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무엘하

세바의 반란(즉시 순종과 선택적 순종의 결과)

첫째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였지만 새로운 반역의 불씨가 살아났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과 유다 백성들만이 왕궁을 버리고 요단 강을 건너 도망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의 괜한 트집이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란군을 피하여 도망할 때나

압살롬의 반란군을 물리쳐 진압할 때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뒷짐지고 구경하고 있다가

막상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왜 우리를 소외 시켰냐고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도 문제가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용하고 받아주어 싸우지 말아야 했다. 그런대 오히려 불이 난 곳에 기름을 붓듯이

다윗 왕이 유대지파이고 우리와 가깝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여

분쟁을 격화시켜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 베냐민 지파의 세바가 군중선동의 주동자가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

지금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보면 혼돈과 분쟁의 연속이다.

이스라엘과 이슬람이 서로 테러와 보복을 반복하고 있고

일본과 중국이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의 자국 이익을 위해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는데

세계 모든 분쟁지역에 미국이 개입하여 경찰국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대 이런 분쟁의 원인은 내면적으로는 영적인 문제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욕심 때문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영토분쟁, 식량분쟁, 자원분쟁, 무역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 작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었는데 남한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싸우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하나님 편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불신자와 신자의 중보자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교계 지도자나 기독교인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다.

분봉왕 헤롯은 허울뿐이고 집정관 본디오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오로지 복음을 전하시고 사람을 고치시고 하나님 말씀에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셨다. 우리 교계 지도자들도 예수님처럼 하시기 바란다.

우리 기독교인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대통령을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작정 한쪽 편에 서면 안된다.

우리는 모든 판단 기준을 성경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보수라고 무조건 편들어서도 안되고 진보라고 무조건 반대하여서는 안된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왜 기독교인이 끼어드려 하는가?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은 대선 때 국민의 48%가 지지한 당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남북이 갈리었는데 남한 내에서 또 동서로 갈리어야 하겠는가?

우리는 화합을 말하고 평화를 말하고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 북한을 복음화 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어느당의 편에 서서 지지하고 반대하고 공격하고 변호하면 안된다.

26:7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보수도 때로는 어떤 사항에 대해 마귀 뜻대로 하면 하나님 말씀으로 책망하여야 하고

진보도 하나님 뜻대로 잘하는 부분이 있으면 칭찬하고 격려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이래도 옳고 저래도 옳은 것에는 관여하지 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 세월호법 때문에 지금 국정이 중단되어있다.

한쪽에선 특별법을 만들어 수사권, 기소권을 주어야 한다고 하고 한쪽에선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므로 안된다고 대립하고 있다. 수사권, 기소권을 준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주지않는다고 못 밝혀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정쟁일 뿐이다.

왜 그곳에 기독교인들이 끼어드는가?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다. 정치인이 알아서 하게 나둬라.

관여하지 않아도 될 사안까지 관여하니 반대 진영의 사람들과 적대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안티 기독교들이 세력을 키워나가고 더 강력히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복음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에 올인 해야 한다.

만약 세바처럼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사람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세바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둘째 즉시 순종하고 온전한 순종을 하여라.

다윗 왕은 자신의 절대적인 지지자이자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한 요압을 놔두고

압살롬의 반역에 앞잡이인 아마사를 군 통솔자로 세웠다.

그리고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자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아마사에게 내리었다.

다윗이 왜 요압을 멀리하고 아마사를 멀리하였는지 그 속마음은 알 수 없으나

유추해 보면 요압이 다윗 왕을 대신하여 모든 전쟁에서 큰 공을 계속해서 세우고

또 다윗 왕이 잘못할 때마다 왕에게 직언을 할뿐만 아니라 왕을 책망하기 까지 하므로

다윗 왕이 인간적인 마음으로 요압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기 위함이 아닌가 판단 된다.

다윗 왕은 나이가 들고 늙어 갈수록 믿음이 떨어져 인간적인 판단과 결정을 많이 하였다.

밧세바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요압을 견제하기 위해서 아마사를 불러들인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는 비겁한 행동이다.

무엇인 두려운가?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데 왜 인간적으로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여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으로 왕위를 지키려고 하는가?

자신이 지킨다고 지켜지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왕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범하게 담대하게 하나님 뜻대로 행하면 된다. 꼼수를 부르면 안된다.

그리고 아마사는 즉시 순종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죽음을 재촉 하였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극형에 처해 죽임을 당했어야 했다.

어떤 이유에서던 다윗이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군대장관으로 삼았으면 다윗에게 충성해야 했다.

