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암몬 족속를 물리치고 왕권이 강화되어 완전한 왕정체제를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사울은 먼저 3000명의 정예부대를 조직하였는데
그중 군사 2000명은 사울 자신과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배치하였고
1000명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배치시켰다.
1) 사람은 언제 실수를 하게 되는가? 어느 시기에 실패를 하게 되는가?
사람은 누구든지 어떠한 성공을 거두고 나면 교만이 찾아온다.
자신이 잘나고 자신이 잘해서 잘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이 그 일에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성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자기 혼자서 성공을 일궈 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 취업하여 좋은 상품을 하나 개발하였다 하자
그럼 그 발명품에 대한 특허권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고 회사 것이 된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월급을 주고 연구하게 하였고 연구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시설과 사람을
붙여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 공으로 빠른 진급은 있을지라도 자신, 개인의 것은 될 수 없다.
간혹 자신이 어떤 프로젝트에 관여하여 그 상품을 개발하였다고 그 기술을 빼내어
다른 나라 회사에 팔게 되면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공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성공의 밑바탕에는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 주었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기 혼자 잘해서 잘 된 줄 알고 잘 난체하거나 부모를 무시 하면 절대 안된다.
가문이 미약한 사울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이 선택하여 사무엘이 기름부었기 때문이다.
사울이 강대한 적 암몬의 나하스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신이 크게 감동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백성들이 순전히 따라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서서히 사울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내세우고 자신의 공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2) 자 그럼 사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하였나 알아보자.
사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먼저 걸었다. 자신의 땅에 있는 블레셋을 몰아내기 위하여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의 수비대를 선제 공격 함으로 블레셋과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대비하여 사울을 중심으로 길갈로 모였다.
그리고 블레셋도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믹마스에 진을 쳤다.
그런데 생각 외로 블레셋은 강대국 이었다. 엄청난 군대를 몰고 온 것이다.
병거가 삼만 명, 마병이 육천 명, 그리고 백성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아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다. 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이스라엘은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
웅덩이에 숨었고 일부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도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사울이 무엇을 잘 못한 것인지를 발견 하여야 한다.
1.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일을 행하기 전 하나님에게 항상 기도하여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았다. 전쟁은 작은 일도 아니고 국가의 중대사이다. 그리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전쟁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전쟁에 임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사울의 만용이고 불신앙적 행동인 것이다.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정도는 내 힘으로 가능하다는 교만의 발로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높고 거대하게 느껴진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적이 나보다 객관적으로 더 강성하면
두렵고 무섭고 떨리게 된다. 자신감과 용기를 잃어버리고 당황하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그 어떤 상대라 하더라도 어떤 난관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공부가 힘든 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절로 기도하면서 공부한다면 힘들지만 이겨 낼 수 있다.
공부가 재미를 느껴야 한다. 공부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공부 아닌 다른 것이 더 재미 있다고
뇌리 속에 이미 입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금만 힘들면 공부하기 싫어지고 놀고 싶어진다. 세상 놀이는 지극히 자극적이다. 그때그때 즐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공부는 잔잔한 재미와 흥미가 있고 인생 내내 기쁨으로 작용한다.
세상놀이는 놀고 나면 후회와 회한이 남지만
미래를 위한 공부는 뿌듯하고 뭔가 해냈다는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해라. 기도하기를 쉬지마라 그것은 하나님께 죄짓는 것이다.
우리 고3도 졸업을 앞두고 많이 불안할 것이다.
남들은 어떤 대학 무슨 과를 가니 하면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데 그리고 1년 후
대학생활의 낭만과 대학 캠퍼스와 축제와 미팅과 여러 가지 대학 문화들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3년 동안 공부하고 고생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부하지 않고 대학을 준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공장에 가야 하나? 집에서 먹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마음 속 깊이 근심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라.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목표를 세우고 준비해라
지금 몇 달간 공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가능하다.
영어, 수학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외 과목은 암기 과목이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최소한 괜찮은 전문대학은 들어갈 수 있다. 전문대학은 얼마든지 있다
그 전문대학에 전공도 다양하다. 그 중 내 적성에 잘 맡고 내가 하고 싶었던 과를 찾으면 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입학금이 걱정된다고? 그것은 나중 일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준비해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환경을 열어 주시어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이 마련될지 모른다.
