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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요6:30~믿음이란 예수님을 닮는것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쫓아온 무리들에게

저들이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하시며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묻는 물음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오늘 본문 30, 31절에서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보여줄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고 하면서

모세가 보여준 것과 같은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과연 이들에게 기적을 보여주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믿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기적을 일으켰습니까?

애굽을 나와 광야로 들어설 때 불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들어 홍해 갈라 백성들이 애굽 병사를 피해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게 하였다.

물이 써서 못 먹을 때에는 나무토막을 던져 물을 달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에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주었으며,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아침마다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었으며,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면 메추라기를 잇사이에 끼이도록 먹여 주었습니다.

, 아말렉과 같은 대적들이 기습해 올 때에도 그들을 물리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그의 조상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믿고 순종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감사하고 감격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보다는 틈만 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고 부정적인 말만 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열 번의 기적을 보고도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하셨겠습니까?

그들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신앙으로 광야에서 다 죽어 갔습니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랩 외에는 이스라엘의 1세대는 다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무엇을 말해 주는 것 입니까? 기사와 표적은 사람이 보일 때 뿐이고, 그때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사와 표적은 믿음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가장 많은 기적을 베푸신 곳은 고라신, 뱃새다,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 없는 이들 고을들을 탄식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표적은 믿음을 낳지 못합니다.

표적만을 구하다가 망하고 죽어 간 민족이 유대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해서는 안되며 표적만을 쫓아다녀서는 안될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으며, 위험한 신앙입니다.

표적 신앙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으며, 또 사이비 이단에 빠질 수 있는 신앙입니다.

사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출애굽 2세대를 재교육하기 위해 기록한 신명기를 보시면.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모세와 선지 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 함을 받지 아니 하리라" ( 16:31)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고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비록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역사를 직접 볼지라도 자기의 눈을 의심할지 언정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을 오직 말씀의 토대 위에 굳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표적이 없을지라도 말씀을 붙잡고 말씀 따라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군중들이 말하는 표적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표적은 다릅니다.

군중들은 단지 먹는 떡 만을 생각합니다. 육신 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육신을 위한 먹는 떡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생명의 떡을 말씀하시며, 그 생명의 떡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지만 다 죽었으나

하늘에서 내리신 산 떡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과 육이 산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중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떡을 주목하였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은 너무나 쉽게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도 그의 외모가 어떠한지, 직업이 무엇인지, 재산은 많은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하시고 어떤 은혜를 내려 주셨는지, 그 사람에게 뜻하시는 바가 있으며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역사를 하고 계시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거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허상이고 껍데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볼 때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지만 여전히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육신적으로만 생각하는 군중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님은 눈에 보이고 입에 먹을 것만 생각하는 군중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만 보아도 믿음은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으로 보고도 심지어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성경을 많이 알고 성경적인 지식이 해박하다고 해서 믿음이 좋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은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결코 말쟁이로 끝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누리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꾕과리가 되듯이 또한, 사랑을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사랑을 베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얼마나 말씀을 많이 아는지 어떤 신비한 영적 체험을 많이 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열심히 따라가고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이 통하지 않는 군중들이지만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자신이 이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교회 안에서는 이 땅의 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공준합니다. 이 땅의 삶에 집착하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추종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군중들과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으면 교회 나오는 것이 중단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삶이 풍요로워지고 일이 잘될 수 있습니다. 물질의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다보면 세상 적인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할지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라면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물질적인 복도 하늘의 신령한 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적 생명보다는 영적 생명을 따르는 것이 옳고 이 세상의 삶보다는 천국에서 영원한 삶이 비교활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 복음이 들어왔던 선교사도 진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전쟁을 불사했던 종교 개혁자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면 진정한 생명,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기 떄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이란 보는 것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에게 주목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저희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