다윗 왕이 아마사에게 병력을 소집하여 반역군을 물리치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아마사는 다윗 왕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여 기한을 넘겨 버렸다.

왜 그런지 이유는 성경이 말하지 않고 있지만 한번 배신한자는 또 배신하게 되어있다.

아마사는 즉시로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은 것은 전쟁을 두려워하였던지 아니면 이스라엘 반역군의 세력이 더 큼으로 주저하였던 것 같다. 여차하면 그쪽 편으로 붙기 위하여…,

다윗 왕의 명에 즉시 순종하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자 다윗 왕은 이번에는 아비새에게 반역군을 추격하여 빨리 섬멸하라고 명하였다.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이었다.

그래서 요압은 반군을 물리 치러가는 도중에 만난 아마사를 암살하고 말았다.

다윗 왕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였듯이 요압은 또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반역의 편에 섰던

아마사를 죽였다. 요압은 또다시 다윗의 명에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않고 결국 불순종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사와 같이 명령을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로 순종해야한다.

그리고 요압과 같이 자신이 판단하여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따르고 옳지 않다고 생각 되는 것은 따르지 않고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내가 생각해서 옳은 것은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따르지 않고

내가 생각해서 순종하기 쉬운 것은 순종하고 순종하기 힘든 것은 불순종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불손종이다 하나님 말씀에는 100% 순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얼마 전에 작은 뉴스가 나왔다. 어떤 개척교회 목사님이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가난한 아이들에겐 회비를 받지 않거나 할인하여 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사랑의 표현이 너무 과하여

여자 아이들에게 육체적인 접촉을 심하게 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추행으로 고소되어

벌금과 함께 성교육 프로그램에 몇시간 동안 참여 할 것으로 판결이 났다.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일을 하였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한가지 때문에

사역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다. 초등학생들도 그런대 중학생 가운데에서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

숙제를 내면 즉시로 해야 한다. 그런대 즉시로 하지 않고 미루다 결국 숙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다 큐티를 즉시로 해야 하는데 미루다 한 주를 넘기고 만다.

그리고 숙제를 하긴 해도 열심히 하지 않고 눈속임으로 한다.

문제를 풀다가 모르면 공부한 것을 찾아 다시 보고 연구하고 생각하여 다시 풀어야 하는데

문제 풀다가 모르면 몰라서 안했어요 하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는 모른다는데 선생님이 안가르쳐 준다고 변명하고 핑계 한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실력을 기를 수 없다.

모를 때마다 물어서 하면 시험장에 가서도 모른다 그땐 누가 가르쳐주나?

한 두번 가르쳐주면 그 후에는 자신이 노력하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실력을 쌓게 되고 그런 사람들을 이 사회는 필요로 한다.

선생님 말씀에 잘 순종하여 큐티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중고등부를 졸업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고 늘 불순종하고 졸업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셋째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라

세바가 벳마아가의 아벨 지역에 근거지를 두었다.

그래서 요압과 아비새가 그 성읍을 쳐부수며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 사는 한 슬기로운 여인이 요압에게 반란군 수괴 세바를 넘겨 주겠다고 하였다.

그 여인은 성읍 주민들을 잘 설득하여 세바의 목을 베여 요압에게 주었다.

그래서 반란은 진압 되었다.

우리도 이 슬기로운 여인과 같이 행동하여야 한다.

만약 그 여인이 세바의 편이 되어 끝까지 요압과 싸웠다면 그 성읍은 세바와 함께 멸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한 여인으로 인하여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살고 성읍 전체가 살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지혜로워야 한다. 영안이 밝아야 한다.

누가 하나님의 편인지 사탄의 편인지를 잘 분별하여야 한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나 한 사람의 판단과 결정과 행동으로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여러분은 부모님을 감동시키는 자녀들이 되어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면 부모님이 감동을 받는다.

부모님께서 감동을 받으시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부모님의 능력이 되는 한 다 들어 주신다.

여러분이 죄악 된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부모님이 다 들어 주신다.

가정에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가정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벗어난 행동을 하고 부모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부모님은 분노한다.

부모님을 분노하게 만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괴롭다.

모든 가족이 다 슬퍼지고 불행해지고 지옥이 된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정에 평화가 임할 수도 전쟁이 임할 수도 있다.

기뻐할 수도 괴로울 수도 있다. 불행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

미래를 꿈꿀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마귀와 가까이하고 마귀에 끌려 다니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이다. 명심해라.

 

'사무엘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점강해지는 삶  (0) 2023.04.14
선행의 목적  (0) 2014.08.17
압살롬의 최후  (0) 2014.08.11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  (0) 2014.07.21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다윗의 자세  (0)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