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도에게는 세상적인 인기나 비난을 피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10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후
예수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가지 않겠다고 하시고서는 마음을 바꾸어 올라가신 것으로 여겨지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도 말을 바꾸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번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작정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형제들에게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그들과 함께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며, 또한 형제들이 요구하는 대로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되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올라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비밀리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두 가지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피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경우는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상경할 경우 많은 무리들에 의해 둘러 싸여
대대적으로 환영을 받고 떠받들려지는 경우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예수께 대해 적개심을 품고 기다리고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전면적인 충돌입니다.
그런데 이번 예루살렘 방문으로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는 것이든지,
혹은 반대로 종교 지도자들과 정면 충돌을 하는 것이든지,
둘 다 예수님으로서는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실 시기가 아직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사람들로부터의 불필요한 환대나
혹은 그 반대로 불필요한 충돌을 원치 않으셨다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시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다 인식하고서도
굳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쪽을 택하신 것은
사람들의 인기나 비난에 상관없이 감당해야 할 자신의 사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기다 보면 원치 않게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바도 아닌데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을 받게 되면 기쁘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또 정반대로, 사람들의 은밀한 질시나 비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굳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가면서까지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 하며
모두 그만두고 싶어 집니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예상되는 인기나 비난을 지혜롭게 피하시면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러 올라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동기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사람들의 인기와 관심이 부담스럽습니다.
또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도 역시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칭찬도 있을 수 있고 비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해야 할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가능한 한 지혜롭게 그 두 가지 경우를 피하며
묵묵히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종교 지도자들은 교권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11절을 보시면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의 행방을 물으며 열심히 찾았던 사실이 나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곧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킵니다.
이들이 이토록 열심히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찾아 죽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입니까?
예수님은 안식일 준수와 같은 율법 문제에 대해
기존 종교 지도자들이 확립한 입장을 정면 부인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과 사역이 하나님께 근거를 둔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주장은 기존의 종교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보다 본질적 이유는,
그들의 종교적 권위가 예수님 때문에 위협당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종교권력에의 집착이 종교 지도자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찾아 죽이고자 한 본질적인 이 유였던 것입니다.
유대 당국자들이 이렇게 종교권력에 집착해 있는 모습은 13절에서도 엿 보입니다.
백성들 중에 그 누구도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하여 드러나게 예수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즉 일반 백성들은 예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도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 예수와 관계된 이야기는 공개적으로 감히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평소 유대 당국자들이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권위적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한 대목입니다.
진리에 대해, 혹은 신앙 문제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질문도 하고 의견도 제시하고 해야 할텐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반대되는 것은 발설조차 못하도록
권위적이고도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종교권력을 위해 진리를 억압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실 종교권위은 필요합니다. 종교권위는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위로부터 주어진 권세이므로 정당한 교권의 행사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가 교권에 집착하는 경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럴 경우, 교권이 진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로,
종교 문제에 관한한 절대적인 권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경의 진리 자체 보다는 자신들의 권세와 권한에만 집착하게 되자,
구약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요 진리 자체 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엄청난 잘못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교권주의의 오류는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권을 수호하기 위해 진리를 호도하고 자신들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악마 또는 마녀라 하여 가차없이 제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중세에 마녀 사냥으로 희생당한 사람은 수백 만 명에 달합니다.
이는 참으로 종교 지도자들 이 교권에 집착하게 될 때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실례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개교회들과 교단들의 지도자들은 이런 점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살펴야 합니다.
교권을 잡은 자로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권세있는 자리에 앉아 교권의 유지와 행사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권을 가진 자들은 진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교권에 집착하는 순간, 교권을 잡은 자들은 진리의 봉사자가 아니라 대적자로 전락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신앙 문제에 관한 공개적 질문과 토론이 허용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12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님께 대한 여론이 분분하였습니 다. 어떤 이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고들 하였습니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단지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는 말은 조금 소란을 피우는 정도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라는 뜻입니다.
즉, 무리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이 메시야 일 수도 있다는 의견과,
거짓 선지자에 불과하다는 의견으로 나뉘어 여론이 분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을 보시면 그들 중에는 예수님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결같이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가 그리스도인가, 거짓 선지자인가 하는 이토록 중대한 문제에 대해 군중들은 단지 유대 당국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물어 보지도 의견을 표명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당신들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진실이냐”고 묻고,
또는 “예수에 대한 내 판단은 이런데 이 판단은 틀린 것이냐”고 한마디 질문을 제기하는 이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정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교 지도자들이 두려워 그들의 비위나 맞추며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그들의 관심을 억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뉴스를 보면 논란거리가 될 만한 예민한 신앙 문제라든지,
혹은 목회자의 일탈에 대해 의문이 있어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본문의 군중들처럼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일반 성도들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싫어하고
억압하려는 일부 종교 지도자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대로 방치한다면 차후에 심각한 상황이 되어 언론에 노출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불신자들에게 비난 받는 더욱 더 큰 문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나 궁금한 것은 언제든지 영적지도자에게 묻고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의 생명과 직결된 진리에 관련된 문제인데 도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다 보면 잘못된 이단 사상으로 빠질 수도 있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오해나 잘못이 있으면 깨닫게 하고 시정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교리 문제나 교회 행정의 문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경직화되고
권위 주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성도 누구든지 신학적으로 궁금한 것은 묻고 대답하므로,
교회가 더욱 건강해지고 진리의 터 위에 굳건히 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의 일시적인 인기나 명성을 얻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그 반대로 불필요하게 충돌하는 것도 원치 않으셔서 지혜롭게 피하셨습니다.
그리고 감당해야 할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셨습니다.
저희들도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의 불필요한 반응을 지혜롭게 피하면서,
또 거기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종교가 권력화 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하고,
영적인 문제는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어 이단이나 잘못된 교리에 혼돈을 일으키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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