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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복있는자(중고등부 설교 및 새벽기도예배)

오늘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전도용으로 사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복을 만들 수는 없다. 복 있는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럼 복은 누가 주는가? 복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만이 주신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복 받기를 원한다. 누구도 저주의 삶을 살길 원치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복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런대 왜 많은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인가?

하나님 아니고도 다른 신에게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도 복을 준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에게 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생기고 또 그 말을 듣고 믿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산삼은 오직 금강산에만 있다고 한다면

산삼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금강산을 찾아 갈 것이다.

그런대 어떤 사람이 혹시 설악산에도 산삼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설악산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산삼을 발견하였다면 자기는 설악산에서 산삼을 캐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산삼을 캐러 금강산에만 가지 않을 것이다.

설악산에 가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설악산에서 산삼을 캐낸다면 그것을 찾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 어떤 사람이 몇 년 동안 금강산에서 산삼을 캐러 다니다 얻지 못하여

설악산에 갔는데 우연히 쉽게 산삼을 발견하였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금강산에는 산삼이 없고 설악산에 있다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자신은 산삼을 금강산에서 얻지 못하고 설악산에서 얻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백두산, 한라산, 이산 저 산에서 산삼을 캐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는다.’,’아니다. 부처님 믿어도 복을 받는다.’

아니다. 하나님 만이 복을 주신다.’,’아니다. 부처님 만이 복을 주신다.’

아닌데 난 알라신이 복을 주던데…,’,’뭔 소리 난 조상님이 주시던데…,’

그뿐만이 아니다. 금강산에서 산삼을 캐려면 목욕하고 찾아야 한다. 아니다. 목욕하면 안된다.

좋은 꿈을 꾸어야 한다. 아니다 꿈은 반대다.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경험한 것을 제각기 말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온갖 잡신들을 다 만들어 내고 온갖 방법들을 다 만들어 내며

여러 종류의 이단과 사이비들이 판을 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구하여도 복을 받을 수 있나? 결론부터 말하면 받을 수 없다.

그럼 왜 불신자들이 자신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서 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복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의 답을 먼저 알아야 한다.

복에는 영적인 복과 육신적인 복이 있다. 육신적인 복은 정신적인 복과 육체적인 복이 있다.

영적인 복은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것이다. , 천국 가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인 복은 물질의 복, 명예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등이 있고

정신적인 복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복은 당연히 영적인 복이다.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주된 이유다

그런대 사람들은 육적인 복 그 중에서도 물질의 복에 중점을 두고 제일로 바라고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하위의 복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많다.

돈이 많고 인기 많은 사람이 정작 자신은 불행하여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하나? 교통사고 나서 반신불구가 되거나 중병에 걸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니, 돈도 많고 건강하고 잘 먹고 잘산다 하더라도 한평생이다.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육신적인 복에 메달려 산다. 믿는 사람 조차도 그렇다.

이 육신적인 복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을 믿어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돈도 많고 똑똑하고 잘나기까지 해서 호의호식하며

근심걱정 없이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각자 재능을 주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자기 재능을 발견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살아가면 부와 명예를 성취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연법칙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불신자들 가운데에도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 스스로 세상 일을 하면서 기쁘다고 생각하고 즐겁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하나님 아닌 다른 신도 복을 준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낙심자 중에서 제일 많이 갈등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 안 믿어도 잘 먹고 잘 살던데 뭐

하나님 믿어봐야 좋은 것 하나도 없더라. 오히려 해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이 많이 싫다고 한다.

이것은 마귀의 함정이다. 왜 이런 생각에 빠져 드는가? 육신적인 복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실 생활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돈도 많고 몸도 건강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고 부족한 것 없이 풍족히 살면

그 사람의 내면의 깊숙한 마음속에는 공허함이 밀려온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공허함이다. 영적인 갈급함 이다.

영적인 공허함과 갈급함은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 채워진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술을 찾고 담배를 찾고 여자를 찾는 것이다. 심하면 도박도 하고

마약까지 하게 된다. 전 국회의장이 캐디를 성추행하는 사건을 봐도 그렇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그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살면서 자신은 그런 것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 체면이라고 한다.

금강산에도 설악산에도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산삼은 나지만 그 효능이 다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산에서 나는 산삼은 먹으면 육신이 건강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영생하는 효능이 있지만 다른 신에게서 찾은 산삼에는 영생이라는 효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이 주는 복은 짝퉁이다. 가짜다. 거짓이다. 속임수다.

진짜 복은 하나님에게 만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복을 찾아야 복을 받는다.

우리가 전도의 초점를 이곳에 맞추어야 한다.

믿음이 없는 남편에게, 믿음이 약한 자녀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세상 많은 신들이 부도 주고 병을 고치고 명예를 주는 육신적인 복은 줄지 몰라도

영적인 복은 절대로 줄 수가 없다고 오직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전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네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진다고 전해야 함

그런대 전도의 출발점과 복음의 시작점이 잘못되고 보니 새가족이 정착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어 쭉정이 신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 믿으면 돈도 잘 번데이~ 몇주() 교회 다녀도 돈벼락 안 떨어지던데~ 하며 가버린다.

