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일을 정성껏 하여야 한다.
7-11절에서 고레스 왕이 유다 총독으로 임명한 세스바살에게 성전의 그릇을 반환하였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성전 기명들을 다 빼앗아 갔다.
성전 그릇들이 금과 은과 놋과 쇠로 되어 있으며, 정교하게 만들어져 보물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빼앗아 갔는데 바벨론 군대가 성전 보물들을 약탈해 가면서 함부로 다루어 성전 기명 중에는 분실된 것도 있고, 또 부서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성전은 파괴시켜 버렸다.
그리고 7절에서 보듯이, 느부갓네살이 빼앗은 성전 그릇을 자신의 신당으로 옮겨둔 것이다.
그런데 그 성전 그릇을 돌려 주면서 그냥 다 가져가라 한 것이 아니다.
8절을 보면 고레스는 왕궁 창고지기 미드르낫에게 성전그릇의 개수를 다 세어서 기록하고 주라고 명하였다. 우리는 고레스의 지혜로운 일 처리 자세를 배워야 한다.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다. 그리고 믿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하였다.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려라는 뜻이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전의 기명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중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일이 하나하나 세어가며 내어 준 것이다.
고레스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레스는 이방왕으로서 포로로 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킨 것만으로도
이스라엘은 감사해야 한다.
거기에다 성전을 재건하라고 성전의 기명을 돌려줄 뿐만아니라 바벨론 사람들에게 은금과 가축까지도 내주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고레스에게 그런 마음을 주셔서 한 것이지만, 은혜를 베푼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고레스에게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처음에는 고국으로 귀환하시켜 주는 고레스에 감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성전을 재건하면서 예전에 있었던 성전 기물 중에 없어졌거나 부서진 성물 때문에 고레스를 오해하고 의심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분명히 나온다.
왜 이 성물이 없어졌지? 혹시 고레스가 좋은 보물을 숨겨 둔 것은 아닌가? 이 것은 왜 부서졌지? 하면서 그러므로 고레스는 이와 같이 세밀히 점검하여 계수한 후 세스바살에게 양도한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하면서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한다.
주의 일을 하면서 대충하거나 내 마음대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원망과 시비와 다툼이 발생하도록 하면 안된다.
나는 ㅅㄹ의 교회에서 집사로서 사역하면서 수많은 일들을 했었다.
차량운행, 방송실, 중고등부 설교, 교회재정, 심지어 청소, 등등 그러나 그 모든 수고한 일들은 다 감추어지고 그 일을 하면서 화내고 분내고 분쟁하고 대립한 기억들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주의 종의 길을 가면서 ㅋㅅ교회나, ㄷㄱ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단지, 주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 중직자들과 영적으로 부딪힌 것은 있을지 모른다.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알이선교비전에서 윤ㅇㅇ이 기도로 치유되고 회복되었다.
만약 윤ㅇㅇ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심하여져 학교생활은 고사하고 친구들과의 교제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옛날로 돌아가려는 습성을 보여, 아침기도에 지각하지 말라.
밤늦게 폰 보지 마라.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공격적인 말투를 하지 마라고 훈계하였다.
그런데 그 엄마가 자기 자식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분내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되더니 결국 아침기도를 중단하고 함께 동역하면서도 부정적인 말만하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망가져 가는 자식을 기도로 살려 놓았으면 모든 일에 감사하고 더 헌신하고 더 봉사하려고 해도 부족할텐데 오히려 자기에게 안 맞는 것 같다 하면서, 설렁설렁 대충하고, 기도하라 했더니 교회에서 새벽기도한다 하고는 하지도 않고, 학원 일에 바쁜 것이 아니라 교회, 노회 일에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으니 같이 사역할 수 없는 것이다. 한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두 가지 일을 어떻게 하나?
2.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높이신다.
8절에서 고레스는 세스바살에게 총독이란 직책을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게 하였다.
보통 식민지나라의 총독은 통치하는 나라의 관료로 세운다.
로마황제도 로마 사람인 본디오 빌라도를 총독으로 세워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다스리게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레스는 포로민의 한 사람에 불과한 세스바살을
총독으로 세워주고 높여 주어 귀하게 여김을 받은 것이다.
