백성들은 이 세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라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눈과 귀, 마음 등이 모두 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13:13~15)에서는 보는 눈이 있는가 하면 보지 못하는 눈이 있으며,
듣는 귀가 있는가 하면 듣지 못하는 귀도 있으며,
또한 깨닫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우둔한 마음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각기 다르게 나타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함을 증거해 줍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 받은 천국 백성과 그렇지 못한 지옥의 자식들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알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되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명백하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섬기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증거이고,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마귀에게서 사망 권세에게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 사실에 늘 감사하면서
더욱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하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저 불상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하겠습니다.
2.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2절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 곧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얻게 되는 위대한 축복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영접하는 자’ 라는 말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녀와 노소, 빈부와 귀천,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학력과 지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자들 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가졌고
그분의 은혜와 축복에 참예할 수 있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착각이고 오해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마3:9에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 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이 사실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름으로 헛되이 수고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세주마저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열심히 산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니듯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종교적 열심으로 달음질한다고 다 상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실패는 열심이 없었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열심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서 열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23:23)그들은 밭에서 나는 채소에 이르기 까지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히 구별하여 드렸으며, (녹18:12)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서 지킬 정도였습니다.
(행23:21)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지목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을 세우는 그들의 모습에서도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구주로 보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는 헛수고이고, 그들의 열심은 멸망으로 달려가는 지름길이 되고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믿게 된 것을 최고의 복으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이르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으므로
성경이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마귀의 속임이므로 단호하게 배격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이를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원하는 가문이나 성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는 못하지만
어떤 가문의 어떤 성씨를 가진 사람이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3. 성도는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성도인 우리가 매우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친자임을 확실하게 밝혀 줍니다.
친자 관계가 성립되는 유일한 조건은 출생을 통해서인데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친자라는 공식적인 인정인 셈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롬8: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라고 하였습니다.
후사란 유업을 이을 자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친자임을 확증하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순한 종교 생활이나 여가 선용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기 이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상 사람들이 칭송하는 스타든지, 그 이름조차도 거부될 정도로 혐오의 대상이었든
예수를 믿는 순간에 모두 지나가 버리고 새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두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다른 성도들을 볼 때에 그의 과거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자기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 로서의 생활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것, 주님께서 용서하신 것들을 들추어내는 것은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이며,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폄하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과 예수의 구속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미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거는 무의미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예수 안에 있음을 나타내 보여 줄 수 있는 현재의 생활입니다.
지금 현재의 생활의 증거야 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인 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 이여야 하고 우리의 삶이 전도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착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게 된 까닭은 (행2:42-47)
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아름다운 생활이었습니다.
우리가 종교적인 열심만 있고 믿음에 합당한 생활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광신도로 몰아붙이게 될 것입니다. 성도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을 행하고 덕을 세우는 일들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입증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성을 추구하고 더러는 은사라든지 능력 등에 특별히 관심을 보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다운 생활,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임을 유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 그 신분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신실하고 진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저희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말씀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저희들이 말씀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주심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는 선하고 착한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밝히 증거하여
저들에게 구원하는 길을 제시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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