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7:10-12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찌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이 악을 미워하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면 악인의 손에서 건지사 그 영혼을 보존하시고 기쁨의 빛을 뿌려 주시는 주님,
이 새벽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저희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행복한 인생, 축복의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전도서 2장1~3절.
1. 인생의 모든 수고는 허무 자체인 인생의 벽을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1절을 보면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고 하였습니다.
앞선 제1장에서 말했던 모든 인생의 수고에서 오는 허무와 지혜와 지식의 궁구에서
오는 허무를 깨달은 솔로몬이 자기 자신을 향해 다짐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내 마음에 이르기를’ 이란 말은 내가 내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은
내 마음으로 다짐하고 결단하였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어떤 작정을 하였다는 것입니까?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내가 내 스스로 나는 마음껏 즐기며 행복을 누리겠다고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최고의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 치밀한 인생을 탐구하여 작정한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즐겁게 낙을 누리며 산 결론이 무엇입니까? ‘헛되다’ 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즐겁고 기쁘고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맘껏 즐기며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부모 덕으로, 또는 가족이 가진 재산으로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려는 한량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 얻고 또 땀 흘려 일한 대가로 부를 쌓아 해외 여행을 다니고 명품 옷과 백을 들고 다니고 최고의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인생을 즐기려고 하는 로망을 품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성공하여 그런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듯이 꽃이 피면 떨어지게 마련이고 값 비산 음식도 두 세번 먹어보면 질리고, 명품 옷을 입고 초호화 아파트에 산다 하더라도 몇 년만 살고 나면 지루하고 무미건조하고 결국은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서 행하는 일들 중 나름대로 가치 있고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성실하게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의사, 검사,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이라는 일생에 큰 명예를 얻기 위해 온 열정을 다해 살아갑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공하여 명예와 부를 얻기도 합니다.
또, 건축가가 몇날며칠, 혹은 몇 달이나 몇 년에 걸쳐 땀을 흘려서 아름답고 튼튼한 건물이나 대교를 짓지도 하고, 예술가가 각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품을 만들어 내고,
또는 작곡가가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들려진다면 그것은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도 솔로몬은 허무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이룬 일, 그 사람이 만든 것 등 나름의 가치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허무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아무리 대단한 성과를 거둔 사람도 허무하게 죽고 나면 그가 세운 업적이나 성과가 본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성과가 그만큼 대단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가 다 높은 업적을 쌓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건 허무하게 죽어 갈 뿐입니다.
결론은 죽은 후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39: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 뿐이니이다"
시62 :9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여러분, 이처럼 허무한 것이 인생입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도 없는 인생, 자신 스스로 나름대로 의미 있고 특별한 일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고 평생 땀 흘려도 결국 그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뼈에 사무치도록 외치는 전도자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덧없는 인생의 실체를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허무하지 않는 진리를 찾기에 온 심혈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그 삶을 참되게 하실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 참 진리 이신 예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세상이 주는 희락은 일시적일 뿐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고 합니다. 본문을 쉽게 해석하면 “알고 보니 웃는 것도 미친 것이고, 즐거움은 쓸데없는 것이다”가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웃음이나 희락은 하나님과 무관한 인간적 의미의 쾌락을 말합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쾌락과 즐거움이 당시에는 큰 웃음과 희락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후에 따라오는 극심한 허탈함과 공허함은 이전의 웃음과 희락을 잊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크기 때문에
솔로몬은 웃음이나 희락을 미친 것이며 쓸데없는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토록 직설적이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자신에게 안겨준 실망감과 허무감이 컸고 그것을 추구하며 인생을 낭비한 것이 얼마나 헛되었는지에 대해 후회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쾌락을 쫓아갈 당시만 해도 무언가 기대감을 안고 있었지만 막상 그 끝에 도달하니 너무도 허무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를 이처럼 확정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를 향해 자신이 경험했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것은 솔로몬의 말이 아니라 해도 허탈하고 공허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 우리가 살아오면서 어떤 큰 기쁨과 감동이 있었습니까?
학교에 합격, 직장에 취업, 연예시절과 결혼 후 신혼, 진급과 호봉의 상승, 또 자녀출산,
그때의 기쁨과 감동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조금은 감정의 찌걱이가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지나가고 나면 그땐 그랬었지 하고 회상하고 옅은 미소를 짓고 말 뿐입니다.
또한 이것 없이는 안될 것 같고, 이 사람 없이는 못 살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무의미 해지고 무가치 하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심하면 그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존재에 대해 못 견뎌 하며 심지어 이혼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대단해 보여도 지나고 보면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에 매이고 제한적이고 덧없는 세상적 기쁨에만 매여 살아갑니다.
물론 성도 된 우리 역시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만 당장의 즐거움과 기쁨, 지나가면 허탄한 것으로 인식되는 무의미한 즐거움 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에만 매여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육적, 감정적 쾌락을 위한 이기적인 삶에 치우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정적, 육신적, 일시적 즐거움보다는 당장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영원하고 쇠하지 않으며 소멸하지 않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자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육신적 욕구를 적절히 절제하고 참된 행복과 기쁨, 참된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삶의 의미를 쾌락에 두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것일 뿐입니다.
3절을 보면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 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공동번역 성경은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술에 빠져 보기도 하였다.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붙잡고 늘어져 보았다. 하늘 아래 이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내려고 하였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참 된 지혜를 얻고자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 노력이 눈물 겹기까지 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였고 그 안에서 끝없는 고민과 연구를 거듭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공허한 심령을 채우고 만족함을 누릴 수 있을지를 궁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앞선 1절에서 솔로몬이 선언한 것처럼 그야말로 허무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노력과 고민, 갈등, 그리고 그의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절실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주변 에는 이처럼 어리석고 허무한 육체적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술과 담배와 유흥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만족과 기쁨과 쾌락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신이 참된 지혜, 인생의 참된 가치와 만족, 기쁨과 쾌락을 얻으려고 그토록 몸부림 쳤던 사실을 말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만족은 세상적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후세에 남겨 교훈합니다. 그리고 그 교훈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헛된 노력을 그치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노력하고 애쓴 만큼 공허 와 허무, 실망과 절망은 오히려 더 크게 그들을 엄습할 것이기에 모든 세상적 노력과 쾌락 추구는 헛된 것임을 깨달으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솔로몬의 이와 같은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비록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죄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목적이 되고, 그것으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자신을 허무의 나락으로 몰고 갈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인간적 노력에 앞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그 관계를 견고케 다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쁨과 만족, 삶의 의미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 힘으로 결코 얻을 수 없으며, 우리의 수고와 노력만으로 얻을 수 없는 참된 가치와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은 바로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아무리 기쁘게 살고 즐겁게 살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래서 조금의 기쁨을 누리고 잠시 행복할 수는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의 끝은 허무이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참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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