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3:1-2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견고하며 무한하며 영원합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붙들고 계시므로 요동치 아니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므로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저희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은 오늘 하루도 이 한 해도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바라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희들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듣고 순종하겠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한복음 18장3~6절.
1. 피해서는 안 될 위기에 대해서는 당당히 맞서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하게 될 일을 모두 아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감추어 두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로마병정들에게 채찍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자들에게 서슴없이 나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다가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당당히 맞서는 정신과 용기를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은 위기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잡으려 찾는 사람들 앞에 스스로 나서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시기에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일들 중에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절대로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말씀대로 살려면 세상의 핍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하면 세상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이것은 어차피 내가 감내해야 할 시련이다.
여기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싸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싸워야 할 때와 화친해야 할 때를 분별합니다.
그리고 싸울 때도 결코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휘와 대장 되신 예수님이 앞서 싸우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우리는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혹시 내 뜻을 굽이지 않아 어려움이 계속되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두려워서 굴복한다면
마귀는 기뻐하고 하나님은 슬퍼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대의 명분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도 있는데
하물며 내세가 확실하게 보장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에 도망을 다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고난이든, 시련이든, 핍박이든,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교자의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에스더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였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의 대적들이 사자밥이 되었고, 모르드개의 정적들이 멸족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위기에 놓여 있습니까?
가정이나, 직장에서,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고난이나 영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오늘 4절 말씀의 예수님처럼 믿음으로 담대하게 맞서 나가심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2. 사단은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어서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5절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는 군병들과 말씀하실 때에 가롯 유다도 그들 중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공관복음은 가롯유다가 예수님께 나아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인사하고 입을 맞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와 함께 온 군병들에게 예수님을 확인하도록 미리 약속한 군호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다의 두 얼굴을 보게 됩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회계의 직무를 맡고 있어서 다른 제자들조차도 그가 배신자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군병들을 데리고 나타난 그 시각에도 가롯 유다를 의심한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롯유다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뒤따르던 제자의 모습은 가짜였고,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반대편의 모습이 진짜였습니다.
요6:70에서 유다는 마귀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가롯 유다가 처음부터 마귀였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므로 마귀적 성격이 있었고 마귀가 들어 가도록 틈을 보인 것입니다.
유다는 양의 탈을 쓴 이리입니다. 겉으론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속은 마귀의 종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위장술에 뛰어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미혹되어 신앙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요일4:1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는 사도 요한의 경고의 말씀을 항상 되새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또 마귀는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마귀의 종일 수도 있고, 부자나 권력자가 마귀의 하수인 일수도 있고, 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 중에도 있고 심지어는 아주 유명한 학자나 지식인이나 종교 지도자의 얼굴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 보다도 그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갖춰야만 합니다.
이 능력이 없으면 마귀에게 쉽게 미혹됩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사자에게 노출된 사냥감과도 같아서 대단히 위험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다정한 이웃이나 동료처럼 가면을 쓰고서 우리 가까이에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고후11:13-15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는 마귀에게 속지 않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있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3. 예수님 앞에 설 때에 사람들은 그 권위에 압도됩니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군병들에게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뒤로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무장을 한 수많은 군인들이 아무 무장도 하지 않으신 예수, 그것도 죄인으로 수배가 되어서 체포하려고 온 군인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이 그동안 보이신 행적과 위엄때문인 것입니다.
외모로만 볼 때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한 촌동네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고 학문적인 배경도 없는 평범한 유대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이십니다.
물론 군병들이 예수님의 본질을 알고 취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로 신적 권위를 지니신 주님에게서 풍기는 권위에 압도되어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설면 그 권위에 압도되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한 것도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겸손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 가운데도, 또 어떤 목사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어 일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두렵고 떨리면 마음으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앞에서는 누구라도 이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그 권위를 무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예수의 본질보다 외모에 집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촌 사람으로 여기어,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적까지도 사탄의 도움으로 된 것으로 알고 끝내 배척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본질이 아니라 외모에 주목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되고 그 권위에 굴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이 마귀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하나님께 선택된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자부하였지만 사실은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결사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고 예수의 활동을 방해하고자 애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두 가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하는 마귀의 종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 권위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님만 따르고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께 충성봉사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들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사탄이 어떤 위장을 하고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아온다 하더라도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속아 넘어가지 말고, 마귀에게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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