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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다윗 그리고 요압과 압살롬

오빠가 이복 여동생을 성폭행하고

그 여동생의 친 오빠가 복수로 이복 형을 죽이고 달아난 사건이 그것이다.

그 범죄는 다윗이 한 때의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는 계명을 어긴 죄가

맏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을 성폭행하는 죄로 이어졌고

다윗이 남의 아내를 탐한 죄를 숨기기 위해 그의 남편을 죽인 죄는

압살롬이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는 죄로 연결 되었다.

그 죄의 결과로 인하여 누가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되었나?

바로 죄의 근원인 다윗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

사랑스러운 딸이 성폭행을 당하였고 왕위를 이을 맏아들이 죽었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이 살인자가 되어 자신의 곁을 떠나 버렸다.

다윗은 성폭행 당한 딸과 그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아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

마음을 정리하였지만 자신의 곁을 떠난 압살롬은 잊을 수가 없었다.

압살롬이 떠난 이후 다윗은 날마다 슬퍼하였다. 그리운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러한 다윗 왕의 마음을 헤아린 요압이 한 슬기로운 여인을 이용하여 압살롬을 만나게 하였다.

우리가 오늘 본문 내용만 보고 생각하면 요압은 정말 충성스러운 신하이다.

왕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고 헤아려주고

왕의 근심과 아픔과 괴로움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고 싶었지만 살인죄를 저지른 압살롬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왕궁으로 다시 불러 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대 요압의 지혜로 살인죄를 덮어주는 명분을 만들고 면죄부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슬기로운 여인이 말하는 과부의 경우와 다윗의 경우는 다르다.

과부에게는 아들이 둘 밖에 없어 남은 아들을 죽이면 후손이 끊어지지만

다윗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다. 이렇듯 정황이 다르고 꾸민 이야기지만

두 아들을 다 잃을 수 없다는 공감을 사므로 자기 스스로의 면죄부를 만들어 주어

압살롬을 다시 궁궐로 불러 들이고 2년 후 결국 부자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사람의 내면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다 정확히 기록되어

그에 대한 평가도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 부분만을 보고 평가 해서는 안되고 그 사람의 전반적인 삶과 그의 죽음을 보고 판단 하여야 한다.

요압은 다윗 왕의 누이 동생의 아들이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자 신세일 때부터 함께 하였고 수 많은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워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다윗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

다윗 왕이 암몬과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예루살렘 궁전에 남아 밧세바를 탐하고 있을 때

요압은 전쟁에 참여하였고 다윗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들어

그 명령대로 우리야를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하여 죽게 한 것도 요압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을 다 이겨서 자신의 능력으로 성을 함락 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윗 왕에게 공을 돌리기 위하여 다윗 왕이 직접 성을 함락하도록 양보하였다.

얼마나 충성스러운 신하인가?

하지만 요압에게 공(잘한 것)이 많이 있는 반면 과(잘못한 것)도 있었다.

예전에 왕의 허락없이 아브넬을 개인적인 원한으로 죽여 버렸다.

요압 역시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왕의 뜻을 무시한적이 있었는데

후일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도 요압이 반군을 진압하였지만 역시 왕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후일에는 솔로몬을 왕을 세우는 것이 다윗의 뜻이었는데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 하다가 결국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므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일관된 모습으로 충성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절대로 자기 생각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러면 교만해지고 사람은 교만하면 망하게 되어있다.

요압은 다윗에게 충성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에 일등공신이었고

다윗이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명령에 따랐다. 심지어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도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다윗 왕의 총애를 받아 나라의 2인자로서 막강한 권력자가 되었다.

또한 다윗은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도 용서한 것처럼 어떤 잘못을 하여도 용서하여 주었고

요압이 압살롬을 데려오기를 다윗에게 청하자 허락하듯이 다윗 왕이 요압의 어떠한 말도 다

들어주었다. 그러면 요압은 겸손히 행해야 했다.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해진 요압은 왕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미리 해버리고

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왕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며 자기 마음대로 왕을 조종하려 하였고

급기야는 왕의 명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므로 인하여 망하고 말았다.

