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2월4주)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 죄의 대가로 징계 받고
그 징계로 인하여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와 징계와 회개와 회복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삶의 사이클에서, 죄와 저주의 삶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세상 것을 사랑하였고 세상 것을 즐기면서
우상숭배를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었다.
(룻1: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이번에는 유대에 큰 흉년이 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 룻기의 시대적 배경이다.
(룻1: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그 시기에 유다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믿음 좋은 아내 나오미가 있었고 병약한 두아들 말론과 기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유대 베들레헴에도 기근이 찾아오자 기근을 피하여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방 땅 모압으로 내려갔다.
엘리멜렉의 신앙
엘리멜렉이 유다에 남아 있느냐? 모압으로 가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모압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이 옳은지 그런지를 알아보자. 엘리멜렉은 유다 족속의 사람이다.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백성 이스라엘 그 선택된 백성 중에서도 선택 받은 족속이 유다 족속이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로 야곱의 유언으로 유다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탄생 될 것으로 예언 되었다. 이렇듯 믿음의 명문 대가의 후손이면서 후일 메시야의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었던
엘리멜렉은 큰 흉년과 기근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자신의 두 아들이 병약하게 태어났는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하였다.
한마디로 영적 통찰력이 없었고 영적으로 무지하고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엘리멜렉은 기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하심을 구하여야 했다. 그런데 기근이 찾아오자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형편과 처지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왜? 우리는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편한 존재가 누구인가? 아버지 다.
아버지께서 나를 낳으셨다. 나를 기르신다. 좋은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고
아버지께서 능력만 되시면 자식의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해 주시려고 하는 분이 아버지인 것이다.
자식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바꾸기 바란다.
아버지께서 때로는 나를 억압하시기도 하고 나를 구속하고 속박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에게 아픔을 주시고 마음의 상처를 주시고 고통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학대하기 위해서 그러시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신이상자인 것이다.
아버지의 본심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시고 성공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연약한 인간인 육적인 아버지께서도 그러하신데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영적인 아버지는 더하신다.
그러므로 엘리멜렉이 두려워한 것은 그리고 유다를 떠나는 행위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 유다 베들레헴을 지켰다.
그런데 유독 엘리멜렉 가정만 모압으로 떠난 것이다. 엘리멜렉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바라고 베들레헴의 영적 회복을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극히 인간적인 생각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신도 살고 병약한 두 아들을 살리기 위해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신 그모시를 섬기는 이방의 나라 모압으로 이주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만 것이다. 여러분 육신적인 문제는 어디에서 오는가?
지난 시간에 38년된 병자에서도 알아보았듯이 질병의 원인은 죄에 있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규정하고 있다. 질병도 육신적인 문제이고 먹고 사는 것도 육신적인 문제이다.
육신적인 문제는 육신적인 방법으로 풀 수가 없다. 육신적인 문제의 원인은 영적인 것에 있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육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 된다.
그런데 이세상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 조차도 그것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이 죄 가운데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판단하고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육적인 문제 즉 질병이나 가난이나
그 외 어떤 육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다 해결 되어진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영안이 어두워져 영적 통찰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당장 눈 앞에 닥쳐온 굶주림 만을 해결하기 위하여
병약한 두 아들이 먹지 못하여 죽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하여 양식이 있는 모압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모압은 이스라엘보다 더 지독한 우상의 도시이고 죄악의 도시이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되었나? 살기 위해 한 결정은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자신도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두 아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지혜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만다.
우리 어른들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적인 어려움과 힘든 일이 생긴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 잘 다니는 데도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나? 하며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 버린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죄악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체 말이다.
여러분 삶 속에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힘든 일이 생긴다면 더욱 더 하나님에게 메달리기 바란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세상과 구별되게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면서 믿음으로 인내하고
더 열심히 교회를 찾고 더 간절히 기도하고 더 열정적으로 예배 드려라.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고통의 강을 건너게 된다. 절망의 산을 넘게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된다. 죽음의 깊은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엘리멜렉에 대조 되는 사람이 바로 그의 며느리 룻이다.
2. 룻의 신앙
룻은 모압의 이방여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우상 그모시가 하나님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이주해온 청년과 결혼하여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복음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정에 시집와서 사는데 뜻하지 않게 남편이 병으로 죽어 버렸다.
자식도 없이 청산과부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재혼이 제한적이다. 한 여인이 어떤 가정에 시집을 가서 남편이 죽게 되면
자식이 있으면 평생 수절해야 하고 자식이 없으면 가족 중에 가장 가까운 친적 중에 재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아들이 모두 죽어 그럴 수도 없었다.
(룻1:11~13)그리고 시어머니는 늙었고 시아버지는 일찍 돌아 가셔서 자식을 낳을 수도 없고
또 낳는다 하더라도 나이가 어려서 장성할 때는 자신이 늙어 폐경이 되기 때문에
자녀를 볼 수도 없다.
남자라고는 다 죽어 버렸다. (시아버지, 남편, 시동생) 남은 사람은 늙은 시어머니 뿐이다.
그렇다고 양식이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굶어 죽기 직전인 상황이다.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는 가정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희망 때문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더 이상 바라 볼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다.
희망은 다른 말로 소망이고 꿈과 비전이다. 꿈과 비전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진리가 되시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되신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이유가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였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암담한 현실에서 그저 목숨만 연명하기 만을 바랬다. 그러던 어느날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아 고향 땅 이스라엘에 양식을 주셨다는 소문을 듣고 귀향을 결정한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며느리들에게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집, 자신의 땅, 자신의 신에게 돌아가기를 권하였다.
그러자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오르바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
16,17절을 보자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다.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도 소망도 꿈과 비전도없다.
그 상황에서 룻은 하나님을 붙들었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5번째 계명) 엡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3. 룻의 선택의 결과.
그 결과 룻은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다.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갔다가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나 재혼하게 된다. 보아스가 바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종조 할아버지가 된다.
룻은 이방여인으로 메시아의 족보에 4명의 여인 중 한명으로 당당히 이름을 남기며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된다.
여러분 사람의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사는 것이 힘이 드는가? 고통스럽나?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나?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못하고 몸도 병약하고 쇠약하고
집은 가난하고 부모님은 무능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기술도 없나?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꿈도 비전도 없나?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가는가?
그래서 절망적이고 비관적이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살아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 남아라
전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믿어라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악에서 떠나라
그러면 여러분들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