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전5:1, 2 진정한 예배자가 복을 받습니다.

ereducation 2024. 9. 4. 12: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드리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2. 찬송가 10, 135

3. 성경봉독 : 5:1, 2

4.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신 주님, 오늘 이 새벽에도 새벽기도 성도들이 주님을 가까이 하기 위하여 잠을 멀리하고 말씀 앞으로 나왔사오니 안수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5. 말씀선포 : 진정한 예배자가 복을 받습니다.

1.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그 삶과 행실을 삼가고 정결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성전에 가기 전에 악을 행하지마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드리는 제사는 헛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죄를 짓고 악을 행합니까?

그것은 자신의 언행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고 저촉되는 죄인 줄 모르고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범정에서도 모르고 지은 죄라하면 용서해 줍니까? 용서해 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보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서도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우습게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속을 다 보고 계시고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데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악을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연약하여 마귀에 이끌려 죄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다아시기 때문에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에게 먼저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한 후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고 난 이후에야 예물과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예물과 제사를 받으시고 마음의 소원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거룩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예배의 자리가 거룩한 자리이고 성전이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지 경망스러운 언행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부정한 일, 사악한 일, 거짓된 일을 하고서 그대로 성전에 나아가 예물을 드리고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같은 실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에서 여러 가지 죄를 짓고는 제물을 들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1:13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헛된 제물을 다시는 나에게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얼굴만 비취는 가식적인 행위이고 성전 마당만 밟고 가는 것이라 하시면서 심지어는 예물을 드리면서도 악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며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손을 펴서 무엇인가 달라고 요구하여도 하나님은 눈을 감으시고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도 가져오지 마라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역겨워하시고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하여도 들어 주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손에 (죄악이)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예물과 제사를 드리고 싶으면 너희의 죄를 스스로 깨끗하게 씻고 내 앞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라, 행악을 그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것이 솔로몬 당시 또는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제물 대신에 헌금을 드리고 제사장만이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었고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만 들어 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예수님께서 성소의 휘장을 찟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고 하나님에게 직접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시대에 비해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간편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배는 간편해졌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마음 자세도 동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 드리기 위해 죄와 악을 버리고 나오는 것은 같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믿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저또한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만하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무성의 하고 부주의 하고 부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예배의 현실입니다.

예배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거기에다 그것도 부족하여 거룩한 성전 안에서 여상히 거짓을 말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린다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회개도 없이 복만 달라고 기도하고 그것도 일주일에 딱 한번! 주일 아침에 잠깐!

예배 드린 후에도 교회 안에서 미워하고 다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이렇게 변질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한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특별히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 가는 대제사장은 혹시라도 자기 안에 남아 있을 죄를 정결케하기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물로 몸을 씻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과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쓰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그들은 당당하게 예배하기보다 두렵고 떨림으로 예배해야 했습니다. 이는 예배가 다름 아닌 온 우주 만물의 왕이신 위엄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며,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절대적으로 성결하고 순전한 영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와 경건의 자세가 있습니까?

죄에 대한 회개와 뉘우침, 아주 작은 죄라도 씻어 내려고 하는 노력이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예배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얼마나 위대하며 존귀한 분인지,

얼마나 진실하고 의로우며 성결한 분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까?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매주 드리는 예배라 해서 또 매일 드려지는 새벽예배라고 해서 결코 함부로 드릴 수 없습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합당한 예배,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마음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시며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그런 사람들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제사보다 진실한 순종입니다.

다시 1절을 보면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로 말을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그대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온전히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제물드리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한 이 전도서51절 말씀은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모세 시대때 제정되어 만들어진 제사 제도와 성막 제사를 솔로몬이 성전 제사 제도로 계승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성막 제사보다 솔로몬의 성전 제사가 더 나은 것이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말씀은 예배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에게 한 말씀과 같습니다. 삼상15:22, 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번제와 다른 제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렸느냐보다 얼마나 온전히 순종했느냐, 얼마나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느냐를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삶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으로 순종하는 삶, 헌신하는 삶,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7: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하나님이 제시한 그 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좋은 것을 얻고 하나님이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야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다 받아 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적용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 자녀답게 성도로써 성도답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려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사시다가 천국으로 입성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무엇보다 신중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2절에서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함부로라는 말이나 급한 마음이라는 말은 천박하고 경박하기 그지없는 말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앞에 두고 아무렇게나 말하고 천박한 말이나 경박한 말들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모독이며 상대방을 매우 불쾌하게 하는 행동이라 관계가 완전히 틀어집니다.

