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복음서

양의 문이신 예수님

예수님이 살고 계실 당시에 예루살렘 주변과 갈릴리 일부 지역이 목초지로서 유명하다.

많은 목자들이 자기 양을 끌고 유유히 걸어 다니면서 풀을 뜯기고 물을 먹이는

그런 평화로운 모습들을 어디서든지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0장에서 양과 목자의 비유의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셨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목자들은 하루 종일 양을 먹이다가 해가 기울고 어두워지면 자기 양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 온다.

형편이 넉넉하고 양이 많은 사람은 자기 개인 우리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목자들은 여러 가정이 함께 공동으로 우리를 만들어 양들을 같이 우리에다 넣어 둔다.

양의 우리는 보통 돌담을 사각형 모양으로 둘러 만드는데 거기에는 문이 하나 밖에 없다.

그리고 문 옆에는 문지기가 있어 밤새도록 그 양들을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하나 둘 나와서 문지기의 확인을 받고 우리 안에 들어가서 자기 양을 부른다.

수십 혹은 수백 마리 양 가운데서 눈으로 자기 양을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주인도 양들을 몰라보지만 양들 또한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양들을 구분해 낼까? 양들은 참으로 신기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양들이 자기 주인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자들이 자기 양들을 부르면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목자 앞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목자가 문을 나와서 초원을 향해 가면 그 목자의 양들만 우르르 따라 나간다.

그러면 또 다른 목자가 와서 자기 양들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불러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배경을 알고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 말씀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10:1~5)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성도는 양으로 비유하시고 예수님을 목자 또는 양의 문으로 비유하셨는데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진리가 그 속에 담겨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자기를 양의 문이라고 말씀 하셨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생략)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곧 구원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양이 양의 문으로 들어가야 살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여러분, 세상 사람 중에 누구도 빨리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 죽기 싫어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죽기 싫어한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

영원을 사모하면서도 왜 죽는가? 죄 때문이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인 인간들의 운명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 사람의 예외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 있다고 해도,

성자나 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인 것이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면 단순히 육신의 생명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후에는 지옥과 천국이 결정되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은 나이와 지식, 재물과 상관 없다.

구원 못 받으면 망한다. 그러므로 공부보다, 건강보다,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구원이고

구원은 예수님 만이 주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이 예수님이다.

구원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

절대로 인간의 두뇌와 지식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다(2:5).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다.

영적 시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시체가 스스로 몸부림친다고 살아날 수 있는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만이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살리시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가 되신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구원이 필요한 자에게 찾아 오신다. 그리고 부르신다.

그때 구원자이신 예수님 음성을 듣고 따라 나와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영적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지금도 예수님이 불신자들을 향해 부르신다. 어떻게 부르시나?

여러분이 친구에게 전도하는 것이 예수님이 부르시는 것이다. 또한 전도된 친구가 교회 와서

설교자를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 예수님께서 그 친구를 부르시는 것이다.

그 친구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그 친구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런대 그 친구가 그것이 예수님의 부름인지 알지 못하고 초대에 응하지 않고

, 초대에 응하고도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신자를 부르지도 않고 복음을 전하지도 않아서 믿지 않는 것은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한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그 음성이 목자가 양을 부르는 음성인 것이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양이 주인의 음성을 듣고도 따라가지 않아도 죽지만

도둑의 음성을 주인의 음성으로 착각하여 따라가도 죽는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이가 자칭 메시야라고 하면 그는 강도요 도적이다.

오늘날에도 자칭 '메시야' 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이 있다

그들 또한 강도고 도적이다. 그들을 따라가면 죽는다 멸망 당한다.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한다.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신이 있지만

나의 죄를 대신 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10:11~13)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양의 진짜 주인이고 선한 목자이면 이리가 오면 목숨을 걸고 이리를 쫓아내고 자기 양을 지킨다.

그러나 가짜 주인이고 삯꾼은 양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지 않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양을 버리고 자신이 먼저 도망가 버린다.

하지만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고 오늘 말씀하셨다.

(10:14~18)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7.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예수님 외에 누가 있나?

아무도 없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고 하시는 세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구원 곧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는 것이다.

꼴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의미한다.

이것을 좀더 다른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10절이다. 10절 중간을 보면

"내 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풍성하도록

계속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양의 문을 드나들면서 목자를 따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는

행복한 양의 모습을 그려보라. 그 모습을 다윗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가 나를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23:2).

날마다 목자를 따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으며 풍성한 생명을 영위한다

우리는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만사 형통케 하신다? 예수님 믿으면 다 잘 된다? 그러나 안 되는 것도 많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이 찬송가를 작사한 화니 크로스비라는 부인은 맹인으로 일생 동안 수천 개의 찬송시를 썼다.

그러나 찬송가의 원문을 보면 이런 내용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잘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라는

뜻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인데

이 찬송을 번역 하는 사람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교에서 자주 말하는 식으로 "만사 형통 하리라"하고 옮겨 놓았던 것이다.

예수 믿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만을 바라는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다 보니

뭔가 잘 안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적 생명이 풍성한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는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빈약한 사람이고,

주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영적으로 풍성한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은 자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을 원하고 불완전한 것을 추구하며 산다.

그래서 참 기쁨과 만족이 없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얻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항상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늘 불행하게 산다.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불평, 원망이 없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하다.

그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한다.

어떤 고난에도 감당해내고 이겨나간다. 참고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린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함이 그 마음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라 그것이 양이 주인만 믿고 따라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양이 주인을 따라 다니면 먹을 것이 풍성하고 마음껏 편히 쉴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주님만 따라다니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 모두가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주님과 함께 동행 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살다가 천국으로 들어 가기를 축복하며 기도한다.


'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절-마리아의 성령잉태  (0) 2018.12.22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0) 2018.11.24
선한이웃  (0) 2018.08.20
세상의빛이신예수님  (0) 2018.07.28
소경을 고치신 예수님  (0) 2018.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