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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인간의 연약함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복은 고사하고 그 땅에 기근이 닥쳐 식량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굶주림으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식량을 찾아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남의 나라에 들어간 아브람은 목숨의 위협을 느껴 두려움으로

자신의 아내 사래를 여동생이라 하여 애굽의 바로에게 아내를 내어주고 많은 재물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약속의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불신앙적 행동을 하였고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하여 아내를 버리는 비정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람이 어떤 사람 입니까? 지난달 첫째 주에 우리가 알아 보았더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 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사람입니다.

12:7에서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예배의 사람 입니다.

12:8에서 아브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사람 입니다.

12:1~3에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응답 받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일로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 입니다.

11:8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을 인정 받은 사람 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도대체 그에게 그 당시 상황이 어떠하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첫번째로는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찾아 보겠습니다.

여러분 햄스터 길러 본적 있습니까?

선생님도 키워 본적이 있는 데 아무런 기초 지식도 없이 새끼 햄스터 암수 각 한 마리씩 사서

길렀는데 먹을 것 주고 물 갈아 주고 하면 재롱도 잘 떨고 재주도 부리고 정말 귀엽습니다.

그런데 그의 매일 청소를 해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냄새 때문에 못 키웁니다.

그리고 얘들이 점점 성장하여 드디어 교미를 하고 새끼를 낳는데 한번에 9 마리나 낳았습니다.

그 새끼가 자라는 과정도 정말 신기하고 재미 있는데 그곳도 잠시 조금만 자라면 먹이 쟁탈전에

들어 갑니다. 얼마나 싸움이 극심한지 물고 물리는 싸움에 상처로 피투성이가 됩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없으면 자기 동족까지 먹어 치우는 끔찍한 상황도 연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본능적으로만 살아가는 이런 동물의 세계에서만 이런 일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진 사람도 극한 상황에 처하면 동물과 같이 아니 동물보다 더

잔인해 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가 고프니까? 그리고 살기 위해서

201056 신문에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요덕 )에서 굶주림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병이 걸려 죽은 아들의 인육까지 먹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굶주린다는 것은 인간성이 상실되고 인격이 파괴되어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 왔습니다.

처음 정착한 곳이 세겜인데 그곳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대도 아브람은 세겜에 머무르지 않고

벧엘로 갔으며 그 이유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유목민인 아브람이 물과 목초지를 찾아

벧엘까지 갔을 것이라 추측 됩니다. 아무튼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벨엘에 도착하였지만

그곳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와 같이 좋은 강들도 없고 메소포타미아처럼 비옥한 땅도 아닌데

비는 내리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능 하고 농사가 불가능하면 정착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가축을 기르는 목축업을 할 수 밖에 없고 목축업은 목초를 따라 다녀야

하므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대 양과 염소와 소가 목초를 다 뜯어 먹고

더 이상의 목초도 없고 생계를 위해 가축도 하나 둘 잡아먹게 되어 결국 빈털터리가 됨으로

더 이상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는 것 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땅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다.

비를 주시지 않을뿐더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묵묵부답으로 아브람은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결국은 물과 양식이 있는 남의 나라 애굽으로 들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애굽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기근이 심해 잠시 피한 것이지 이사간 것은 아니다.

그러면 두번째로 아브람을 불러내신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물과 식량을 주지 않으시고 고통 속에 몰아넣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 알아 봅시다.

영적으로 볼 때 가나안은 하나님의 처소, 성전, 거룩한 곳이며 애굽은 세상 입니다.

그리고 기근은 성도의 고난 입니다. 고난은 신앙성장을 위한 신앙훈련의 필수 과목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브람을 세상 속으로 고난 가운데 밀어 넣어 훈련하고

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자 하나님의 첫번째 시험인 것 입니다.

세상 속에서 내 힘으로 한번 살아봐라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악한지 몸소 체험해 봐라

그리고 그곳에서 부딪치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철저히 낮아지고 겸손하여 져서

오직 주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따르는 길 만이 승리하는 길임을 가르치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아브람은 애굽에서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바로가 자기에게 거짓말하고 속였다고 옥에 가두거나 죽일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성도가 은혜 가운데 있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완전한 무능력자,

완벽한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사건 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아브람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1) 아브람은 두려움에 사로 잡힙니다.(12)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애굽 사람들이 아내를 빼앗고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내 안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마귀의 소리를 듣고 믿는 것이며 두려움은 또 다른 죄를 유발한다.

2) 자기 몸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11,12)

    아내를 이용해 자기 목숨을 건지려 하는, 아내를 팔아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하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굴하고 비정한 사람이 된다.

3) 거짓말하는 사람이 됩니다.(13)

    사래는 이복동생이자 아내 입니다. 동생인 것만 밝히고 아내인 것은 밝히지 않는 것은

    남이 빼앗으려 들면 빼앗기겠다는 뜻으로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이고 속이는 행위 입니다.

4) 불신자들에게 비난을 받습니다.(18)

    바로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소금이 소금 역할을 못하면 거리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게 됩니다.

5) 다른 사람들까지 어려움에 빠지게 만듭니다.(17)

    아브람의 잘못으로 바로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이 내렸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되면 불신자 전도의 문을 막고

    그리스도인 전체를 욕 먹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이처럼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서 보여준 믿음의 행보는 전무합니다

그곳에서 약하고 추한 모습만 다 보여주고 험한 꼴만 당하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한 재물 챙겨 돌아 온 것이 전부 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장악하는 세상에서 처음부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세상속에서 시달리고 고생하고 눈물흘리고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욕먹고 고달픈 생을 살면서

그 속에서 말씀도 싹트고 기도도 자라고 믿음도 자라고 성령충만하여 져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 입니다.

아브람의 첫번째 실패는 100세에 아들을 바치는 엄청난 시험에 합격하고

통과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은 이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봉착 할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고난과 고통을 돌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견뎌내고 인내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76 3절에 불 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은 인생을 20년도 살지 않은 아직도 아무런 생각 없이 자라는 철없는 청소년들이다.

마치 온실 속의 화초와 같다. 더워도 더운 줄 모르게 자라고 추워도 추운 줄 모르게 자란다.

더우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추우면 따뜻한 히터 곁에서 고난과 고생을 모르고 산다.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고, 평안하고 안전하며 부족함 없이 산다.

그 모든 것은 다 부모님께서 여러분의 비닐 하우스가 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을 감싸 안은 부모님의 품은 따뜻하지만 부모님의 등은 얼마나 시린지 생각해 봤나?

여러분이 시원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께서 모든 더위를 다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등은 타 들어 가도 여러분은 더위를 모르고 시원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대 여러분은 조금만 힘들어도 공부하기 싫다고 한다. 온갖 불평과 불만을 다 쏟아낸다.

배고파서 못하겠다. 잠 와서 못하겠다. 놀고 싶어 못하겠다. 피곤해서 못하겠다.

하기 싫어 못하겠다. 어려워서 못하겠다. 재미없어 하기 싫다. 그리고 포기해 버린다.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고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시고 정신 차리게 하신다. 철들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고 성숙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연단하신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게 하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신다.

똑 같은 상황에서 세상 아이들은 하나님을 몰라 도우심을 받지 못하여 타락하여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은 회개하고 회복하여 생명의 길로 걸어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고 믿지 않는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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