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복음

(요18:23~27)베드로의 실패원인

100:1~5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일 후 6일 동안에도 주님의 은혜 아래 살기를 원합니다.하루하루를 보람되고 의미있고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돌아오는 주일에도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성전에 들어와 예배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1823~27.

 

1. 교회는 악인들의 행위를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23절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친 하속에게 나를 친 그 정당성을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이 어떤 행위가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죄를 밝히지 못하였는데 예수님을 친 하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대제사장과 그 하수인들이 불법적으로 예수님을 재판에 넘겼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올가미에 벗어나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교회에서 악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모든 일에서 예수님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없으면 세상이 암흑이 되듯이 소금이 없으면 세상 살아갈 맛을 잃고 부패를 방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여 어둡고 타락하여 썩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살 맛이 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인이 모인 교회가 머리 되신 예수님의 명령을 잘 따라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교인들의 죄악 된 행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오늘의 교회들이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들이 부흥을 추구하면서도 악인들의 행위나 그릇된 사회 구조, 잘못된 정부 정책 등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이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발붙이도록 내버려 주어서는 안됩니다.

이단과 동성애가 판을 치도록 방관하면 안됩니다.

불법과 탈법과 편법과 비리가 공공연히 자행되어도 영적 지도자로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수님처럼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죄악에 대해 침묵하고 방관하고 용인하므로 인하여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가 급격히 줄어들고,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하는 죄악이 관연한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는 사회적인 불의에 대하여 경고하고 책망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충 인사들이나 권력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악행이나 불의에 교회가 함구하고 권력에 줄을 선다면 이것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일개 종교 단체이거나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책망을 피할 길이 없게 됩니다.

3: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딤전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랑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물론 교회가 세상의 악행이나 불의를 지적하고 책망하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핍박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하셨으므로 몸 된 교회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약에 교회가 이런 일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는 그 시대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아야 하고

예수의 입이 되고 손과 발이 되는 교회라야 참된 교회입니다.

 

2.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의 원인을 경계해야 합니다.

25-27절에서 베드로는 두번째와 세번째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16절에서 한번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함으로써 그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성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목숨을 바쳐 그분께 충성할 것을 다짐했던 베드로였지만,

생명의 위협에 느끼게 되자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은 그가 심지어는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철저하게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베드로만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어쩌면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 우리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는 일에 언제나 앞장섰던 베드로가 이렇게도 완강하게 주님을 부인함으로써 신앙에 실패하게 된 것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찾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베드로가 이렇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입니까?

첫째,자기 자신을 과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천성적으로 적극적이고 패기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늘 제자들 보다 앞장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을 때도 베드로는 앞으로 나서며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살펴보면, 그 말 속에는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이 낫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믿지 못할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변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28:26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 라고 하였고,

고전10:12에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렇게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였다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늘 겸손히 행하며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몇 차례나 계속 “깨어 있어 기도하라” 는 주님의 말씀에도 그들은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 잠들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그토록 호언장담을 했고 또 주님께 경고까지 받았다면 그는 깨어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난의 때에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주님의 수 제자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 믿음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은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성도들은 환난을 만나도 기도해야 하고,육신이 병 들어도 기도해야 하며,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심지어 핍박하는 자가 우리를 대적할 때에도 ‘나는 기도할 뿐이다’ 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여 기도에 힘쓴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불신자와 함께하였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가 믿는 자를 가까이 사귀게 되면 믿음이 점점 자라지만, 믿음이 없는 불신자와 가까이 사귀게 되면 불신과 회의가 생기게 되고 믿음은 약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믿음의 교제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시련의 때에 대제사장의 종과 하속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자기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도들이 가까이 교제해서는 안 될 불신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들 가운데 몸을 숨기고 마치 예수와는 무관한 사람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교활한 사단이 이런 베드로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어린 여종의 말 한마디로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시련의 때에 예수님의 수제자답게 신앙의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면 오히려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불신자와 함께 하였으므로 하찮은 위협을 두려워하여 주님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시련의 때에 불신자와 가까이 한다면 신앙 생활에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우리들 주위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유혹과 시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며, 항상 기도하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와의 교제에 힘쓴다면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물리 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시련의 때에 불신자와 함께 하지 않고 성도와의 교제에 힘씀으로 신앙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든지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신앙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자만은 금물입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얼마든지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므로 겸허히 행하며, 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영적 성장과 진보에 커다란 장애물이 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는 주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위기에 직면하자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게 하면 우리의 삶이 질과 내용에 있어서 현저히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베드로와 같은 실패를 보지 않기 위하여 항상 겸손한 자가 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고, 언제나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