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유다지파 뿐 아니라 나머지 11지파의 추대를 받아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다윗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일은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강대한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므로 인하여 쉽게 성을 함락하고 예루살렘을
차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다윗의 성이라 이름하였다.
그 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다윗을 치러 올라 왔으나
다윗은 하나님에게 기도하므로 두 번이나 침입한 블레셋을 완전히 몰아 내었다.
성경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은 점점 강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순탄하게 잘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육신의 욕망에 따라 세상적으로 살면 사울 가문처럼 망하는
길로 간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1) 나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2)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지 알면서도 옛 습성에 빠져 육신의 요구대로 사는가?
3) 나는 하나님 말씀은 기억조차 하지 않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불평하고 원망한다.
여러분 한번 생각하기 바란다. 나의 힘듦과 어려움이 나로 인한 것인지 하나님 때문인지?
복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복과 은혜를 누리고
저주와 괴로움을 주는 마귀와 가까이 하면 저주와 괴로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예배 드리고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것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고 힘들다고 말한다.
옛말에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다. 좋은 직장 높은 자리 부유한 삶을
살려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며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누리게 된다.
TV보고 게임하고 친구들하고 놀고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
그러나 입에 단 것은 이가 섞는다. 맛있는 고기만 먹으면 나중에 각종 성인에 걸린다
마찬가지다. 공부 안 하면 재대로 된 직업도 없고 막노동해야 하고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해야 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해야 한다. 왜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하다.
간혹,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대도 불구하고 일이 잘 안 풀리고 내 마음대로 잘 안되고 쉽게 말해 만사형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나를 훈련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더 순종하고 더 예배 잘 드리고 더 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
여러분 은혜의 장소를 더 갈망하여라 그래야 복 받는다.
자 이제 다윗은 적들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옮김으로 인하여 왕권은 강화 되었고
모든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고 믿고 따르므로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들이 평안하였다.
이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다윗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를 원하였다.
사울에 의해 끊어진 제사를 다시 드리기를 소원하였다. 즉 예배가 회복 되기를 꿈 꾸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것이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법궤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법궤의 행방은 삼상4장에서 이미 배워 알고 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불순종하고 죄악 가운데 살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는 않으면서 단지 하나님의 법궤만 전쟁터로 옮겨 놓기만 하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법궤를 전쟁터에 옮겨 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게 하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한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았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블레셋이 섬기는 다곤 신상의 신전에 함께 두었었다
그런대 그 이후부터 아침마다 다곤 신상이 넘어지고 부서짐으로 블레셋이 두려워하여
가드로 옮겨 갔다. 그런데 그 성에 큰 환란이 생기고 독한 종기가 나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법궤를 두고 제사를 지내고
벧스메스로 옮겼고 옮기는 도중 법궤를 열어 보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래서 두려워하다가 결국 길르앗여아림에 최종적으로 두었었다
사울도 법궤를 찾으려고 신경도 쓰지 않음으로 인하여 20년 동안 그곳에 방치 되어 있었다.
다윗은 한시도 법궤를 잊지 않고 한시라도 빨리 법궤를 다시 옮겨오려고 하였다.
다윗은 오직 법궤만 되찾는다는 일념에 법궤를 이동할 때의 하나님의 법칙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삼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제사장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와 함께 법궤를 옮기려 갔다.
그리고 소가 끄는 수레에 법궤를 실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을 찬양하는 연주하면서 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가 무엇인가에 놀라 날뛰게 되었고 수레에 실린 법궤가 떨어질 것 같아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급하게 잡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웃사를 치시어 웃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무 잘못이 없을 것 같은 제사장을 죽이셨을까?
하지만 그 사건에는 웃사의 큰 잘못이 있었다.
먼저 민수기4장15절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는 레위인 중에서도 고핫 자손이 옮기게 되어 있고
법궤를 옮길 때도 어깨에 매고 옮겨야 하며 절대로 만지면 안된다. 만지면 죽는다고 하였다.
정말 그것 때문에 죽이셨을까?
웃사가 죽자 다윗은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하였다. 베레스의 뜻은 터지고 파괴된다는 뜻이다
다윗은 두려워 더 이상 법궤를 이동하지 못하고 오벧에돔에 머물게 된다.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 복을 내리시자 그제서야 다윗은 율법대로 궤를 제사장이 메고 오게 된다
자 이러한 사실을 다윗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법궤에 대해서 만큼은 레위인들이
잘 알지 다윗은 왕이지만 레위 지파가 아니다 다윗은 유다지파다 그래서 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제사장은 반드시 알고 있었어야 했다. 다윗 왕이 법궤를 가져 오라고 명할 때
아비나답과 그의 아들 웃사도 알고 말씀에 맞게 실행하였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잘 몰랐거나 알았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소가 끄는 수레에 거룩한 하나님의 법궤를 실어 온 것이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다는 것도 큰 죄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도
큰 죄이다. 여러분 모세의 십계명의 제2 계명이 무엇인가?
출20:7.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에게 함부러 대하는 자는 겁을 상실한 자다 속된말로 죽으려고 작정한 자이다.
우리는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게 함부러 대해서는 절대 안된다.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을 넘어 대들거나 심지어는 욕하거나 폭력을 쓰는 사람이 있다.
시대가 얼마나 악하면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컴게임 못하게 한다고 부모를 죽이고
형제에게 차별 당하고 자기 자신을 무시하고 자기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부모를 죽인다.
그런 자들은 완전히 정신 상태가 마귀에게 사로잡힌 악마와 같은 인간이다.
이와 같이 부모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함부러 대하는 자식은 천벌을 받을 자식이다.
그런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함부러 행동하는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신 분이시다. 우주 공간에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별들이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많이 흩어져 있다. 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셨다.
인간이 만든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는 정말 볼 것 없이 초라한 작은 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을 인간이 판단하고 거역하고 없신 여긴다는 것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린 아이가 길 가다 작은 개미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찍어서 비벼버리면 어떻게 되나?
먼지처럼 사라진다.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물인 개미도 그렇게 할진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대상29: 11.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피조물인 인간이 겁도 없이 함부러
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정신 나간 인간이나 미치지 않고서는 죽으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함부러 대한 적이 없는가?
세상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넘어 아예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비방하고 욕하고 대적하고 있다.
그들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은 어떤가? 말씀에 잘 순종하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웃사는 법궤를 말씀대로 옮기지 않았고 손으로 법궤를 잡으므로 죽임을 당하였다.
여러분은 어떤가?
예배 시간에 지각하기 일수이고 찬양은 아예 하지도 않으며 기도할 때 딴짓하고
말씀듣는 시간에 졸고 떠들고 장난치고 이러한 죄들은 웃사보다 더한 죄이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웃사처럼 즉사 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왜? 그렇게 너그러우신가? 왜 이렇게 오래 참아 주시는가?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이다. 참아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된다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하나님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해서 되겠는가? 그러면 안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고 하나님 것으로 선한 일을 하고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사람들 앞에 자신을 높이고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웃사보다 더한 죄가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고 모든 일에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이다.
여러분이 그러한 삶을 살아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삶을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