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살인자(육신의 살인자와 영혼의 살인자를 포함)와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 오만하고 교만한 자, 등 모든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
9,10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죄의 대가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 다.
여러분은 죄악 속에 빨려 들어가지 마라. 죄를 차단하고 철저히 멀리하라.
가까이 하지 마라. 망한다.
부모는 사랑으로 자식을 낳고 기른다. 그런대 그 자식은 자라서 부모님 말씀에 불순종 하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산다. 공부해라 해도 놀기만 하고 예배 드려라 하면
도망가버리고 하지 마라 하는 술과 담배를 어린 나이 때부터 하고 나중에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살 것인가? 나이가 서른을 넘어 마흔이 다되어 가도
할 일을 못 찾고 늙은 어머니에게 빌붙어 진액을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인생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가 유공자로 정부에서 매달 100만원씩 나오는 연금으로 살아가는데
그것마저 귀신 같은 것들이 들어붙어 술과 담배와 노름으로 일주일을 못 넘기고 다 써버린다.
그리고 술에 취해 늙은 어머니에게 돈 달라 그러고 안주면 욕하고 때리고 돈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는 또 술 먹고…, 그 죄의 벌을 어찌 다 받으려고 그러는지 그러다 늙은 어머니가 죽으면 그 자식은 알코올 중독자로 노숙인이 되어 겨울에 길바닥에 자다 얼어 죽는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는가? 자식에게 문제가 있지만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다.
아이가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에게 반항하고 대들고 때로는 미쳐 날뛴다.
그러면 부모는 착하던 내 자식이 갑자기 돌변하니 자식이 잘못 될 것 같아 어떻게 할지 모른다
그러다 주변에서 저 나이가 되면 사춘기라 어쩔 수 없다. 그 시기를 넘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냥 내버려 둔다. 내버려두면 자식은 망가진다. 사춘기 일수록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
그것이 자식을 살리는 길이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절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훈계하고 때로는 매로 징계하고 소의 코에 코뚜레를 끼워 소를 끌고 가듯 끌고 가야 한다.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오니 설교 듣고 동현이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선생님 학원에 와서 공부하고 매일 같이 훈계 듣고 궁둥이 맞고
수,토, 주일에도 공부하고 예배 드려서 지난번 중간고사에서 평균 20점이 올랐다.
선생님이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성적이 오르게 해 달라고 기도 드렸더니 그대로 된 것이다. 고은이 아름이도 평균이 10점 이상씩 올랐고 예찬이도 이번도 10점 이상 올랐다.
신영이는 매번 80점 대를 유지하고 있고 치원이는 90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가만 나두어도 올랐겠는가? 아니다.
선생님이 달달 볶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라.
경기도 포천의 한 가정집에서 뇌종양 말기 암 판정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치료하려 하였으나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퇴원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던 집으로도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집세를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시집가서 살고 있던 큰누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큰 사위도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지만 장인어른을 흔쾌히 모시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비와 더불어 약물치료비가 계속 들어갔다.
온 가족이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여도 돈이 부족하였고 급기야 사위의 적금통장도 깨고 말았다
그로 인하여 사위와 딸은 심하게 다투게 되고 사위에게 얹혀 살면서 눈치를 보아야 할 상황이라
미안하고 죄스럽고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나중에는
약물치료는 고사하고 진통제를 살 돈도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진통제를 먹지 못하므로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엄청난 통증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심하였다.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급기야 큰딸에게 죽여 달라고 하소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한부 인생이고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사는 삶이 하더라도 자식이 아버지를 쉽게 죽일 수가 없었다.
자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아버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아버지를 안락사를 시켜 고통을 끝내고 남은 사람들도 살길을 찾아야 하는가?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진리는 무엇인가? 살아있는 생명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죽일 수없다.
그러나 그들은(어머니 큰누나 아들은) 가족회의 끝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기로 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목 졸라 죽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아들은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하다가 작은 누나에게 연락하여 경찰이 출동하여
자살을 막았지만 존속살해범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어머니와 큰 딸은 살인 묵인과 방조 협의로 집행유해를 선고 받았다.
이 가정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열심히 성실하게 살지 않아서?
병들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서?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지만 가난의 저주를 벗어 날수 없었고
잘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다 중병에 걸린 것이다. 그들이 가난하더라도 병들지 않으면
그런대로 힘들게 살아 갈 수 있지만 원치 않는 중병에 걸리고 시한부 삶을 살아도
고통 없이 죽는다면 견딜 수 있지만 참을 수 없는 통증의 괴롭힘을 당하고 그 통증을 완화시킬 진통제 조차 살 수 없는 가난이 일가족을 비극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만 것이다.
그러면 가난하지 않고 부유하게 살면 행복할 것인가?
