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04예수로나의 구주삼고 창18:1~15
18장1절에서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헤브론의 마므레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땅의 선택 우선권을 준 후 정착한 땅이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장소다. 이곳에서 또 한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어느 날 날씨가 한창 뜨거울 때에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언뜻 쳐다보니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마므레는 산지가 아니고 평지다.
사람 셋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본 것이 아니고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봤는데 사람 셋이 서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니, 얼마나 놀랐겠나? 그러나
그들을 보자 마자 곧바로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여’라고 불렀고 자신을 ‘종’이라고 낮추었으며 뿐만 아니라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였다. 아브라함은 첫 눈에 그분들이 범상치 않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나그네들에게 물을 가져다 주어 발을 씻으시게 하고 나무 아래 쉬고 있으시면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한 후 아내 사라에게 떡을 만들라고 하고
종들에게는 송아지를 요리하라고 명하여 그 손님들을 대접하였다.
그렇게 차린 음식을 먹고 난 손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그네는 아내 사라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년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다.
창17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나그네로부터 다시 듣게 되자
아브라함은 이 나그네들이 하나님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러나 장막 문에서 이러한 사실을 처음 들은 사라는 아브라함의 첫 반응과 같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속으로 웃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이미 생리가 끊어진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라가 자신의 몸종 하갈을 자신의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사라가 마음 속으로 웃었는데도 사라가 왜 웃느냐고 하시면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 하시고는
반드시 내년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것에 너무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사라는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그분은 아니다 네가 웃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신 것이다.
첫 번째는 창14장에서 대제사장 멜기세덱으로 나타나셨고 이번이 두 번째다.
이것으로 보아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신지를 알 수 있다.
자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항상 깨어있어 깊은 영성을 가지고 모든 것을 분별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첫 눈에 알아보고 십일조를 드렸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보았듯이 자신을 찾아온 나그네 또한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으로 알고 영접하여 후한 대접을 하였다.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더욱 영적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지금 이단들이 크게 판을 치고 다닌다, 예전에는 이단들이 숨어서 활동하고 신분을 속이고
교인들에게 접근하였는데 이제는 들어내고 접근한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기존 교인들을 빼앗아 멸망의 길로 끌고 간다.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신천지는 저들만의 성전을 엄청나게 크게 지어 기존 교회가 이단이고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하면서 교주 이만희를 보혜사 성령이라고, 재림하신 예수님이라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이단과 거짓 선지자는 영혼의 살인자다. 그 영이 한번 오염되어 버리면 씻을 수가 없다.
이단에 빠진 사람은 마귀에게 잡아 먹힌 영혼들이다.
요이1:7~11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그들을 상종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교패 붙은 집만 찾아 다닌다.
문도 열어주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들어 주면 안 된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전도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물에 빠진 사람 구하려다 자신이 끌려들어간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마귀에게 잡아 먹힌 영혼들이라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마귀에게 잡힌 상태라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 받지만 그들은 안 된다.
그리니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영적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마지막 때에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힘든 시대가 된다.
그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그 적그리스도를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게 된다.
왜 예수님께서 먼저 오시지 않고 적그리스도가 먼저 올까?
곡식을 타작하는 이유는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알곡은 곡간에 쭉정이는 불태우는 것과 같이
적그리스도가 먼저 오는 것은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잘못된 믿음으로 변질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수 많은 유혹들이 있다.
그 유혹의 말들이 사단에서 오는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단 다음으로는 우리 성도를 사탄의 전유물로 꾄다.
마귀는 우리들에게 달콤한 것으로 유혹하기 때문에 쉽게 넘어진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돈의 유혹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로인하여 시험과 올무에 걸리고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며, 곧 사람으로 영과 육이 망가지는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축복관에 빠지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돈에 미혹되면 믿음에서 떠나게 되며, 돈에 빠지면 근심하게 되며
결국 자기를 찌르게 되는 것이라고 딤전6:9,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족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경건하게 살게 되고 그것이 인생의 큰 유익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기 때문에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거짓 유혹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세상 것은 무의미하게 여겨집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하면서 내가 그것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
세상의 지식, 학문, 문화, 물질,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살아야 하고 바울과 같이 살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같은 영성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으라 하셨다.
이삭의 이름의 뜻은 웃음 이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어이없는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빈 공간에 땅덩어리를 만드시어 공허한 허공에 메달아 놓으셨다.
그 땅의 일부인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런 하나님께서 100세 된 노인들에게 아이를 갖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얕은 상식과 지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단정한다.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
그것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아무런 기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인생 가운데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사실은 우리가 두 발로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는 똑바로 서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주 공간에서 보면 지구상에 거꾸로 메달려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지구상의 자연 환경이 기적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 일을 행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빌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더 많은 기적 더 새로운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심판주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은혜가 넘치는 사랑의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오래 참으신다.
사42: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시편103:8여호와는 긍휼이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그러나 인생이 있을 동안에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 소돔과 고모라가 지금 그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죄가 전염병 같이 번져 또다시 노아 시대의 죄악이 관연한 땅으로
변모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심판 받을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롯을 살리기 위해 기도하였다.
자신보다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삼촌을 버렸지만 아브라함은 롯을 자식처럼 사랑하였다.
의인 50명에서 45명으로 40명으로 30명으로 20명으로 10명까지 그 수를 낮추면서 까지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또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중보기도를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시고 다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중보 기도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중보기도가 참으로 중요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먼저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고 계시며
목사님을 비롯한 교역자분들이 중보기도하시고
우리 교회의 지체되는 성도님들이 중보 기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도 중보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참으로 귀하며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여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브라함처럼 저희들도 성령충만한 영성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100세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전혀 없으심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중보기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역사하심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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