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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예수님의 고난예고

1.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그 권능과 능력으로 지배자인 로마를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기를 기대하였는데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한다는

말씀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제자 베드로도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16:22)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나?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인류의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에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한방물의 피도 남기지 않고 다 흘리셨다.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흐리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모든 사람들의 죄,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의 죽음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만나는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죄 문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죄도 같이 자란다. 사는 날이 많을수록 짓는 죄도 많아진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린 원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 불순종의 자범죄로 인하여 고통의 삶을 살고 괴로움의 삶을 살고 절망 가운데 저주의 삶을 살다가

그 죄의 결과로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 후 심판으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죄 문제를 절대로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궁극적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다.

십자가는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원래대로 회복시키시려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충족되는 사건이다. 이로 인하여 온 인류의 저주와 형벌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에게로 옮겨졌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저주와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속죄양이 되신 것이다.

(53:6)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의 의를 힘입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이고 내 죄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 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3:24)

이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사람은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자랑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을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앙이다.

(1:16)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진짜가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나님을 맘껏 자랑하라

(고전1:18)

불신자, 멸망하는 자, 저주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고 생명이시고 능력이시고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신다.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내 뜻대로 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하나님의 자녀에게 신앙고백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음으로만 믿어서는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억지로라도 교회 나와 예배 드리면 됐지. 아니다 !

그렇게 해서는 신앙이 자랄 수가 없다. 강하고 담대하며 힘있고 능력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없고

세파에 흔들리는 나약한 신앙인, 세상에 이끌려 가는 연약한 신앙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입으로 표현해야 한다. 사랑도 고백해야 이루어지지

고백하지 않는 사랑은 짝사랑에 불과하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고백으로만 끝나서도 안된다. 신앙 고백 이후 삶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남녀간 사랑도 고백이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면 들어주고 받아주고 아껴주고 위해주고 섬기고 그에 맡는 행동이 따라야 하듯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행하지 않은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면 그 십자가의 도를 따라야 한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면 자신의 뜻을 부인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기 생각을 죽인다는 뜻이다. 자기 고집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대 많은 교인들이 자기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분란이 일어나고 분쟁이 생기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일에 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2:20)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교회에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고 하는 사람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함께 일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이미 본을 보이셨다.

40일 금식기도 후에 마귀가 뭐라고 유혹했나? 쉬운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자신에게 한번만 절을 하면 이 세계 만물을 다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다 거절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자신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우리에게도 쉽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유혹한다.

자기부인 하는 좁고 협착한 길을 가기보다는 넓은 길로 가도록 시험한다.

여기에 많은 성도들이 넘어가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 부인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기 고집과 감정과 주장을 깨뜨리는데 실패하는 사람은 결국 신앙에 실패를 하게 된다.

여러분은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3.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자..

여러분, 십자가가 뭡니까? 나는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 생각하고 다르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대치될 때 불순종하면 죄를 짓는 것이고 순종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죄를 짓든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든지 둘 중 하나이다. 여러분은 죄를 짓는 일이 많은가? 아니면 십자가를 지는 일이 많은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명예욕을 이기지 못하였다.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은 재물을 버리지를 못하였다.

왕궁 지붕 위를 거닐던 다윗은 목욕하는 아리따운 여인 밧세바에 대한 성욕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종살이하던 요셉은 그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믿음으로 이겨내었다. = 애굽총리

대부분의 교인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죄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여러분은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9:23)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이 말은 우리에게 날마다 십자가에 넘겨야 할 문제가 내 속에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뜻을 십자가에 넘겨 죽이라는 것이다.

매 순간 순간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며 살아야 한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 (고전 15:31)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선 피나는 기도가 필요하다.

예수님도 기적을 위해 겟세마네에서와 같은 기도를 하신 적이 없다.

오직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핏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셨다.

(26:39)

기도 없이 자신을 부인하거나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부인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그는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 내 뜻을 포기하는 게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십자가를 지기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질 수 없다. 기도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데 승리하기를 바란다.

4. 고난 뒤에 오는 영원하고 영광스런 부활을 바라보자.

십자가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고난입니다. 고난 뒤에 오는 영광스런 부활이 약속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십자가는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며, 영광이다.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십자가는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담을 그릇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상급도 없고 면류관도 없다. 'No cross, No crown!','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영광스러운 면류관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25, 26절을 보십시오.

(16:25,26)

육신을 위하여 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을 주를 위해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가셨는지 암니까?

(2:7~11)

여러분들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바란다.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 인내하여야 한다. 6년 고생하고 평생 복된 삶을 살고 싶은가?

6년 실컷 놀고 평생 고생하며 고통 가운데 불행한 삶을 살고 싶은가?

세상 모든 위치가 그렇다. 잠 못자고 밤샘이 하고 코피 터지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노력했기에

우리가 편안하게 차를 운전할 수 있다. 스마트 폰으로 즐길 수 있고 빌딩 건물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가 구원 받아 천국에 가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고 싶은 것 다 못하고 놀고 싶은 것 다 놀지 못하고 즐기고 싶은 것 다 즐기지 못한다.

일평생 따라 다니는 사탄의 유혹을 매일 매일 말씀으로 기도로 이겨내고 예배 가운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영원히 누리게 된다.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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