또 한 사례의 인생의 삶을 드려다 보면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사업을 해서 큰 공장을 가지고 있고 땅과 집과 건물 등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수십억의 재력가 이다. 그런대 그들 부부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바람을 피워 밖에서 딸을 낳아 데리고 들어 왔다.
그 딸은 자라서 시집을 보냈으나 틈만 나면 찾아와 아버지의 재산을 몇 억씩 빼갔다.
늙은 부인은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해 죄책감도 있지만 그래도 남편이 바람을 피워 딸을 낳은 것도 괘씸한데 그 딸에게 재산을 다 빼앗기게 생기어 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편은 돈 번다고 아내와 함께 해주지 않고 늘 지방으로 출장 가고 공장에 가서 늦게 들어 오고
아내는 홀로 남아 외롭고 쓸쓸하고 말동무도 없어 매일매일을 우울한 나날들로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집 주변의 커피숍에 자주 가서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자신의 집안 사정을 입방아 찧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과도 멀리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카페의 젊은 주인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자 어릴 때 죽은 자신의 아들
같아서 잘해주고 자신의 속사정도 말하게 되고 그 젊은 주인에게 위안을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치매가 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젊은 사장은
치매 걸린 할머니를 속여 통장에 있는 7억원의 돈을 빼내어 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남편의 신고로 젊은 카페 사장은 잡혔지만 돈은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아내가 치매에 걸린 줄도 몰랐던 남편은 무심했던 자신이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들에겐 왜 이런 불행을 겪는 것인가?
앞의 사례는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을 겪는 상황이지만
이들 노부부는 사업이 잘되어 돈이 엄청 많아도 아들이 일찍 죽고 밖에서 낳은 딸은 돈만 빼내
가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아내는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들고 난 후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도 불행은 언제나 찾아온다.
성경에서 찾아봐도 그 사례를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도 100세 때까지 자식이 없었고 몸종에게 자식을 얻어 집안과 민족의 분란의 씨앗을
만들었고 아내를 두 번씩이나 남의 나라 왕에게 팔아 먹기까지 하였다.
아브라함 만큼 믿음이 좋고 하나님에게 의인이라 칭함을 받던 노아는 또 어떤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몸을 자식들에게 보여 그 모습을 본 막내 아들 함이 아버지를 조롱하자
저주하여 종의 종으로 만들어 버려 그의 후손들이 수세기 동안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뿐인가 욥도 당대의 의인이고 마귀가 시기 할 정도로 거룩하고 정의롭게 살았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자연재해와 도적의 침략으로 10아들이 한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모든 재산이 불타 없어지고 자신은 피부병에 걸려 깨어진 기와장으로 자신의 몸을 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는 독설을 남기고 도망가 버렸다.
자 하나님 믿으면 불행이 없는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 믿고 의롭게 살아도 저주가 없는가? 성경은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천국과 지옥을 제외하고는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양은 똑같지 않은가?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오늘 시편의 주인공 다윗에서 우리는 차이점을 발견하여야 한다.
시편5편을 지은 시대적 상황은 다윗이 위기의 시기이고 고난 중에 노래한 시이다.
다윗은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징계를 받고 여러가지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밧세바 사이의 자식이 죽고 자신의 아들이 배다른 동생을 성폭행하고 성폭행 당한
동생의 오빠가 복수로 성폭행한 이복형을 죽였고 그것을 눈감아 주었더니 결국 반역을 일으켜
자신이 왕이 되어 이제는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아주 위급한 상황을 맞이 하게 되었다.
그러한 때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날마다 하나님에게 눈물로써 기도하였다.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다윗은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하나님에게 간절히 부르짖고 통곡하고 애원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 할 곳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 줄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고통을 즐기거나 이용하려 하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주고 그 문제를 해결해줄 인생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없다.
오직 우리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것도 매일 아침마다 새벽마다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7,8.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우리는 세상에서 고통 받으면 피난처가 있다. 그곳이 어디인가? 하나님의 성전 교회이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갈 곳이 없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대상이 없다.
그리고 그 죄가 자라면 감옥으로 들어가야 하고 죄가 장성하면 죽음을 맞이 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갈 곳이 있다 자복하고 회개할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아버지의 집 성전이고 교회인 것이다.
11.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불신자든 신자든 세상에서 똑같이 환란을 당한다.
그런대 불신자들은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고 하소연할 곳이 없고
위로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행을 겪는 고통보다도 위로 받고 문제를 해결 받고 회복 될 수 없는 상황이
더 고통스럽고 저주의 삶이고 고통과 저주가 영원할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비극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죽을 죄를 짓고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회개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용서를 구할 곳이 있고 용서를 받을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원래의 복된 상태로 회복 될 것이며
영원한 곳에서 참 기쁨과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신자와 믿는자의 엄청난 차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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