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세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우리는 지금까지 창세기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의 일생을 추적하여 그 삶을 조명 해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그 당시의 최고의 문명을 이루고 사는 도시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세공업자로 부유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아내 사라와 어린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오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은 단 한명의 자녀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열국의 아버지로 삼겠다’,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비전으로 품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삶은 결코 평탄하지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에 막상 왔으나

그 땅은 심한 가뭄으로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 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먹을 것을 찾아 이웃나라 이집트에 들어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내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내를 되 찾을 뿐만 아니라 양과 소와 종을 선물로 받아 헤브론으로 돌아와 그것으로 목축업을 시작하여 재산을 불려 나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롯과의 분쟁이 생기고 아브라함은 아들과 같은 조카 롯에게 땅의 선택권을 내어 줍니다. 롯은 자신이 보기에 좋은 땅을 차지하여 들어간 곳이 바로 소돔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근동지방의 최강자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쳐들어와 소돔을 함락하고 그곳에 있던 롯을 포로로 잡아 갑니다.

그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자신의 별동대 318명을 거닐고 적을 물리치고 롯을 구출해 냅니다.

그때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영접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자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하시니

이번에는 아내 사라의 권유로 사라의 몸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치 않으시고 몸소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이라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엄청난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불심판을 내리시는데

아브라함의 끊임없는 중보기도로 롯은 목숨을 부지하긴 하지만 세상 것을 쫓아간 대가로 인하여

부끄러운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고 맙니다.

한편, 하나님의 심판에 두려움을 느낀 아브라함은 20여년간 살던 헤브론을 떠나 블레셋 땅으로

들어 가는데 그곳에서 또 자신의 양과 소와 종들 뿐만 아니라 아내까지 빼앗기는

나약한 늙은이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연약하고 연약한 인간이 수 없는 실패를 거듭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철회 되지 않습니다.

또 한번의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빼앗긴 아내와 재산을 되찾고

브엘세바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 합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 나이 100세 때에 25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꿈에도 그리던

아들 이삭이 태어나는 광영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사가 기쁨과 슬픔이 공존 하듯

사라와 하갈의 갈등과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으로 적자 이삭을 얻는 대신 서자이긴 하나

장자 이스마엘을 버려야 하는 인간적인 고통도 따랐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12주간에 걸쳐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인생의 여정을 돌아 보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본 아브라함,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하여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 내고

드디어 꿈이 성취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믿음 하나로 인고의 세월 각고의 세월을

보내고 아들을 얻어 그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청소년이 된 어느날

하나님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명령 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평, 불만하지 않고 묵묵히 말씀에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아브라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 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의 사람 입니다.

아브라함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찾는 기도의 사람 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두명의 천사와 함께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육신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 입니다.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일은 항상 옳은 일이시며 항상 선한 일이시며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돌아 온 것을 느끼고 체험하였기 때문 입니다.

셋째,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가장 최상의 선택이며 복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존경하는 부모님 !

우리의 자녀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사랑의 결실이고, 고통의 결실이며, 나의 분신이고 나의 미래이고 나의 희망이고 비전이 바로 우리들의 자녀가 아니겠습니까?

이 귀한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키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현명한 방법이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듯이

나의 자녀들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 내 자녀가 가장 잘 되게 하는 것이며,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고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자녀들이지만 우리가 내 자녀들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모인 우리도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녀의 인생을 책임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를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그럼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공부 입니까? 아닙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내 자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자녀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 입니다.

죽어있는 내 자녀를 한시라도 빨리 살려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 때가 되면 믿겠지. 좀 더 커면 믿음이 생기겠지.

나중에 좋은 대학가면 믿음이 좋아지겠지, 천만의 말씀 입니다.

그런 생각은 마귀의 속삭임이고 마귀의 속임수이고 마귀의 함정 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내 자식이 물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데 마음만 아파하고 발만 동동거리며 어떻게 되겠지 하고 지켜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 내 사랑하는 자식이 불이 난 건물에 갇혀있는데 그것을 보고도 먼 발치에서 지켜보며 빨리 빠져 나와야 하는데 하며 걱정만 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 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시라도 빨리 생명 줄을 던져 물속에서 불속에서 건져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랑의 교회 중고등부 학생 중에 몇몇 명은 1,2년 전만 하더라도 하나님은 없다 난 하나님 안 믿는다 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아이들에게 예수님 어디 계시느냐고 물으면 내 마음 속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 저절로 그렇게 되었을까요? 때가 되니 저들이 알아서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매일같이 그들에게 하나님이 너의 창조주(대속자, 구원자, 인도자, 보호자) 이심을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하여 설명하고 가르치고 증거하고 기도해서 그렇게 된 것 입니다.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믿든지 아니 믿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라 하셨는데 하물며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전도하지 않고 신앙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믿는 사람의 부모로써 직무유기를 하는 것 입니다.