두려움으로 아예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준비하면
실타래가 풀리듯 하나하나 풀려지게 된다. 믿고 나가라 선생님도 그렇게 인생을 헤쳐 나왔다.
농사나 짓던 사울이 성령충만 함을 받게 되니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하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 뿜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저 강대한 암몬을 물리쳤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울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일부는 숨고 일부는 도망하는 모습을 지켜 본 사울은
자신의 마음도 불안하고 다급하고 조급하였다.
제사장 사무엘이 빨리 와서 전쟁 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면 백성들이 사기가 올라가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은데 7일 동안 기다렸으나 사무엘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도망가는 백성들의 수가 더욱 더 많아졌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사울은 해서는 안될 월권 행위를 하고 말았다.
제사장 만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 그것을 어기고
자신이 직접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고 말았다. 이처럼 두려움에 떨게 되면 악수를 두게 된다.
장기편이나 바둑 판에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이 있다.
2. 아무리 왕이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 제사다. 그것은 제사장 만이 드릴 수 있고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다는 뜻이다.
여러분들 죄는 전념성이 있다. 죄는 중독성이 있다.
그 말은 죄는 쉽게 전달 되고 또 한번 죄에 빠지면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러분들이 작은 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으로 중단 되어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작은 처벌을 받으면 그 죄에 대해 해결되어 깨끗해진다.
그러나 그 죄를 숨기거나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죄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게 되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고
그 죄가 반복 됨으로 인하여 점점 더 큰 죄를 짓고 눈덩이처럼 커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예를 면 숙제 하면 손바닥 맞는다. 그런데 놀다가 숙제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러면 죄에 대한 벌로 손바닥을 맞으면 된다 그런데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한다.
또는 답지를 보고하거나 친구의 책을 보고 10분만에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거짓말 한 것과 선생님을 속인 죄가 더해지는 것이다.
선생님이 불행이도 속아 넘어가 준다면 그 수법을 계속해서 쓰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시험치면 그 결과는 백일하에 들어난다.
이와 같이 빵하나 훔친 죄을 해결하지 못해 그 죄를 키움으로 살인자나 흉악범이나 가는
외딴 섬의 감옥으로 끌려가는 빠삐용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 전쟁을 벌여 사태가 심각해졌으면 뒤늦게라도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큰 죄를 저지른 사울이었다.
사울이 번제를 마치자 마자 사무엘이 도착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되는데 안타깝다.
사울이 번제를 드린 사실을 안 사무엘은 왜 제사를 드렸냐고 책망하였다. 사울은 정황을 설명하였다. 적은 엄청난 병력을 앞세워 포진해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은 다 도망가고
제사장 사무엘은 오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핑계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3. 사울은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
왜 그것이 핑계이고 변명인가? 왜냐하면 블레셋은 7일이 지났지만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망가는 백성들에게 충분히 믿음의 말과 긍정의 말로 용기를 복돋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뭔가 이루어 내려고
했던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존심이고 자만심이고 교만이다.
그로 인하여 사울은 사무엘에게 책망과 함께 저주의 말을 받게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면 멸망하지 않을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사울은 왕위에서 폐위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새로운 왕이 세워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의 말씀을 듣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다.
죄는 냉혹하고 치명적이다. 연기자 박시후를 봐라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핑계하지 말라 변명하지 마라 남 탓하지 마라 상황 탓하고 현실 탓하고 부모 탓하고
학교 탓하고 선생님 탓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긋난 길로 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모님의 말씀에 선생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산다면 그 길은 멸망의 길이 되고 만다. 상상 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치고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운 현실에 빠져들고 만다.
사울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성경을 읽어봐라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반면 사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르는 다윗을 보라 사울 만큼 큰 죄들을 많이 지었지만
그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 회개하였다 겸손하였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의 굴레를 빨리 끊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앞으로 그 내용을 보게 될 것이다.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리석은 사울 (0) | 2013.07.02 |
---|---|
요나단의 믿음 (0) | 2013.07.02 |
사울의 왕권강화 (0) | 2013.07.02 |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0) | 2013.07.02 |
순종함으로 왕이 된 이스라엘 (0) | 201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