병고침 받는다. 안고쳐지니 낙심하고, 만사형통한다. 어려움 생기면 도망가버리고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전하고 오직 예배를 강조하고 오직 천국을 가르치며 전해야 한다.

나에게 어떤 힘듦과 어려움이 생기면 내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삶 가운데서 내가 지금 이런 복을 받고 사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간증해야 한다


 

어제 새벽에는 복은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복으로 나뉜다고 말씀 드렸으며

육신적인 복은 마귀도 주고 잡신도 준다 하지만 영적인 복은 절대로 줄 수 없다.

영적인 복은 오로지 하나님만 주시는 것이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육신적인 복을 강조하지 말고 영적인 복을 강조하여

전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럼 오늘 새벽에는

어떻게 해야 복을 받아 복 있는 사람이 되는지 알아보겠다.

시편1편에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이 묵상하는 자에게 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즐거이 묵상해야 한다.

즐거이 묵상한다는 것은 시간 나는 대로 틈만 나면 묵상한다는 것 입니다.

요즘 시대의 우리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틈만 나면 스마트 폰을 보고 있습니다.

6:5~7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요즘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온통 머리 속에는 스마트폰 밖에 없다.

집에서도 학교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스마트 폰을 보며,

잠자기 전까지도, 잠에서 깨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스마트 폰을 보는 것이다.

화장실에 가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스마트 폰을 즐거이 묵상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사랑하고 날마다 묵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저를 포함해서 성경은 읽지 않으면서도 시간 내어

드라마는 꼭 챙겨보고, 말씀 읽는 것 보다 드라마를 더 즐겨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물론 다윗 시대에는 TV PC나 스마트폰이나 영화관이나 신문이나 잡지나 소설 책도 없는 시기이니 심심하고 지루하면 성경을 묵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상황에서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성경 말씀만 묵상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부모 된 우리는 적어도 자녀들이 본받을 정도로 모든 공 예배에 충실해야 한다.

매월 첫째 주에 우리 교회는 통합 예배를 드린다.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통합예배에 나오라고 하고 중고등부 예배는 그대로 오후에 또 드린다.

그랬더니만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예배는 한번만 드리면 되지 왜 두번이나 드려요?’

아침에 나왔다가 오후에 또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요 놀지도 못하고~’ 하면서

온갖 불평을 다 해대었다. 그래서 이 놈들아 선생님들은 예배를 얼마나 드리는 줄 아느냐?’

주일에 새벽 예배, 대 예배, 오후예배, 중고등부예배, 드리는데 너희들은 매주도 아니고

한 달에 한번 일년에 12번 드리는 대 예배를 힘들어 하느냐고 호되게 훈계 하였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 소리 못하고 지금도 통합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

이와 같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평상시에 성경을 읽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예배 드리면 끝인데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험하고 악하고 유혹 많고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큐티 책을 사주어야 한다.

그리고 큐티하지 않으면 스마트 폰도 절대 못 만지게 해야 하다.

그렇게 라도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읽게 해야 한다. 그런대 실천하는 아이들이 없다.

부모가 관리하지 않으니 안되고 있다. 그래서 전 스마트폰의 카스에 매주마다 설교를 올리고

그것을 주중에 다시 읽고 적용말씀을 댓글로 달아라고 시킨다. 근데 그것마저도 잘하지 않는다.

댓글 달면 선물 주고 안 달면 혼내고 그렇게라도 억지로 몇 명이 큐티를 하고 있다.

그런대 그 성경을 묵상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되며 지켜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불신자와 같은 행동을 하거나 불신자보다 더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욕보이는 것이다.

지금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얼마나 많이 욕하는지 모른다. 물론

영적으로 악한 무리들이 안티 기독교를 만들어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욕 먹는 것에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행동들을 하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이 욕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사는 기독인들이 많다 것.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에게 순종의 삶을 살아야 복을 받는다. 어떤 복을 받게 되는가?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어떤 삶이 형통의 삶인가? 오늘 시편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생명수가 흐르는 강에 생명나무가 있어 생명나무 열매가 열리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생명수가 흘러야 한다. 생명수는 죽은 생명들을 살린다.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물은 샘을 이루고 샘은 강을 이루며 강물은 죽음의 땅 사막을 초목이 우거진 숲으로 만든다

숲에는 목초지와 각종 열매와 과실을 만들고 그것은 온갖 동물들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게 된다.

그 생명수가 언제나 흘러 넘치고 그 생명수에 뿌리를 내려서 많은 과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 생명수가 바로 말씀이다.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듣지도 행하지도 않는 악인들은 어떤 인생이라고 하는가?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추수 때 타작마당에서 농부가 타작을 하면 알곡은 밑으로 떨어지고 겨는 바람에 날린다.

타작이 끝나면 농부는 알곡은 보아 곳간에 두지만 쭉정이는 모아 불쏘시개로 사용된다.

여기서 농부는 예수님이시고 알곡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쭉정이는 불신자들이다.

곳간은 천국을 의미하고 불은 지옥을 의미한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영적인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믿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에 불순종하며 온갖 죄를 계속해서 지으며 산다면

천국을 보장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인 복도 받고 세상에 살면서 육적인 복도 받아 영적인 일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