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6:1-3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찌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찌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찬송가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뿐만 아니라 삶 가운데서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그리할 때 하나님이 저희의 찬양을 받으시고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전도서 1장9~11절.
1. 해 아래서는 어떤 것도 새것이 없으며 모두 헛되며 허무한 것들일 뿐입니다.
9, 10절을 보면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것’ 은 앞에서 말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유한한 인생을
새롭게 할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들 중에서는
인생의 절대적 허무라는 문제를 해결할 어떤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기발하고 획기적인 발명품을 새로 만들어 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이 세상에는 권태로움의 반복이며, 단조로움의 연속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말씀에 대해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당시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이 시대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컴퓨터나 자동차, TV나 여러 가지 가전제품들, 핸드폰, 더 나아가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인공 위성 등의 활용은 과거에는 생각해볼 수조차 없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문명의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게 한 이러한 발명품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 라 말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와 비교할 때 이러한 과학과 물질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만큼이나 사람들이 참된 만족을 느끼며 근심 걱정없이 완전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더욱 불만족과 불평, 원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더욱 강도 높은 불안과 초조와 강박과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데도 이것을 ‘새로움’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온 세상을 뒤집을 만한 놀라운 창조물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어떠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등장한다 하여도 이런 인간의 발명품들이
결코 인생의 궁극적 문제인 죽음과 허무와 절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해 아래 그 어떤 것도 인생의 궁극적 물음을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인간에게 어떠한 만족도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간단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마치 과학 문명과 의학의 발전이
인생에 행복과 새로움을 제공해 줄 것처럼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사실 이러한 인간의 믿음과 희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는
인간의 사악한 심성과 가공할 만한 과학이 결합되어 수많은 살상자를 내고,
전인류를 멸망과 파괴의 공포로 몰아넣은 전쟁을 통해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이러한 헛된 공상과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해 아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해 아래서 사람이 추구하는 노력이 얼마나 허탄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각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희망을 두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릴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며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계21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거룩하라 하시고"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의 창조주이시듯 하나님만이 우리 삶에 새로운 것, 만족스러운 것, 온전한 것으로 채울 수 있음을 믿고 또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잊혀질 것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히 기억될 것을 위해 일하는 성도가 됩시다.
11절을 보면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솔로몬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짧은 기간 동안만 생명을 유지하는 극히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과 함께
비록 세상에서 엄청나게 큰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은 잊혀질 수 밖에 없는 유한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함으로
허무한 인생의 면모를 또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불과 몇 년 전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조차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하루에 몇 명이 감염되고 몇 명이 죽고 마스크가 없고 약이 부족하고 병상이 부족하고 감염될까봐 두려움에 떨던 때가 언제 입니까?
아직도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다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수십년, 수백년 전의 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그것은 얼마 되지 않아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종국에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하는 무의미하고 허망한 것으로 지워지기 일쑤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수고하여 노력한 것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도 일생을 마감하고 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게 될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될 것인지는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또 그가 세운 업적에 따라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특별하게 기억되는 대상도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잊혀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무의미한 인생 가운데 참으로 의미있고 기억될 인생,
기억될 만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려 하기 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원토록 기억하시며 영원토록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며 축복하시며 결국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교과서에 등재하고 교육합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사람들은 일반 평범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들의 삶이 헛되지 않고 허무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쳤다 하더라도 육신을 위한 것으로 끝났다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어떤 사람으로 판단되는지에 따라 멸망에 이르게 될 수도 있고, 구원을 성취하는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성도로서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아갈 때에,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올리게 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고 온전히 아름답고 복된 것으로 영원히 세워질 것입니다.
히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골3:1, 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은 인생이 절대 허무할 수밖에 없음을 반복하여 선언하며
어떤 이유에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인지 예를 들어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비탄 섞인 선언은 오늘날 성공과 승리, 쟁취 만을 위해 온 정열을 기울여
사는 현대인들은 모르고 살다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현대인들이 인생의 허무를 생각하기 싫어서 외면하고 듣지 않으려 하고
나의 인생은 허무하지 않다고 큰 소리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늙고 병들고 고통 속에 빠지고 죽음을 맞이 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허무 그 자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참으로 허무합니다. 무가치 합니다. 공허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인정할 때 우리의 인생은 해 아래서 무의미한 몸부림을 반복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참 가치 있는 인생, 의미 있는 인생을 향해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직시하고 인생의 바른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미 있었던 것이 다시 있고, 이미 한일을 다시 하고 그래서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루어내고 성공했다 할지라도 한 세대만 지나가면 기억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에 가치를 두지 말고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사라질 것에 목숨을 걸지말고 영원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고 아침 안개 와도 같으며 오늘 피었다 내일 지는 이름없는 꽃들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의 성공도 영광도 다 지나가고 아무 의미가 없고 허무한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되고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며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세상 논리에 빠지지 말고 세상 풍속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천성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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