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 왕 시대의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기였다.
영적 암흑인 시대에도 오바댜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었다. 오바댜에 믿음을 알아보자.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집권 후반기부터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하여 그 징계로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갈수록 타락하였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차츰차츰 멀리하더니 급기야 예배를 폐하고
이방 종교를 받아드려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급속도로 우상숭배가 펴져나갔다.
왜 사람들은 예배를 멀리하고 쉽게 우상숭배에 빠져들까?
그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기쁘고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어떤 제사인가?
율법에 따라 엄격하게 드려야 한다. 규례를 어기고 제사를 잘못 드리면 죽기까지 한다.
그리고 피의 제사이다. 피는 그 자체가 끔찍하고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자신의 죄를 제사장에게 고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밝혀야 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숨기고 싶지 드러내어 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죄 사함을 받으려면 죄를 고해야 한다.
죄는 숨기면 숨길수록 죄가 더욱 더 쌓여가기 때문에 나중에는 죄 때문에 죽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자신의 죄를 덮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릴 때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가축을 바쳐야 하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제사장이 그 가축을 죽여 피를 흘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불태워 죽이는 끔찍한 모습을 보기 싫은 것이다.
여러분 피를 보기 싫다고 제사를 드리지 않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가축에 자신이 오버랩 되는 것이 싫다고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되는가?
그것은 마치 살인자가 남을 죽여 놓고서 자기는 감옥을 가기 싫다고 도망 다니다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벌을 받기 싫으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놓고 하나님에게 제사만 잘 드리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사하여 준다는 데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싫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나? 사형을 당해야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이처럼 잔인하고 끔찍하고 엄격하여 답답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런데 이방종교의 제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야 말로 잔치고 파티다. 죄는 고하지 않아도 되고 풍성한 음식을 차려 놓고 절 몇 번 하고
나서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춤추고 놀면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 쉽게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매일 죄만 지적하는 예배보다
죄는 말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거운 게임하고 TV보고 영화보고 데이트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쌓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죄 때문에 심판 받아 지옥 가는 것도 모른 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다.
평상시 하나님 말씀은 절대 보지 않으면서 스마트 폰은 수시로 열어 본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눈 뜨면 쳐다보고 화장실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잠들기 직전까지 보다가 잔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성경을 그리 봤으면
평상시 찬양을 절대 듣지도 부르지도 않으면서 마귀적이고 사탄적인 음악은 잘도 듣는다.
공부하면서도 듣고, 차 안에서도 듣고, 길가면서도 듣고, 들을 뿐만 아니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평상시 하나님에게는 절대로 기도하지 않으면서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공부시간에 말하지 않기 훈련을 한다. 혼을 내도 때려도 안 된다. 언젠간 되겠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 봐도 없고
아세라 신과 바알 신과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그런 현상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나?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선민이라하는 이스라엘백성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이방 제사장의 딸 이세벨을 국모로 두어 이방 제사장은 850명이나 세우면서
하나님의 제사장은 잡히는 데로 죽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누구도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몰래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돕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아합 왕의 궁내 대신 오바댜이다.
성경에서 오바댜는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바댜는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닥치는 데로 잡아 죽일 때,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나누어 동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가져다 주면서 보호하고 있었다.
만약 발각되면 선지자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잃어야 되는 상황이다.
여러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알지도 않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알던 사람들도 하나님을 등지고 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웠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이러한 때 일수록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오바댜와 같은 믿음이 필요한 때다.
이세상이 얼마나 타락하고 어떤 모습인지 성경은 이미 기록하고 있다.
딤후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인간이 왜 이렇게 되는 줄 아는가? 하나님을 떠나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 말씀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니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가? 여러분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짐승은 하늘을 보지 않고 땅만 바라보며 산다. 먹을 것만 생각하고 산다. 육신을 위해 산다.
물고기는 물속에 사니 하늘을 볼 수도 없고 네발 가진 짐승의 시선은 항상 땅을 향하고 있으며
하늘을 나는 새도 사실은 땅을 보며 살고 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늘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라
다시 말해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라는 뜻이다. 그것은 육신을 위해 살지 말고
영을 위해 살아라는 뜻이고 땅의 것을 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라는 뜻이다.
롬8: 5~10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그런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많은 인간들이 오로지 육신을 위해 산다.
육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강도질 하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러분 마귀는 여러분이 아무 생각 없이 살도록 만든다.
여러분은 이 설교를 들으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질문도 하고 회개도 하고 자신을 생각도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까?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오늘 뭐 먹지? 뭐 하고 놀지? 내일은 뭐 먹지? 뭐하고 놀지?
주구장창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에만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다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리고 지옥 간다.
오바댜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났다. 엘리야 선지자가 오바댜를 찾아 왔다.
그 장면을 보면 오바댜가 자신의 의를 들어내고 자신이 죽을까 겁내는 겁쟁이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엘리야가 오바댜에게 아합 왕에게 내가 좀 보자 한다고 전해 주어라고 하자.
“엘리야 선지자님 제가 백명의 선지자를 숨겨 두고 먹여 살리고 있는데 아합이 엘리야 선지자도 죽이려 하는데 엘리야 선지자님이 만나자 해 놓고 도망 가시면 저도 죽습니다.
저가 죽으면 선지자 백명도 죽은 목숨입니다”라고 엘리야와 백명의 선지자를 걱정하고 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불신자들은 마귀의 올가미에 걸려 마법에 빠져 아무 생각 없이 살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오바댜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숨겨 먹여 살려주고 자신이 죽는 것보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도 다 죽게 될까 봐 염려하며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지금 유럽이 시리아 난민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이 경제가 안 좋아 먹고 살기 힘든데 시리아 난민들이 수천 수만 명이 몰려들고 있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자 보트 타고 오다가 죽고 국경 넘다가 사고로 죽고 굶주리고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이 왜 조국을 버리고 남의 나라로 들어가려 하는 줄 아는가?
수십년 동안 지속되는 내전 때문이다. 잔인한 IS의 테러와 살상을 피하기 위해 자유를 찾아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는 이슬람 국가이다. 그런데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다는 IS를 피해 도망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이 많이 있다.
아직도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하면 죽임을 당한다.
우리의 동족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종교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다.
다른 종교를 믿으면 발각되면 죽는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우리 선교사들이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돕고 있다.
탈북을 돕다가 중국에서 납치되어 북한 수용소에 갇혀 있다 죽음을 당한 목사님이 있는데도
또 다른 선교사들이 죽음을 무릎 쓰고 계속해서 탈북민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런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나?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멸망의 길로 가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은 멸망의 문으로 들어 가는 삶이다.
생명의 길로 가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위해 사는 길이 생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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