어ᄄᅠᆯ때는 그 사람과 회복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두 번다시 보지 못하는 관계가 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자매간에 재산 다툼을 하다가 말을 격하게 해버리면

형제지간이라도 평생 보지 않는 원수지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게나 말하고 조급하게 행동하거나 단편적인 생각만 가지고

말하는 것 그 자체가 큰 불경이며 죄임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탈이 많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탄핵의 불씨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차라리 약간 부족하고 모자라도 말을 아끼고 침묵하여 호평을 듣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그만큼 말이란 매우 어려운 것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번 뺃은 말은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다시 주어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말보다는 지혜로운 말이 낫고 지혜로운 말보다는 침묵이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6:7,8)“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급박하고 절박한 상항일지라도 중언부언하거나 아무렇게나 기도하지 말고 진실하게 진중하게 마음을 다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참된 기도를 올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6: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기도가 사람이나 세상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나의 중심을 바치는 진실된 기도가 되고, 참된 성찰과 깊은 묵상에서 우러나온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성찰하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마음과 정성을 바치는 아름다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보배로운 향기와 같이 기쁘게 받으시고 복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앞서 삶과 행실을 삼가하여 정결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 제사가 아니라 진실한 순종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되새기고, 저희들이 하나님에게 올려드리는 기도가 신중하고 진실한 기도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과 자신의 위치를 분변할 때 비로소 온전한 기도를 드랄 수 있습니다.

다시 2절을 보면 하나님 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 니 라고 말하였습니 다. 원문을 보면 본문 맨 앞에 는 왜냐하면이 라는 의미의 접 속사가 붙어 있습니 다. 즉 본문은 앞서 언급된 바 우리 가 하나님 앞에서 급하게 말을 내어도 안되고또 많은 말을 해서도 안되 는 이 유를 설명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 다. 솔로몬은 이러한 이 유로 하나님 은 하늘에 계신 반면 우리 는 이 땅에 거 하기 때문이 라고 말하였습니 다. 즉 하나님 과 인간 사이 에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 간극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근거 해 아무 말이 나 함부로 내 뱉어

서는 안됨 을 지적한 것입니다. 물론 말이 란 본래 서 로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두 대 상이 자신의 의 견을 피력하고자 취하는 의사 소통의 수단입 니 다. 아무리 큰 어려 움을 가지 고 있어도 서 로가 말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으며 상대 방에 게 어떤 감정 을 가지 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습니 다. 그렇기에 인간 사회 에서는 얼마나 빠르게그리 고 효과적으로 자기 의 사와 뜻을 전달할 수 있는지 또한 얼 마나 호의 적 으로 그러 한 의사 전달을 받아들이 게 할 수 있는지가 큰 관심 거리가 되기도 합니 다. 그러 나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의 대 화에서만 적 용되는 것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우리의 혀의 말만 아니 라 마음의 생 각까지 도 다 아시 는 분입 니 다. 이를 전도자가 각성시키는 이 유는 여러 가지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 나 가장 근본적 인 것은 하나님 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 확히 분변해 야만 우리 가 합당한 기 도를 올릴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01 는 일면 우리 가 하나님 의 원하시 는 바를 정 확히 분변하고 그분의 뜻에 부합된 기도를 올려 야 함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 다.

이는 참된 기 도응답받는 기 도가 어떤 것인지 를 가르치 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기도합당한 기 도는 우리의 뜻과 생 각고집을 주장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 의 뜻그분의 인도하심 을 구하는 것이란 가르침 입니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땅에 거 하는 우리 의 뜻보다 더 온 전하고 더 귀 하고 더 복된 것이기 때 문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우리 는 우리의 생 각우리 의 지 혜우리의 계획을 내세우기 보다 하나님 의 뜻을 먼저 구해 야 할 것이며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도 역시 하나님 의 뜻을 구하는 자하나님 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있으며 하나님 이 하늘에 계심 을 감안할 때 이는 너무나도 당연스런 삶의 태 도가 아닐 수 없습 니 다.

l 는 우리 주님 의 기 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 다. 여러분우리 주님 은 완전한 하나님 이 셨지만 동시 에 인성을 지니신 완전한 사람이 기도 하셨습니 다. 그래서 주님 역시도 십 자가라는 커 다란 고난을 앞에 두고 심 각하게 고뇌 하시 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 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 나가게 하옵소서n 라고 기 도하셨습니 다. 즉 인성을 지니신 주님 은 십 자가의 고통이 너 무나 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 운 것이었기에 그것이 지 나가기 를 바라는 마음을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 나 여러분 주님 은 거기서 머물지 않으셨습니 다. 이에 더 하여 그러 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 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26 : 39). 그리 하여 주님 은 다시 금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 나갈 수 없거 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 다

(26 :42)라고 기 도하십니다. 무슨 말입 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예 수님 자신이 십 자가의 고난의 잔을 마시 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이제는 받아들이 시 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기 도는 바로 이것이며 이 렇게 해야 합니 다. 이 렇게 기 도한다면 당연스레 우리는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 없습니 다. 먼저 우리의 생 각과 고집욕심 을 내 놓고 그것을 이 루어 달라고 기 도하기 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의 뜻이 무엇인지 를 정 확히 분변하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기 도를 올리 게 될 것입니다. 그러 므로 여 러 분먼저 기 도할 때 우리는 우리 가 기 도하는 분바로 하나님 이 어떤 분이신지 를 알고 기 도를 올리 십시오. 그리 할 때 우리 는 참으로 하나님 이 받으시 는 기 도응답의 기 도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요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툴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아까 내가 스스로 깨달올 수 없는 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23)

나라이 임하옵시며 뭇야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 :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