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믿음의 출발입니다.
이 말씀 한 구절을 믿지 못하면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없고
이 한 구절을 믿으면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지창조를 하나님 한 분이 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함께 하셨습니다.
잠시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 드리면,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출생하셨고,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게서 출래 하셨습니다.
출생은 말 그대로 낳으셨다는 뜻이고, 출래는 나오셨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도 나오셨습니다.
관련구절은 요20:22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출생하셨고 성령님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나오셨지만,
세분 다 같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신학적 용어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창조사역을 세분이 다 함께 하셨는데 그 증거가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요1:3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본문 말씀에서의 그가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롬11:36)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렇듯 성경은 분명하게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지라도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라는 말씀은 모든 것이 예수님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며,
인간이나 천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인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이고,주인과 종의 관계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에게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를
찬양하고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교만할 수 없고, 자기를 낮출 수 밖에 없고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가 되십니다.
인간뿐 아니라 천사들도 예수님께서 만드셨고,
타락한 천사인 사단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단의 일과 예수님의 사역을 비교하여 설명하다
보니 마치 사단이 예수님의 라이벌처럼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능력이 많고 뛰어나고 하나님의 대적자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만으로도 쫓겨나는 하나님 앞에서는 무능력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단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 때문입니다.
막1:23,24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이러듯 마귀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신 줄 알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한 켠 구석에서 가난한 일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짧은 생애를 살다 가신 예수님께서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분의 사상이 위대하기 때문도 아니고,그분의 생활이 특별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이고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온 세계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소크라테스나 공자,석가와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온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아는 우리가
모르는 그들에게 전하고 가르쳐 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창조주라는 사실을 우리가 아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로 그러한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도 그 사실을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도 알고 구원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저들이 듣든지 아니 듣던지 그들이 믿든지 아니 믿든지 선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만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4절에 보시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 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36회나 나오는데,이 생명은 ‘영생’ 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으며,
영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에게 와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에게 범죄하므로 인하여 죽어야 하는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것처럼 인간에게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 인간을 영원히 사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며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영원한 삶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두셨기 때문입니다.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 누구도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왜 자살을 하느냐? 하면 마귀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녹18:18 이하에서 어떤 유대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길에 대해 문의 한 것을 보면
지금이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나 인생에 있어 최대의 관심사는 영생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도자들 중에 영생에 관해 아는 사람들이 없었고
그들의 지도를 받는 일반 백성들은 더더욱 무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9:36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그들의 영적 무지 상태를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능통하여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백성을 가르치기는 했으나
영생의 길은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잘못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영생의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영생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었으니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님 안에만 있으므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배척하는 사람,
자기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은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이 생명이 그 아들이신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 무지했던 탓에
그분을 믿지 않고 도리어 배척했으므로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석가나 공자, 모하메드는 안되고 꼭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종교는 다 똑같은데 굳이 예수님만을 고집하는 것은 편협하고 독선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답은 명백합니다.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종교는 생명의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은 영생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처럼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은
종교적 전통이라든지 율법,계율,고행 등으로 영생에 이르게 못하는 것들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성도는 영생의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다는 그 말씀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영생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5절에 보시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라고 말씀합니다.
선의 세력을 빛으로 표현하고 악의 세력은 어두움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빛’은 메시아를 뜻하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죄악의 어두움을 밝히는 구원의 빛이요,
무지의 어두움을 밝히는 진리의 빛이며,절망의 어두움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이 친히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내어쫓는 빛이십니다.
그렇다면 빛과 대립되는 어두움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어두움’으로 묘사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의 영적 상태는 깜깜한 어두움입니다.
그들은 어두움에 속하여 영안이 어두운 영적 소경이라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악에 둘러싸여 있으며,무지와 절망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처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입니다.
그들이 어두움에 거하기를 고집하는 한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장애물이나 어떤 위험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면 이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성도 여러분,죄인들이 왜 계속해서 죄를 범하게 됩니까?
어두워서 그것의 실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어두움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바로 보려면 빛이신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을 믿게 될 때에야 비로소 구원의 길이 보이고, 진리의 지식을 가지게 되며 소망이 견고해지게 됩니다.
지식이 많고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위치에 있어도 예수가 없는 이들은 어두워서 길을 찾지 못하므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빛이신 예수를 알고 또 믿게 된 것이 복 중에 복임을 알아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했더라면 이 어두움의 죄악 세상에서 이 세상 임금인 마귀가 이끄는 대로 살다가
언제 지옥으로 떨어질지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아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으되
우리는 어두움에 속하지 않고 빛 가운데 있어서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내가 더 살고 싶다고 살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잡은 최고의 행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에게 만이 영생의 길이 있고
진정으로 예수님이 어두움을 밝혀 인생을 구원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참된 빛이심을
다시 한번 깨달아 알고 감사와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저희들이 영생을 얻게 하시니 찬양합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영적 소경이 되어 갈길 몰라 방황하며 고생하고 있으나
예수님께서 빛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시고 우리의 갈 길을 밝히 비춰주시니 경배를 드립니다.
이제 빛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므로 나 또한 빛의 자녀가 되었으니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어둠 속에서 헤메이는 저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영생의 길이신 예수님을 전하여 저들도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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