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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다윗과 요나단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에게 연속적으로 범죄하여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러한 사실을 제사장 사무엘에게 전해 들은 사울은

언젠가는 자신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 다윗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대적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백성들로부터 자신보다 더한 칭송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므로 하는 모든 일이 다 지혜롭고 형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러자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왕위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반면 다윗은 제사장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언젠가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왕위로 세우실 것으로 믿었지

사울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는 절대로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나중에 다윗의 말과 행동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사람이 죽일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사울은 자신의 왕위를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지켜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다윗은 깊은 고뇌 가운데 있었다.

나를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신하로써 끝까지 섬겨야 할지,

아니면 사울 왕에게서 멀리 떠나 도피 생활을 해야 할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사울의 진정한 속마음을 알아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요나단을 찾아 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요나단에게 모두 말하고 다윗은 요나단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여러분들은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되어라

첫째 요나단이 다윗의 모든 하소연을 들어 주었듯이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어 주어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준다는 것은 백 마디의 좋은 말을 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이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신경정신과를 찾는다.

그러면 의사가 하는 일은 그 환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 준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어 그 약을 먹고 잠을 자도록 해 주는 것이 다다.

화병이 있는 사람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아 그렇군요 그랬었군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라고

동조해주고 안타까워해주고 위로해주면 화병이 고쳐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고독하고 외롭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힘을 주고 격려해주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 가운데 학업 성적이나 친구 관계나 집안 문제로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 해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아마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서로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부모형제로부터 가장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받고 있다.

, 학생들은 하루 생활의 1/3 이상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통과 괴로움과 마음의 상처를 씻을 곳이 없고,

엄청나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다. 사람 사는 곳에서 인간관계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그것이 더 큰 문제다.

그런 역할을 교회가 해야 되는데 그 역할을 재대로 감당하지 못할뿐더러 손가락질 당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정치 개입 때문.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해야 하고 빨리 회복

교회가 그런 역할을 못하다 보니 마귀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고 한다.

친구들 간에 서로 욕하면서 수다 떨거나 PC방에서 엄청난 욕들을 쏟아내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

아니면 다른 친구를 놀리고 조롱하며 비난하고(속어:뒷담 깐다) 깔깔 그리며 웃는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위안을 찾는다

이렇게 안 좋은 방법으로 그때그때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니 아이들의 인성이 망가지게 된다.

인정이 메말라가고 심성이 악해지고 인격이 파괴되고 초토화 되는 것이다.

. 지금의 다윗은 어떠한가? 눈만 뜨면 날만 세면 자기만 보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매일같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다윗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극심하겠는가?

그런 고통 받아 하소연하는 다윗에게 요나단이 그 말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어 다윗이 안정을 찾았듯이

여러분들이 요나단과 같은 전정한 친구가 되어주라

그리고 그들을 진정한 위로자 되시고 친구 되시고 아픔을 치유해주시는

예수님에게로 인도해 주어라.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둘째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듯이 친구에게 참된 사랑을 베풀어라

요나단은 자기 생명을 걸고 희생적으로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이다.

자기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요나단은 마치 친형제처럼 다윗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고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함께 지혜를 모아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워나갔고, 서로 간에 언약도 세웠다.

지금은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해주고, 나중에는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는 요나단 가문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훗날 그 약속대로 요나단의 가문이 멸문지화의 위기에 닥쳤을 때

다윗은 약속대로 요나단의 아들을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왕자와 같이 대우해 주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새 언약 안에서 묶여진 운명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자기 생명처럼 보호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오천 사랑의 교회에서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동역자들이다.

한 교회에서 같은 목사님과 함께 같은 말씀으로 예배드리고 부흥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가는 우리는 때로는 친구나 피로 맺은 친지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 밖에서 보면 부모형제를 만난 듯이 반갑게 달려가 인사하는 성도들이 있는

반면 보고도 못 본채 피하고 도망가는 그런 성도들도 있다.

그리고 마땅히 사랑해야 할 성도들이 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가? 그것은

자신이 높은 위치에 서려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

지난주 설교와 같이 자신을 낮추지 않고 높이려 하고 겸손하지 않고 교만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공동체로서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셋째 사울과 같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요나단과 같이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라

사울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들 요나단까지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데 사용하려 했지만,

요나단이 협조하지 않자 자기아들에게 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단창까지 던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나단은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왕위를 빼앗아가는 다윗을 사랑하며 다윗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꼈다.

요나단은 사탄에게 잡혀 제정신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며 다윗의 입장을 대변하였고, 심지어 다윗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타적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매 순간의 선택이다.

예수님처럼 성숙의 길로 가려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매 순간 이타적인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타적인 삶은 항상 하나님 뜻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신가? 하나님이시다.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지만 저주를 주는 것은 사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다면 사탄은 우리 인간들에게 저주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는가?

내 유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해 먹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친구와만 사귀려 한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닐 것이다.

17: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고 남이야 어찌 되었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유익만을 위해 아둥바둥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까?

28: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양보하고 남을 배려해주고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주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준다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까?

손해 본 것 몇 배로 되갚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8: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19.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20.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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