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46-50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불신자들이 저희들을 심히 비난하고 조롱하여도 저희들이 주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격하는 악인들 때문에 분개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의 삶이기 때문에 저희는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저희가 이 새벽에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를 원하오니 말씀의 풍성한 복과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야고보서1장12-27절
1.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는 자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허락하십니다.
12절에서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시험을 통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시험을 통해 옳다고 인정된 자에게만 허락하신다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고 이긴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욕심을 선택하느냐 말씀을 선택하느냐이고,
하나님을 선택하느냐 마귀를 선택하느냐? 는 것입니다.
잘 아시듯이 우리의 조상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마귀의 말을 선택하므로 영혼과 육신이 죽었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유혹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계략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선택하면 죽음이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생명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마귀의 시험을 뿌리치고 참고 이겨내야 합니다.
시험을 참는다는 것은 시험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님의 은혜로 소망 중에 견뎌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어려움 현실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려는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여 생명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먼저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실 때 불평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시련을 기뻐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련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시련을 주시나? 하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시험을 받을 때 자기의 생각이나 능력으로 대처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시험은 결국 하나님의 허락 하에 주어지는 것이므로 내 힘과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할 때에만 시험들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시험을 통해 영적 성장이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시험을 이기는 길은 무엇보다 인내임을 알아 오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이 올 때 어떤 인간적 생각과 방법으로 신속히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오직 기도하는 가운데 인내함으로 그 모든 시험을 견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시련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할 때 우리의 믿음이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온전한 마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곧 시험이 오면 기쁘게 여기되 온전히 기뻐하며, 인내하되 온전히 인내함으로써 온전한 성도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험이 올 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기뻐하는 척하고 기도하는 척하며 인내하는 척함으로써 부분적으로만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기쁨과 인내,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로 모든 시험을 완전히 통과한 온전한 모습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도 온전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인간을 죄로 유혹하는 분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중생시키시는 분이며 각양 좋은 선물들만 주시는 분입니다.
2절과 12절에서는 시험이 시련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13절에서는 죄를 짓도록 유도하는 유혹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2절의 시험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연단하기 위한 시험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13절의 시험은 인간의 욕심으로 죄를 지으려 하는 유혹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직접 시험하신다고 하는 언급들이 자주 발견되고 있지만
이러한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믿음의 성숙을 위해서 테스트하는 성격의 시험일 뿐,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으로 서의 시험이 아닙니다.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으로 서의 시험은
마귀가 하는 것으로,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 자신에게서 나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종종
자신에게 발생한 시험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야고보는 인간들에게 닥쳐오는 죄의 유혹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험을 받는 자는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짓도록 유혹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13절은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누구도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분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마치 죄를 부추겨 악에 빠지도록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출4:21에서는 하나님이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이고, 삼하 24:1에서는 하나님이 유다 왕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인구 조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고, 왕상22:19-23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죽게 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사례는 표면적으로만 보면 하나님이 악을 조장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유 혹에 빠지게 하시는 분처럼 여겨지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세 가지 사례에서 하나님이 마치 악의 조장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사도 바울이 선포한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는 애굽 왕 바로가
그 상실한 마음대로 계속 하나님의 뜻을 어기도록 내버려 두심으로써
오히려 온 천하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더욱 드러내셨으며,
또한 하나님은 강대한 나라를 이루어 교만에 빠진 다윗의 마음을
사단이 부추기는 것을 허용하심으로써,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도록 내버려 두셨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이미 악의 화신이 되어 버린 아합 왕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거짓말하는 영이 아합의 마음을
그 욕심이 이끄는 대로 미혹하여 죽게 하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근본적인 관점에서 이상의 사건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죄로 유혹하셨다는 사실이 조금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것에 있지만
사단의 시험 목적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험을 올바로 통과하면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사단의 시험에 빠지면 예외 없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 모습 또한 추하게 변하고 맙니다.
또 방법 역시 하나님은 믿음에 호소하지만 사단은 욕심을 자극하고 부추깁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의 연단을 위한 시련이라고 할 수 있고
사단의 시험은 유혹과 미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시험이 성도들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도약대라고 한다면
사단의 시험은 멸망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덫과 함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살며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사단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영적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사단의 시험이면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고,하나님의 시험이면 오히려 기쁜 마음과 굳은 믿음으로 통과함으로써
정금과 같이 거룩한 모습으로 하늘의 생명 면류관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시련을 만나면 온전히 기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원망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또 내 힘과 의지로 이겨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지혜를 얻고, 인내함으로 견디어 내고, 온전하게 이겨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연단시키고 거룩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그 시험을 믿음으로 잘 견디어 내어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크고도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그럼 왜 사람은 시험을 받는 것일까요? 14절 말씀을 보시면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끌려 미혹된다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미끼에 걸려 잡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며, 이것은 잠언7장의 매춘부의 꾀임에 빠져 사망의 장소로 끌려가는 한 어리석은 남자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시험에 죄를 짓는 것은 바로 자신의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이지
남이나 하나님에게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망각하기 일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일을 벌이고는 실패하면 남을 탓하고 원망합니다.
실패의 원인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욕심에 끌려 미혹되었기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탓과 원인을 이웃이나 하나님에게 돌리며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고는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먹어라고 주어서
먹었다고 하나님을 탓하고, 그 책임을 아내 하와에게 돌렸고, 하와는 뱀에게 돌렸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이 죄를 짓고는 변명을 대거나 핑계를 대어 벌을 면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욕심의 끝은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에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의 발단은 욕심이고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욕심이 생길 때 욕심을 죽이지 않으면 그 욕심이 점점 자라나게 되고
욕심이 자랄수록 마음의 평안과 만족을 빼앗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와 결국에는 허무한 죽음과 비참한 심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뱀의 거짓말에 속은 것처럼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욕심을 불러일으켜
마치 바라는 것들을 모두 이루고, 소유하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안다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데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욕심을 따라 죄를 짓고
그 죄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출산의 과정에 비유한 것은 그 진행이 그만큼 자연스럽기 때문이고,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욕심을 자극하고 그 욕심이 불일 듯 일어나 욕심을 따라 행동하여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혹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항상 경계해야 하고 욕심과 탐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사망에 이르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세속의 유혹을 이겨냄으로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합니다. (0) | 2021.09.22 |
---|---|
모든 시험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바로 본인 자신에게 있습니다. (0) | 2021.09.22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0) | 2021.09.22 |
세상것을 자랑하지마십시오 (0) | 2021.09.22 |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0) | 2021.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