물론 세스바살이 페르시아 왕에게 높임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스바살을 높이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다.
이방인인 페르시아인들은 성전을 건축할 수도 없고,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포로 귀환과 성전의 재건을 위하여 온전한 제사를 위하여 세스바살을 높이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와 부를 주신다.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셨고, 다니엘을 이방 나라의 총리로, 에스더를 왕후로 높이 세우셨다. 그 목적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번성케 하셨고, 다니엘을 통해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주시고 여호와의 권능을 바벨론 왕에게까지 나타내셨다.
또 에스더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계략을 물리치고 구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높여주시는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승만과 김영삼과 이명박 대통령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상대를 적대시하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장기집권과 독재를 하고 부정부패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정치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그 결과 상대와 타협 없이 오로지 반대파를 몰아내어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그 이후 세대들이 지금까지도 서로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치가 아니라는 것을 저들은 모른다.
그들은 결코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높아진 것이 아니다 하니님께서 높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높이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패하거나 수치를 당하게 된다.
자기가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잘나서 높아진 것이 아니다. 설사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탁월하여 높아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노력하여 가진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높이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이알이선교비전이 크게 부흥하거나 아니면 또다른 사역지로 가서 그 교회를 반듯하게 세워 부흥시키거나, 그래서 다니엘 기도회에 강사로 나간다 하더라도 나를 높이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신혁이가 하나님에게 귀하게 쓰임받는 주의 종이 되는 것도,
신영이가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상담교사가 되는 것도,
은영이가 로스쿨에 들어가 판검사가 된다하여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세우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에게 자신을 기꺼이 드리며,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높은 위치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고자 다짐하여야 한다.
3.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9-11절은 세스바살이 약 5천4백 여 점이나 되는 성전의 성물들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귀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성물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쓰이던 거룩한 기물들이다.
그 모든 성전 기물들은 왕상 7:13-51에서 보듯이
솔로몬 때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보여 주신 양식대로 만든 것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 것은
단순히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귀환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것이고,
성전을 재건하여 다시금 하나님에게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성물을 가지고 귀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과 행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죄사함을 얻고, 축복을 얻는 일 아닌가?
그런데 만일 성전의 기구들을 가져오지 못했다면 성전을 재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데 성전 기물까지 다시 만드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인 것이다.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수단인 ‘성물’ 들을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수많은 제사 기구들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제 사라진 성전과 함께 옛 언약의 유물이 되었을 뿐이다(히8:5; 9:1-5),
따라서 우리에게는 성소의 촛대나 향단이나 등대나 진설병이나 제단이 필요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가 우리 성도들의 성물 중의 성물인 것이다.
그리스도만 마음에 모시고 다니면 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다.
어떻게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나?
우리에게는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인 66권의 성경이 있다. 이 성경 말씀이 곧 성물이다.
또 찬송도 있다. 찬송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의 제사를 늘 드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성물을 마음에 모셔야 한다.
그것이 없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겪는 모든 힘듦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찬양을 드리며 살아야 평강과 행복이 넘치게 된다.
지금 친가나 외가나 모든 집에 크고 작은 문제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나는 열심히 살았고, 한다고 하는데도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을지는 몰라도 거룩하고 경건한 삶은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로써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를 소홀이 드리면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오고 바람불면 다 무너진다.
부부간에 싸우고 부모와 자식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우고 분쟁이 끊이지 않고
평화가 없고 마음에 안정이 없이 바쁘기만 한 것은 분명히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가정은 마귀의 소굴이 되고 귀신의 놀이터가 된다.
예배가 회복되고 나야 그 다음 말씀과 기도 생활로 이어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되면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35:10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되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며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렘30:10에서 동일한 내용의 예언을 했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성한 물질과 귀환의 기쁨 속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신앙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생명과도 같은 성전 성물들까지 되찾아서 가지고 가게 되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결코 잃어버리시거나 내버리시지 않고 반드시 보전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의 기물들까지 지키시고 되찾으셨다. 우리들의 소망이 여기에 있다.
한번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결코 하나님께 버린 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예수님은 요6:37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또 요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벧전2: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그 소유된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갈 때까지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실 것이다.
두려워말고 담대히 말씀들고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