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가족들은 대기근을 피해 전부 애굽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모든 가족들을 일단 고센 땅에 머물게 하고
형들 중에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를 찾아 만나서 문안 하였다.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너희들의 생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형들은 요셉이 일러 준 대로
선조 때부터 목축업을 하였고 목축을 하기에 좋은 고센 땅에서 살기를 청하였다.
바로는 너희가 좋은대로 거하라고 허락하고 바로 자신의 가축도 관리하도록 하였다.
지난주에 우리가 고센에 대해 알아 보았는데 다시 한번 복습을 하면,
고센은 나일강 하류 삼각주에 위치하고 있어 물이 풍부하고
그로 인하여 각종 채소류와 목초지가 풍족하여 가축을 키우기에는 정말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70명의 가족들이 장정만 60만명으로 인구가 늘어날 수 있어서
이스라엘이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는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에 가까운 고센에 자리잡은 것은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애굽은 오늘의 세상을 의미하고 고센은 세상 속의 교회를 의미하며
이스라엘 가족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을 의미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교회에 머물게 되고 말씀 안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고, 참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주님 만으로 만족하다고 고백할 수 있으며, 악한 원수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고,
하나님이 주신는 꿈과 비전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소명을 마치고 난 후에는
천국으로 들어 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셉의 인도로 바로를 만난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였다.
축복이란 하나님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 당시 바로는 봉건주의 시대의 절대군주로서 그의 말이 곧 법이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거지를 만들기도 하고 부자를 만들기도 한다.
바로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바로가 일반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지
누구도 바로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를 할 수 없고 오직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뿐이다.
그런 바로에게 야곱은 만나자 마자 축복하였던 것이다.
야곱의 축복 행위는 바로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하고 나약한 일개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것은
7년 대풍년 후 7년 대기근을 보내고 있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복이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축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은 하나님을 믿는자만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도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여러분이 나중에 회사에 가서 사장님에게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은 말의 권세를 주셨다. 말이란 내가 듣고 내가 알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고 내가 깨닫고 내가 믿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면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엄청난 능력이 나타난다.
내가 축복의 말을 계속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역사하시어 복과 은혜를 넘치게 하시고
내가 저주의 말을 계속하면 마귀가 그것을 듣고 역사하여 화가 저주가 임하게 된다.
내가 정말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 사람도 축복해 줄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원수들을 미워하고 저주 한다.
그래서 만약 원수가 저주를 받았다 하자 그럼 그 저주 받은 상대가 나에 대하여 축복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그러면 마귀가 역사하여 나도
저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세상은 마귀의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고 싫어하여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말을 하고 축복하는 말을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진심이 전해져서
“아니, 내가 그렇게 미워하는 저 사람은 오히려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축복하는구나!”
하며 감동하고 깨닫고 회개하여 나의 친구로 변하여 나를 축복해 주는 사람으로 변화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눅6:27,28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렇다면 내가 하는 그 축복으로 상대가 복을 받고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마음껏 축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야곱은 바로에게 자신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음을 고백하였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결코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평가 하였다.
야곱은 매우 적극적이며 도전적이고 성취욕이 강한 야심가였으나 자신의 삶이 험악했음을 인정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부모를 떠나 길에서 잠자다 꿈을 꾸기도 하고,
20년간 외삼촌 라반 집에서 종살이 한 일, 외삼촌에게서 도망하다 잡혀 죽을 뻔 한 일,
형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자기를 죽이러 오는 줄 알고 밤샘기도,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난산으로 죽음, 외동딸 디나의 성추행,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은 줄 알고 고통 속에 보낸 20년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시므온이 정탐꾼으로 억류 된 일, 죽음을 각오하고 베냐민을 내어 준 일
그러나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은 신앙간증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한 삶이었고 그 고통과 눈물 속에서 인내와 연단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복을 주셨다고 고백 하며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말해야 한다. 결국 그 야곱의 험악한 세월이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요셉은 곡식을 백성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돈을 받고 곡식을 내어 주었고 돈이 떨어지자,
가축(밀,양,소,나귀)을 받고 곡식을 내주었고, 가축도 없어지자
토지와 자신의 몸을 종으로 팔아 곡식을 내주었다.
어찌보면 야박하여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매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우리가 교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점심을 공짜로 주고 커피를 공짜로 준다.
그러나 그것 또한 따지고 보면 공짜가 아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선 예배를 드려야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미끼인 것이다.
또한 결코 공짜가 좋은 것이 아니다. 노숙자들이나 행려자들에게 계속 공짜로 먹여 주다가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이때까지 공짜로 준 것은 온데 간데 없고 폭동을 일으킨다.
그저 주면 감사가 없고 당연히 주는 것으로 알고 안주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주는 먹이를 보면 어떤 때는 동물을 사람보다 더 잘 먹인다고 생각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호기심과 신기함을 준다.
심지어 돼지들은 매일 하는 일 없이 먹이기만 한다. 그러나 돼지들은 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 몸을 사람들의 식량으로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영혼은 무시하고 육신만을 위해 살고,
남들이야 어찌되었건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다 나중에 늙고 병들어 죽게 되면 차라리 동물로 태어나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영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런 요셉의 처사가 한편으로는 가혹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백성들이 돈을 내고 자기 가축을 내고 논밭을 내고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팔아가며 곡식을 사 가면서도 나라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하지 않고
‘이런 대기근에 곡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식량을 사갔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국민과 재산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 되고 왕의 것이 됨으로
왕권이 강화 되고 국가 충성도가 커져서 국력이 결집되어 강한 나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 토지를 개인에게 다시 돌려 주어
추수의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고, 그 나머지로 생활하도록 배려한 것은
당시의 관습에 비추어 볼 때는 더욱 합리적이고 발전적 형태의 제도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요셉은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하는 일에는 실패가 없고 성공뿐이라는 것이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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