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이 골리앗이라는 장수를 필두로 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그 누구도 골리앗과 상대하여 싸우러 나갈 장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소년 다윗이 혜성처럼 나타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
즉 작은 물맷돌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쳐 이김으로 나라를 구하고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하였다.
처음에는 사울 왕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다윗을 신임하여 군대 장관으로 삼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다윗이 하는 모든 일이 지혜로웠고
그래서 모든 신하들과 온 나라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하고 사랑하였다.
그로 인하여 사울은 시기와 질투가 불일 듯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다윗에게 왕위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초조감이 극에 달하여
이성을 잃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악신에게 시달리던 사울은 자신을 위해 수금을 켜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다윗을 왕궁 밖으로 내보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다윗이 하는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하여 다윗은 백성들에게 더욱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울이 다윗을 블레셋 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었다.
원래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으므로 약속대로 다윗을 사위로 삼아야 했지만
사울은 그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블레셋 군 100명을 죽여야 사위로 삼겠다고 유혹하였다.
다윗은 사울이 요구한 것의 두 배로 블레셋 군 200명을 죽이고 사울의 사위가 되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사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다.
이성을 잃은 사울은 이제는 신하들과 자식 앞에서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대놓고 선언 하였다.
자 여러분이 요나단이라면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다윗편이 될 것인가? 아버지 사울 편인가?
인간적으로 보면 당연히 아버지 사울의 편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는 이유는 자신의 왕위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나단 입장에서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잘못하면 다윗에게 왕위의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분들은 쉽게 이해가 될지 모르겠으나 권력을 내려 놓은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부정 선거를 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려 하고 때로는 쿠데타와 같은 탈법을 하면서까지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 그 만큼 권력은 부와 명예를 맘껏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욕망
은 대단하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한번 잡은 권력은 쉽게 내주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요나단은 세상적인 야망과 육신의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 있었다.
다윗을 죽이라는 사울의 말을 들은 요나단은 아버지이자 왕의 명령이고 왕과 자신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직언을 한 것이다. (삼상19:4,5)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요나단의 용기있는 행동은 진심이 어린 간청은 아버지 사울을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그런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부모형제, 남편아내, 자식, 친구)
하나님 뜻을 어기거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옳지 않은 행동이나 잘못된 행동을 해도
충고하지 않는다. 간청하지 않는다. 설득하지 않는다. 직언하지 않는다.
그냥 때가 되면 좋아 지겠지! 하며 기다린다. 기도라도 하면서 기다리면 좋을 텐데
기도도 하지 않는다. 아니 기도 하려고 해도 기도도 잘 안 된다. 왜 그런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약하고 강단이 없기 때문이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하면 시끄러워질까 봐, 화 낼까 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분란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리기만 해선 안된다. 또는 그저 기도만 하고 기다려서도 안된다.
기도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기도한대로 간청해야 한다.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강하게 충고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요나단처럼 목숨을 걸고 직언해야 한다.
그것이 악한 사탄에게 잡힌 내 사랑하는 가족을 건지는 일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자신의 아들 요나단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감동 받아 잠시 정신을 차린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마라고 하셨다.
마5:33.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는 왜 맹세하지 말아야 하는가? 인간은 그 맹세를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리털 하나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런 능력으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인간은 자신의 연약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자신의 부족을 인정해야
그때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간구하게 되고 믿고 의지하게 된다.
자 사탄에게 사로 잡히어 시기하고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내면의 문제가
사울처럼 맹세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내면의 문제를 절대로 맹세나 다짐 같은 마인드 컨트롤이나 상담이나 인간이 만든 약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만약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 보았다면,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하였다면 악신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또 악신에 시달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능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 날 수 있고
비참한 최후도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시나 사울의 헛된 맹세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다시 있었고 당연히 다윗이 출전하여 죽지 않고 또다시 승리를 거두자
또다시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은 자신을 위해 수금을 켜는 다윗을 죽이려고 또 창을 던졌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집으로 돌아가자, 사울은 전령들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어
밤새 지키다가 아침이 되면 다윗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사울의 딸 미갈은 그 밤에 다윗을 피신시켜 생명을 보존하였다.
이처럼 다윗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수 차례에 걸쳐 죽음의 위기를 맞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살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직하고 지혜롭게 행함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세상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하면 세상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게 되고
미움을 받게 되고 까닭 없이 많은 핍박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생활을 하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항상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일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사람과 불신자간의 갈등관계, 적대적 관계를 활용하시고 선용하신다.
그러므로 원수 된 저들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욕하고 미워하여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받아 줄 뿐만 아니라 사랑하여야 한다. 왜? 예수님의 명령이다.
( 차운행 황당한 일: 상대차 신호위반, 나중에 진입해서 비켜달라, 등 )
벧전4: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다윗은 라마나욧에 있는 선지자 사무엘에게 피신하였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사울은 또다시 다윗을 죽이고자 세번이나 군사를 보내었으나
성령께서 간섭하시어 오는 군사마다 예언하게 하셨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보내는 군사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예언하는 사람이 되자
참다못해 이번에는 사울이 직접 나섰다.
그러나 사울 역시 라마나욧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성령에 이끌리어 예언을 하게 되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사무엘 선지자에게 숨으므로 대적들로부터 보호받고 위험에서 벗어났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환란과 풍파를 만나거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피하기 바란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고 유일한 안식처가 되신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위협을 당하고 어떠한 위기가 닥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 되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염려하고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 원수 마귀를 물리쳐 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