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반란군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소식은 전혀 반가워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에만 온통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에 빠져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울고 울었다.
압살롬이 반역하고 죽게 된 것은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압살롬이 회개도 없이 죽게 된 것도 신앙인인 아버지로서도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애통해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왕으로서 백성과 신하들 앞에서, 반역자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은 잘못이다.
군사들은 다윗 자신을 다시 복위 시키기 위하여 목숨 걸고 반란군과 싸웠는데
성대한 환영과 칭찬은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군 수장이 죽었다고 통곡하는 왕을 보는 것은
서운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물론 요압이 다윗의 명에 따라 생포하여 왔더라면 백성들 보는 앞에서 통곡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이 불순종하고 압살롬을 죽었더라도 죄의 결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비통해 했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요압이 다윗 왕에게 충고하였다.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요압의 충고를 받은 다윗은 즉시로 눈물을 멈추고 군사들을 환영하며 맞아들였다.
사람은 누구나가 잘못하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잘못을 지적해주고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면 자존심 내세우거나 고집부리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고 바꾸어 옳은 길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바른 자세이다.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복 받는 길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진압되었으나 즉시로 예루살렘 궁으로 복귀하지 않고
마하나임에서 겸손하게 자숙하며 기다렸다.
그것은 자기 집안의 수치스런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근신하였고,
압살롬을 따르던 백성들이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따르기를 바라며 기다렸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따르지 않았거나 자신을 배반하였거나 자신을 저주한 자들을 용서해 주었다.
먼저 자신을 반역하고 압살롬의 군대장관이 되었던 아마사를 죽이지 않고 다시 군 지휘관으로 받아 주었다.
그리고 다윗은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하는 길에 자신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은 시므이를
요압 장군이 죽이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일이니 죽이지 마라고 하였었다.
그런대 다윗이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므이가 다윗을 찾아와서 용서를 빌자.
이번에는 아비새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한 시므이를 죽여야 한다고 하였으나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 회복 되었으니 되었다고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다윗이 피난길에 오를 때 요나단의 아들 절룩발이 므비보셋은 왕을 따르지 않았고
그의 종 시바가 다윗 왕에게 포도주와 음식과 나귀를 끌고 와서 다윗 왕의 피난 길에 큰 도움을 주었었다. 그래서 다윗은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시바에게 주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주인을 모함한 것이었다.
므비보셋이 장애인으로 피난길의 다윗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하여 다윗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다윗은 므비보셋과 시바가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도록 하였다.
시바가 비록 므비보셋을 모함하기는 했으나 다윗의 피난길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압살롬의 위협을 피해 다윗이 요단강을 건널 때 큰 도움을 준 바르실래를 예루살렘 궁으로
데리고 가서 후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르실래의 사양함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으려 하였다.
우리는 다윗의 성품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 왕조 실록도 그렇고 세계 어느 나라 역사를 보아도 권력을 잃었다가 다시 잡으면 자신을 따르지 않은 자나, 자신을 배반한 자나 조롱하고 무시한 자들을 가장 먼저 처단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성품을 지닌 왕인지 알 수 있다.
자식이 자신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려 반란을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을 죽이지 않고
회개 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지 않은 므비보셋도 벌하지 않았고
자신을 배반하고 반역자의 군대장관이 된 아마사를 용서하고 받아드렸으며
뿐만 아니라 자신을 욕하고 저주한 시므이도 용납하였다.
그리고 의도는 잘못되었으나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시바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으며
바르실래를 궁으로 데리고 가서 은혜를 갚고자 하였다.
이렇듯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여야 한다.
이해해주고 헤아려주고 잘못을 용서해주고 허물을 덮어주고 받아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마5:38~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또한 예수님은 용서에 대해서도 마6:14,1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성품으로서 지키기 어려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다.
오늘 이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니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그분은 문둥병 자와 함께 기거하며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내며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고
그러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일제의 잔악한 고문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고
해방 이후 이념문제로 좌익 청년에게 자신의 두 아들이 살해 당하였으나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인죄로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기르셨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위해 문둥병자를 돌보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고문을 받으며
주님을 따랐는데 왜 저의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죽이셨습니까? 라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귀한 자녀 주심을 감사하고 미국 유학 갈 계획이었는데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다.
손 목사님은 약한 자 병든 자 가난한자의 위로자가 되어주셨고
6.25사변 때 피난 가지 않고 북한 군를 전도하다가 순교를 당하심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드렸다.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도록 힘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을 확신할 때 가능하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인들 하지 못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낮아져서 겸손해야 한다. 죄인을 용납하고 원수를 사랑하여야 한다.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자와 함께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섬겨야 한다.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이 한 구절로 왜 우리는 선하고 착한 삶을 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밝히고 계신다.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선한 삶을 살면서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사랑과 희생과 봉사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런 일을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돈만 사랑하고 자신의 배만 채우고
사랑이 식어 버렸다.
그러니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미혹하는 악한 영이 나타나 사랑과 존경과 경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14일 로마에서 교황이 날아왔다.
그는 정결을 상징하는 힌 옷을 입고 인자한 모습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소외 받고 전쟁으로 고통 받고 권력에 억압받는 자들과 가난하고 낮고 천한 자들을 찾아 다니며
사랑과 화합과 용서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일국의 대통령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천주교의 교황 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도 특별전용기가 아닌 일반석을 타고 오고 크고 좋은 차를 타지 않고 작고 초라한 차를 타고 다니고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 같은 호텔에 묵지 않고 교황 대사 관저의 낡고 허술한 집에서 기거하여
검소하고 청렴하며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받고 칭송하고 존경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이며 광명한 천사를 가장한 사탄임을 알아야 한다.
천주교는 사람인 마리아를 신으로 숭상하고 있다. 동정녀로 성모 즉 하나님의 어머니로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마리아가 승천하였다고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지어내어 예수님에게 기도하지 않고 마리아에게 기도하며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고 마리아를 경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은 없다고 하고 오직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예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에게 갈 방법이 없다는 말씀을 정면으로 왜곡하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모든 종교는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예수님의 보좌에 앉아 있다. 그리고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리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 모든 사람이 호산나를 외치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 받으시는 것을 흉내내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은 예수님을 위해서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이 영광 받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쇼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들었다. 누구를 위해 모였나?
예수님을 위해서? 아니다. 교황을 보기 위해서 모였다.
선행의 목적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해야한다.
교황 안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누구라도 예수님이 마음 속에 계시지 않으면
그의 하는 모든 행위는 가식이고 위선이고 거짓이고 미혹하는 것이고 꾸미는 것이고 속이는 것이다. 교황이 마리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구원자 되신다.
교황에 열광하는 신자와 비신자를 지켜보는 우리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낮고 겸손하고 섬기고 사랑하지 않았으면
저런 거짓 선지자가 대중들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는가를 깨닫고 철저한 반성과 회개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윗 왕과 같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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