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세상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야 합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한동안 갈릴리에서만 다니시고 유대에서는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이유는 예수님이 이적과 기적을 베풀기는 하였으나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고 자기의 살을 먹어야 산다는 율법을 어기면서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안식일을 범하지 않으셨고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로서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지방으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두려워서 유대 지방을 피한 것이 아니라
아직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가 아니고 또 저들과 불필요한 충돌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상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불필요한 충돌은 피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과 타협하며 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들어내고
나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히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들과의 불필요한 논쟁은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상대방을 설득하여 이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묵묵히 우리는 씨만 뿌리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싹이 나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성령님이 하실 일입니다.
복음 전파로 인하여 긴장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 부모형제, 부부관계, 부자지간에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그들과 싸우게 된다면 전도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이 싸우려 들 때에는 물러서서 기도하고
또 기회를 봐서 복음을 선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맡기면 됩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지혜로운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허탄한 명예욕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2-4절을 보시면.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께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올라가실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4절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라고 하는 말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께서 유대 지방에 가셔서 자신을 세상에 보다 널리 알리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말씀의 권세와 이적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이 갈릴리 작은 마을에서만 묻혀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당시 유대 예루살렘은 평상시에는 약 3-4만명이 거주하였으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큰 명절을 맞으면 전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몰려와 2-3백만 명까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적과 기적을 보이시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오셨고,
이적과 기적과 힘과 능력으로 대적을 제압하여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가 주가 되시어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고통받는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므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바로 이 점을 알지 못하고 예수께서 어떤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이 일들을 행하시는 것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며 살아 갑니다.
학자는 학문을 통해서, 예술가들은 예술적 재능을 통해서, 운동선수는 훌륭한 경기로서,
박사는 좋은 연구로서 자기 이름을 내려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망각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자기 이름을 내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됩니다.
오로지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후 후세들에게 비난과 그 이름이 잊혀지고 지옥으로 떨어져 그 삶이 실패로 끝나지만
오직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후세들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고 천국으로 들어가 성공의 삶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명예욕에 빠져 의미 없는 일에 열정을 쏟지 않고
나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에 열정을 쏟아 부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후세 사람들에게 명성을 떨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불신 가족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5절을 보시면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께 유대로 올라가도록 권유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세상사람들에게 명성을 떨치기 만을 바랄 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죄에서 구하실 메시야시라는 사실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아직도 모른다는 것은 우리로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믿는 예수님을 부모자녀, 형제자매가 믿지 않는 경우와 같습니다.
신앙 문제로 가족들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가족들의 불신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가족은 모든 면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불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며, 늘 마음의 짐이 되고 근심꺼리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도 형제들로부터 불신을 당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후일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과 부활 이후에야,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교회에서 기둥 같은 역할을 하였고, 야고보서의 저자가 되었다. 예수님은 생전에 가족들로부터 불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좋은 결말을 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가족들의 불신으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예수님의 경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의 불신과 배척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인내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여러분의 온 가족들로 구원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6절과 8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유대로 올라가시라고 하는 형제들의 권유를 물리 치셨습니다. 형제들이 예수께 유대로 올라가시라고 한 것은 예수님 보다는 자기들을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이 유명세를 타게 되면 자신들도 거기에 편승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므로 이번 명절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6절의“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하신 말씀은
내 때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때이며,
구체적으로는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인류 구속을 성취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 때는 좁게는 예수의 형제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고자 원하는 때이고,
더 넓게는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 때가 언제든 준비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코 인간의 때에 맞추어 일 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때를 따라 일 하실 뿐,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것에만 집중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주님의 뜻과 쉽게 혼동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곧 주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잘못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계획과 결정을 내가 다 내려 놓고, 주님이 이루어 주기 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우리 때에 맞추어 일 하시지 않습니다.
설혹 우리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졌어도 그것을 주님의 도움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의 때, 곧 주님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만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겸비한 마음으로 우리의 때인지 주님의 때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헛된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충성 된 종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참된 신앙인이라는 증거 입니다.
7절을 보시면 주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 사를 악하다 증거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께서 유대 지방에 가서 사역하심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의 기대와 달리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그들을 그 죄에서 돌이키도록 촉구하시기에,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지적하면 회개치 않고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성도들이 세상과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면 세상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녀답게 살려고 하면 세상사람들로부터 질시와 따돌림과 배척을 당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하였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죄를 책망하면 당연히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성도가 무조건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욕을 먹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참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 일 수 있습니다. 덤후3:12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고 하십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한다면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만일 여러분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면 즉시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뿐 아니라 세상으로부터도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늘의 상급이 있을 줄 알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신앙의 이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견제나 미움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신앙이 세속화된 것은 아닌지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가 세상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지혜롭게 불신자들을 대하게 하시고,
허탄한 명예욕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불신 가족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고 전도하여 저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일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뜻만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신앙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참된 신앙인이라는 증거라 알고 는 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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