6:4~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부모인 우리들에게 네 자식, 네가 사랑하고 아끼는 자식을 나에게 번제로 드려라고 말씀 하시는데도 하나님 안됩니다. 전 못합니다 이 자식은 내 자식 입니다 죽으마 사나 제가 책임지고 제가 제 방식대로 길러 보겠습니다. 하고 버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는 것은 이런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내 자식, 내 사랑하는 자식, 100세에 낳은 내 목숨보다 귀하고 소중한 자식,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부귀와 영화를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내 자식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본래부터 하나님 것인데 하나님이 달라 하시니 돌려 드립니다.

하나님이 제 자식을 죽이시든지 살리시든지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부모인 우리가 자녀들이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다짐합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 길을 올라가셨듯이

이삭이 자기를 불사를 장작을 메고 모리아 산을 올라갔듯이

우리 자녀들에게 십자가를 지워 인생 길을 걸어가게 해야 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손과 발에 못이 박혔듯이

아들 이삭을 잡기 위해 손발을 꽁꽁 묶었듯이

우리 자녀들이 자신의 자아를 묶어 주어야 합니다. 묶지 않고 그냥 버려두면 제 고집대로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세상을 살도록 내버려 두면 실패자의 길로 들어서고 말 것 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대적들을 다 물리치실 능력이 있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이삭은 100세가 훨씬 넘은 늙은 아버지를 뿌리치고 밀쳐내고 도망 갈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제단에 올려졌습니다.

예수님의 순종, 이삭의 순종은 자신이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도 부모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그것이 진정한 순종 인 것 입니다.

그 순종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된 우리가 자녀들이 지켜보는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에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우리 부모가 교회에서 주일 성수하는지, 십일조를 하는지, 봉사하는지를 보기보다는

집에서 부모님이 말씀을 읽는지, 기도를 하는지 말씀대로 살아가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아이들에게 존경 받는 부모가 못 됩니다.

요즘 저의 아들이 사춘기가 되다 보니까 갈수록 순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는 무조건 명령 한다고 듣는 나이가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부모인 제가 먼저 본을 보어야 하며 아이들에게 말씀으로 설득해야 되고 아이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자녀의 말을 들어주고 격려하고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전달 되어져야 합니다.

 

그 자녀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나이가 되면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을 따라 믿을 것인지 아니면, 믿지 않을 것 인지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만약 지금 내 자녀가 믿음이 없다면 누구 탓이겠습니까? 내 자녀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누구 탓이겠습니까? 부모인 우리 탓이란 것 입니다.

 

물론 믿음이 없어도 공부 잘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 갈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 갈 수 있습니다. 큰 부자나 정치가나 유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리 좋고 공부 잘해서 정치가가 되었어도 불법과 비리로 감옥에 들어가고

연예인이 기업가가 대통령이 자살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런 비참한 종말을 고했겠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일평생 동안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한 것처럼 아버지의 하나님에게 순종하므로 인하여

아버지의(아브라함) 하나님이 나의(이삭) 하나님으로 연결 되어지는 계기가 된 것 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으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 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도 치유되고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회복됩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임을..,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비전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 입니다.

인생에서 거친 비바람과 험한 폭풍우가 닥쳐와도 하나님을 의지 함으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그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반드시 그 꿈과 비전을 성취하게 될 것 입니다.

지금까지 중고등부 설교 가운데 소개한 사람들을 부모님에게도 다시 한번 소개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자녀들이 내일부터 23일간 주님을 찾기위해 또 한번의 여정을 떠납니다.

나와 내 자녀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시간 우리 사랑하는 자녀를 떠나보내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다 같이 부모와 자녀가 하나가 되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내 아들 내 딸을 만나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시고 내 자녀를 살려 주시고 건져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

 

 

그 동안 말씀으로 기도로 양육하지 못한 것 회개 합니다.

내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한 것 인지 몰랐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감정 내 고집 내 욕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자녀를 구속하고 속박하고 경쟁에 몰아넣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 하는 자녀들을 원래 그런 것이라하며 애써 왜면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자녀를 맡깁니다.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받아주옵소서 이제부터라도 자녀와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 읽고 제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저의 자녀가 믿음의 자녀 순종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복하는 자  (0) 2012.08.28
치유와 회복  (0) 2012.08.28
회개하는 형제  (0) 2012.08.22
베냐민과의 만남  (0) 2012.08.22
첫번째 꿈의 실현  (0) 201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