여러분은 지위가 올라가더라도 절대 교만하지 마라 항상 겸손함을 잃지 말아라

영적 지도자가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시키더라도

영적 지도자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기도해라

내가 주장대로 하지 않는다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적하지 마라

절대 내가 알아서 미리 하려고 하지 마라. 물어보고 하고, 의논하고 하고, 허락하면 해라

그리고 좀 컸다고 배신하지 말고 끝까지 충성해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만 하고 남의 사명에 욕심 내지 말고 시기, 질투하지 마라

그런 것들이 자라서 교만하여 진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다.

둘째로 압살롬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자신은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한 형을 심판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나 다윗 왕은 압살롬을 심판자로 세우지 않으셨다.

압살롬에게는 살인한 권한이 없다.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고

심판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일 뿐이다.

그러면 압살롬은 회개하여야 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살인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예루살렘으로 불러드렸다. 압살롬은 그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다.

그럼 평생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숙하고 아버지가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불러준 고마운 은인인 요압에게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압의 밭을 불질러 버렸다.

압살롬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압살롬이 이렇게 된 것에는 아버지 다윗의 잘못도 크다. 다윗은 자녀 교육에 실패 하였다.

아들이지만 살인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렸어야 했다.

물론 사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회개하도록 훈계하고

말씀으로 가르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도록 바르게 이끌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기만 하여 살인죄를 저지른 아들을 아무 제재도 하지 않고

면죄해 줘 버렸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잘못했을 때 바르게 잡아주어야 한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살을 베는 마음으로 자식이 더 한 잘못을 짓지 않도록 냉정히 꾸짖고 벌을 내려야 한다.

압살롬이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징계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므로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아버지 다윗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자신이 취해버렸다.

그것도 모든 백성들이 보는 곳에서

주일학교 유초등부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

예배 시간에 예배당에서 휴대폰 게임을 해도 내버려둔다. 떠들지 않으면 된다고

예배 시간이 장난치고 떠들어도 매를 때리지 않는다.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어디냐며

예배 시간에 말씀 듣지 않고 졸거나 딴짓해도 때가 되면 철들겠지 하고 내버려둔다.

하나님의 말씀이 목사님의 입으로부터 선포되어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온 예배당을 돌아다녀도

그냥 내버려준다.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있을때 간난아이가 예배를 방해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예수님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말을 그 상황에 적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말씀 듣는 곳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되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말씀듣지 않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아니라

어릴때부터 말씀 듣는 아이로 바르게 훈련을 시켜야 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두살 때부터 말씀 안듣고 예배당을 소리지르며 돌아다니며 예배를 방해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예배를 우습게 안다. 떠들어도 되고 졸아도 되고 휴대폰 게임 해도 되는 줄 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드리러 오면서 상전 모시듯 데리고 나온다.

평일에 공부하기에 힘든데 주일 아침 만이라도 푹 자야 되는데 그렇게 못해서 미안해서

용돈 준다하며 달래고 어루고 억지로 데리고 나온다 온갖 짜증 다 받아 주면서

그렇게 교회 차 타자마자 휴대폰 게임을 한다. 예배 드리러 오면서

그런 마음 상태로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예배드리러 와서 무슨 예배가 되겠나?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나중에 철들고 신앙 생기면 좋아지겠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부모가 고생한다.

죄는 싹이 보일 때 잘라 버려야 한다. 그냥 두면 그 죄는 점점 더 자란다.

예배 시간에 떠들어도 내버려두고 장난쳐도 내버려두고 졸거나 잠자도 내버려두고

시험친다고 예배 빠지고 세상일 한다고 예배 빠지고 그래도 나중에 철들면 잘하겠지 한다.

절대 아니다. 죄를 싺이 났을 때 자르지 않으면 중고등부쯤되면 부모가 자식을 제어하지 못한다.

믿음이 없는 부모의 자녀나 믿음이 온전치 않은 부모 밑의 자녀들은 유초등부를 졸업하면

중고등부에 올라오지 못하고 그냥 교회를 졸업해 버린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1118.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욕심이 잉태 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으리라

귀하고 사랑스러운 자녀를 혼내고 매를 대는 것이 아까워 그냥 둬 버리는 것은 자식이 죽도록 내둬버리는 것과 같다.

여러분 꼭 집에 가서 오늘 지도교사님이 설교 때 자녀가 잘못하면 부모는 즉시 훈계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잡아야 된다고 하셨는데 부모님 혹시 제가 알게 모르게 죄를 지으면 가만두지 마시고 저를 벌하여 주세요 라고 말해라그것이 여러분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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