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도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장이 밟고 선 요단강 한가운데에서 각지파별로 하나씩 돌을 가져다가 길갈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물이 끊어졌고
백성들이 마른땅을 밟고 건넜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 체험하지 않고는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내 자신이 변화되고 인생의 가치관을 새롭게 하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내 삶이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난다 하더라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이신 이적과 기적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힘들어 포기 했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체험을 하지 못하고 교회에 나오니 예배가 지루하고 재미없고 오기 싫은 것이다.
그나마 부모님이 믿는 자녀들은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라도 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는
한두번 나오다 안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도 믿지 않고 친구나 선생님의 전도로 교회에
나와서 꾸준히 예배 드리는 친구들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처음엔 친구의 권유로 오다가 이젠 자기 스스로 와서 한 시간이상 드려지는 예배를
잘 드릴 뿐만 아니라 말씀이 들리고 이해되고 깨달아지고 믿어지기까지 하면서
나도 말씀에 따라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한다면 그런 친구들은 기대하기 바란다.
분명 멀지 않은 시간에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오실 것이다.
그것을 소망하고 갈망하라, 간절히 원하라,
반드시 이루어지되 간절함이 더 할수록 더 빨리 이루어진다.
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을 통하여 거친 강물을 손쉽게 건너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조상들의 고향 가나안에 들어 섰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하였다.
가나안 땅을 밟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나안에는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고 온갖 추악하고 더러운 죄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들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그들과 같이 죄에 물들면 이스라엘도 멸망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여야 한다고 명을 내리신 것이다.
그래서 협상은 없다 타협도 없다. 내가 죽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어 진다.
가나안 땅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가 바로 코앞에서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절대 절명의 시기에 하나님은 또 한번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신다. 그것은 바로 할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는 할례를 행하였으나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은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출애굽 1세대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고 이제 2세대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할례를 행하여 몸과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선행 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정말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인 것이다.
여러분 기억나는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에게 성폭행을 당하였다.
세겜의 추장은 야곱 식솔의 모든 재산을 빼앗기 위해 디나와 혼인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때 레위와 시므온이 너희들은 이방민족이기 때문에 우리와 결혼할 수 없다.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전통을 따라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혼인할 수 있다고
역 제안하자 그들은 욕심에 이끌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즉시로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3일 후 가장 통정이 심한 시기에 습격하여 모든 남자들을 다 죽여 버렸다.
이처럼 전쟁을 앞둔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할례를 명하신 것이다. 여러분 같으면 순순히 순종 할 수 있겠는가?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데..,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 사람의 잡음 없이 할례는 순순히 행하여 졌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도하라는 큰 기적을 이미 체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면 할수록 믿음이 커진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가나안 백성들은 바보들만 모여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속히 공격하지 않고 길갈이라는 곳에 머물러 서서
할례라는 자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여리고 성문을 굳게 잠근 체 쥐 죽은 듯 고요하게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1절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당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요단강 도하의 소문을 들은 가나안 거민들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을 무찌르고 또,
요단강 건너편의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전멸시킨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들의 장래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임을 스스로 깨닫고 놀라 두려워 벌벌 떨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마음이 녹고 정신이 아득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기습 공격이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정결의식을 행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할례한 상처가 다 낫자 이번에는 유월절을 지켰다.
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의 소산물을 먹으면서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그러자 40년간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그치게 되었다.
이젠 이 땅의 소산물로 먹고 살게 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만나는 필요치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는 심판의 날이지만 이스라엘은 압제에서 벗어나는
해방하는 날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킨다는 의미는
가나안 거민들은 멸망하는 날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날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앞으로 있을 예수님의 재림도 지구 멸망을 의미한다.
그날은 불신자들은 멸망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고통의 날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의 날이고 축제의 날이고 새하늘과 새땅으로 옮겨가는 날인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적용할 것은 무엇인가?
출애굽 당시 10번재 재앙이 있던 날 지켰던 유월절은 광야에서 한번 지켰고 지금이 3번째 이다.
그야말로 전쟁을 앞두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이런 정신이 필요하고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고 이러한 배짱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고3학생들 입시를 앞두고 두려워하지 말라 떨지도 말고 쫄지도 마라.
움추러 들고 긴장하면 공부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그럼 공부가 더 안된다.
시험 결과에 자유로워져야 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만 다해라. 그리고 지혜로워라.
남들은 휴일도 없이 촌음을 아껴 공부에만 몰두하지만 여러분은 주일날 오히려 공부를 내려 놓아라.
내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라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예배를 통해 믿음을 더 강하게 하고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얻고 하나님이 이루실 꿈과 비전을 바라보면서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라 한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주일 예배를 통해 날려버려라
그럼 월요일부터 더 공부가 잘되고 집중력도 좋아지고 능력도 오르고 자신감도 넘치게 된다.
이 말듣고 우리 중학생들 “엄마 주일날 선생님이 공부하지 말랬어” 하면서 예배 잠시 드리고
PC방에 가서 정신 없이 오락하고 밤이 늦도록 TV보고 놀아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좀전에 말한 경우는 평상시에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공부만하는 고3을 말하는 것이고
평일에도 실컷 놀고 잘 것 다자고 놀 것 다 노는 학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마라.
그리고 선생님이 주일날 공부하지 말고 예배 드려야 한다. 했지
언제 주일날 예배 드리고 나서 마음 놓고 놀아라 PC방가서 오락하라 했나? 착각하지 마라.
한주일의 시작은 월요일이 아니라 주일이다. 우리가 예배로 한주를 시작 하는 이유를 아는가?
이 세상의 삶은 전쟁이다. 그것도 치열한 생존 경쟁의 전쟁인 것이다.
전쟁은 누구에게 속하였는가? 그렇다.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다시말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하나님 편인가 아닌가에 달렸다. 하나님 편에 서는 자는 정결과 거룩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말씀따라 진실과 성실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주간의 삶 속에서 지은 모든 죄를 예배를 통해 말끔히 씻어내고
앞으로 살아갈 한 주도 성공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요한 정복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 절기를 지킨 것은
40년간 광야에서 지은 모든 죄악들을 씻어 버리고 앞으로 가나안에서 새로운 국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선행 되어야 할 최우선 순위인 것이다.
여러분들도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삶의 성공자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 자리에 참석해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은 이번주 만큼은 성공자이고 승리자이다.
그것이 한주 한주 쌓이고 한달 두달 쌓이고 일년 이년 쌓이게 되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시는 놀라운 이적과 기적들을 계속해서
체험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고통과 좌절의 힘든 삶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삶을 누리는 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