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살면 육체의 일을 하게 되고,
영혼이 바라는 대로 살면 영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예배 시간에 세상에 있다는 것은 육신의 요구에 따른 것이고,
예배 시간에 교회에 있다는 것은 영의 생각을 따른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하십니다. 불안과 평안으로 나눠지고 사망과 생명으로 갈라집니다.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은 무엇일까요?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육체의 일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마귀에게 이끌려 마귀가 요구하는대로 사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간혹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가 원하는대로 끌려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영의 일은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성도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진정,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의 사람입니까? 육신의 정욕이 끌려 사는 세상 사람입니까?
전6:7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세상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다 자기 입을 위한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육체의 만족을 위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수고합니다. 그러나 식욕은 차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심을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입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계속 먹으면 질립니다. 새로운 것을 요구합니다.
그처럼 인간의 욕심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말고 영적 요구에 따라 살면 만족하고 자족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갈망입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예배입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살면 영과 육이 다 피폐해지지만, 영적으로 살면 영도 강건하고 육도 강건해집니다.
시117:1,2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찌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우리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서도 하는 일은 찬양입니다. 왜 찬양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진실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여 죄가운데 살아도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시고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전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교회 공동체는 돌잔치나 결혼식에도 가서 축하해 주어야 하지만,초상집에 가서 유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올해에 벌써 두번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교회 성도님들 중 연로하신 분들이 많으셔서 앞으로도 천국으로 이사 가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장례식은 천국 환송 예배입니다. 전7:2에서 초상집에 사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호흡을 멈추게 하시면 우리는 주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종말을 준비하며 날마다 주님과 함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 인생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의 연속입니다. 어떤 때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또 어떤 때는 슬프고 괴롭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우리는 장래 일을 예견하지 못합니다. 언제 어느 때 기쁜 날이 될지 슬픈 날이 찾아올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분명한 것은 형통도 주님이 주시고 곤고도 주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리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이런 힘든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이것은 주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이야” 그런 생각이 들면 즉시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곤고의 날이 빨리 지나가고 형통의 날이 시작될 것입니다.
시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아~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시나?’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의를 들어내기 위하심이구나’ 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다가 포기하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잘 살 때에도 못살 때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 안전하게 보호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전9:3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우리 속담에도 산 종이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지위에 있는 권력자라도 죽으면 아무 힘이 없는 살아있는 종만도 못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좋고 인기가 많고 능력자면 무엇 합니까?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에 병이 들어도 돈이 없어도 인기가 없어도 살아있으면 더 나은 것은 산자에게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살아있어도 소망이 없으면 죽은 자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살아 있습니까? 그리고 소망이 있습니까?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세상적인 소망을 가지지 마시고 오직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위해,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전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찌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성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에도 잘 먹고 잘 살고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가짜 행복입니다. 유통기한이 있는 행복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언젠가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가 언제 입니까? 죽음을 맞이할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행복해야 합니다.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누리던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자연을 즐기며 놀고 쉬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를 드리지 않고,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지 않고, 오로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죄입니다. 가난하고 힘든 형제들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를 성실히 잘 수행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들을 풍성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시118:5-9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이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편이 신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시인이 이런 고백을 편안할 때 안전할 때 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한 신앙고백이라 더 은혜가 됩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질병으로 인한 죽음의 두려움이나, 오랜 세월 동안 경제적 고통 속에 있거나 또는 여러가지 환란풍파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으시다면, 사람이나 질병이나 환경에 두려워하지 마시고, 또, 사람을 의지하지도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편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다. 라고 고백하고 기도하면 좋으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고, 오늘도 예배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전10:10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철연장은 도끼를 의미한다. 도끼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갈아야 나무를 잘 벨 수 있듯이, 어떤 일이든 일하기 전에 준비를 잘해야 하고, 하는 일이 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닥칠 여러가지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고 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육적인 일이든 영적인이든 계속 하다보면 지치고 힘든 날이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영성으로 갈고 닦는 지혜자가 되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