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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전도서 1장12~17절 세상을 보는 안목

96:6-9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존귀와 위엄과 능력과 아름다움이 성소에 있다고 하신 주님,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성소로 주의 백성 된 저희들이 예물을 들고 들어가

영광과 권능을 돌리고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경배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전도서 112~17.

1. 성도는 말씀에 기초해 보다 분명하게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춰야 합니다.

12, 13절을 보면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 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탁월한 지혜로 온 마음을 다하며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이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분명하게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사람이 아닌 솔로몬이 했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신적 지혜로 잠언, 아가서, 전도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주옥과도 같은 3편의 교훈의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함께

인생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묵상의 집약체 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 한 가지 배워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로서 세상과 말씀에 대해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탁월한 지혜를 가진 자임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말씀과 자신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과 묵상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솔로몬처럼 우리 성도들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성도들은 누구보다 신령하고 신비한 영적 진리를 깨달은 자들로

이미 지혜를 소유한 자들이지만 이러한 영적 진리 가운데 숨겨진 수많은 보화를

더 풍성히 깨닫고 세상을 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진리의 삶, 지혜의 삶을 살기 위해 보다 깊은 고민과 묵상,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3~5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세상 일에 바빠서 성경을 읽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도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없이 되는대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령한 지혜를 주시고, 생명과 진리의 빛을 우리 심령에 허락하신 것은

그냥 되는대로 세상 시류에 따라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부여하셨고 깨닫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것을 받기 만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면 어찌되었겠습니까? 우리는 그가 저작한 잠언이나 아가,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보는 전도서와 같은 주옥과도 같은 글들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솔로몬을 통하여 이 귀한 성경을 남겨주셨는데 그 말씀을 읽지도 않고 연구도 하지 않고 삶 가운데 적용하고 실천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그스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지혜,

세상에 대한 바른 판단력과 안목이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먼저 우리가 삶을 불성실하게 가는 것이 됩니다.

또 이는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빛, 지혜의 빛을 비춤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지혜를 통해 세상을 더욱 정확히 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고, 부단히 삶 속에서 묵상하고 고민하며 더 깊고 온전한 지혜에 이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진지한 고민과 묵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될 것이며

참된 삶의 길 위에 서며 지혜롭고 온전한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적 지혜를 부여받은 인물입니다. 이런 그가 오늘 말씀에서는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본 결과 큰 지혜를 많이 얻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동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대 현자들의 글 등을 통해

지혜롭고 지식 있는 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는 그가 자신의 시대까지 현존하는 모든 지혜에 대해 다 섭렵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가 동시대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대에 나라를 다스렸던 왕이나 현자들보다도 뛰어났음을 말합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이처럼 뛰어난 지혜와 지식의 소유자로 자처하고 있는 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지혜의 한계와 그것이 지닌 허무함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솔로몬은 실제로 누구보다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가 되었지만

그러한 지혜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솔로몬의 이러한 고백은

우리 인간이 지닌 명백한 한계와 무능력 함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즉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솔로몬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어리석은 존재요, 허무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그러한데 평범한 지식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의 지혜는 어떠하겠습니까?

단지 지혜만 그렇습니까? 부나 명예, 권력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우리가 아무리 특별한 것, 아무리 많은 것, 아무리 대단한 것을 가지고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아무 보잘것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랑하며, 그것으로 인해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만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년이나 20년 혹은 30-40년 정도 살다가 죽으면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매우 슬퍼하며 한창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다고 애도합니다.

반면 100년 가까이 살다 죽은 사람은 장수하였다고 하며 호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 앞에서 10년을 살았든 100년을 살았든 모두가 짧은 인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짧은 인생 안에서 짧다 길다, 힘이 세다 약하다, 건강하다 병들었다, 지혜롭다 미련하다, 부하다 가난하다와 같은 전적으로 상대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가지고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남보다 조금 낫고 조금 많고 조금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해지기 일쑤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얼마간의 만족과 기쁨을 줄 수는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자랑은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나 허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오늘 세상에서 견줄 자 없는 뛰어난 지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자 할 때 자신은 한없이 무능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 특별한 것을 지니고 있다해도

그것은 결국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아무것도 내놓을 수도, 내세울 수도 없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지혜롭다고, 힘이 있다고, 많이 가졌다고, 오래 살았다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도토리 키 재기’ 와 같이 어리석고 한심한 일입니다.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취할 자세는 겸손이고, 감사이고, 절대적인 의지와 신앙 뿐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없다 해도 비굴하지 않고 있다 해도 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진실하게, 참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참 지혜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절에서 솔로몬은 “내가 다시 지혜를 얻고자 하여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솔로몬이 지혜를 얻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앞서 솔로몬은 13절에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였다’ 고 밝히고

16절에서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다’ 고도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지혜를 얻고자 일반적인 것들, 긍정적인 것을 탐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은 그 탐구의 대상을 ‘미친 것, ‘미련한 것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는 지혜나 지식의 정반대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것까지 탐구한 것은 지혜와 지식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 하기위해 그에 반하는 것을 살펴보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것을 섭렵한 솔로몬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자신이 지혜에 특별한 가치가 있을 줄로 생각해서 세상에 속한 모든 지식과 지혜를 섭렵했지만 그것은 손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에 더하여 솔로몬은 18절에서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구하고 얻고자 하는 자들은 기껏 사서 고생하는 어리석은 일을 할 뿐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솔로몬이 아무 근거도 없이 한 말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볼 때 사람이 지식을 구하고 지혜를 쌓는 것은 좋은 일, 의미있는 일로 보이지만 그것이 죄로 죽을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결코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지식을 가진 자도 미련한 자처럼 죽음 앞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고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하나님없이 이처럼 지혜와 지식만을 쌓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곤고케 하는 결과까지 초래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나름대로 지혜와 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자들 중에 무신론적 사고와 구원과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하며 참 진리의 반대편에서 거짓된 구원을 가르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이러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허탄한 세상의 지식추구로 인해 참된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거스름으로 더 큰 환난을 자초하는 자라고 할 만큼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것이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경은 세상적 지혜나 지식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주장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과 같이 뛰어난 학자가 왜 많은 학문과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했습니까?

이는 세상 학문이 도리어 참 진리이며 사람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또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그것은 거짓 지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참 지혜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치를 넘어 참되고 소중한 삶의 의미와 방향을 깨우쳐 줍니다.

그것은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에 생명과 기쁨, 은혜와 축복, 확고하고 변함없는 소망을 부여합니다.

우리의 손에 무언가를 남기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전존재를 다해 받아도 다함이 없는 은혜, 잔이 넘치는 축복을 채우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시길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복되고 은혜로운 교제를 나누며 예수님에게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 위의 것을 바르게 알 때만 해 아래의 것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며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는 삶을 산다면 우리 모두는 결코 바람을 잡는 무가치하고 헛된 수고만을 거듭하는 삶이 아니라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 한 의미와 삶의 충족함을 깨닫고 다윗과 같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판단 기준을 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판단의 기준을 삼는 지혜로운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절대자되시는 하나님 앞에 그 무엇도 자랑할 수 없으며, 참된 지혜를 세상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