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제사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막에 대해 알아 보았다.
성막은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는 장소이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다.
그리고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성막이 성전으로 변하였고 오늘날의 교회와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의 몸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흙 속의 진주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나 자신 조차도 내가 왜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되면 여러분의 가치는
강호동이보다도
성막의 이야기를 끝으로 출애굽기가 끝이 나고 이제 오늘부터는 레위기로 들어가게 된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율법이었다. 그리고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의 훈련교안이다.
선택받은 사람들, 구원받은 사람들, 애굽을 탈출한 백성들에게는 훈련이 필요하다.
애굽의 문화에 400년간이나 젖어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으로서, 선교 민족으로서,
제사장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책이다.
모세의 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들은 날마다 즐겨 읽고 듣는다.
이 '토라'는 흔히 '법'으로 이해되는데 근본적인 의미는 오히려 '교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담은 책이 오경인데
그 중에서도 제사법, 성결법, 정결법 등을 다루고 있는 책이 가운데에 위치한 레위기다
그러다 보니 레위기는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게 여겨진다.
그리고 사실상 제사법, 성결법, 정결법은 예수님이 오시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다 해결되는 부분이라 구약에서나 필요한 내용이고 이제는 필요 없는 내용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필요치 않은 것이 없다.
레위기는 지금의 우리와 상관없는 책이 아니라 우리들이 재발견해야 할 책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율법은 선하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율법이 우리를 구원받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우리는 그 율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지킴으로써 이 땅에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이블맵-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포이에마)>의 저자 닉 페이지는
“레위기는 일차적으로 거룩함에 관한 책이고, 제사와 제사장, 정결함, 음식·성·행위, 예배, 순종 규칙과 규정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다”며 “대부분 어렵고 지루하다고 보지만 보석이 숨겨져 있다”고 전했다. 성막에서 벌어지는 의식과 의례에만 매달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다른 어떤 시대와 비교해서도 혁명적인 정치경제 개념”의 내용들이 있는 살필 것을 주문했다.
또한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등의 저자 필립 얀시 목사는
<별미 성경여행(요단)>에서 레위기에 대해 “이 책은 성경 다른 부분과 달리 등장인물도,
이야기도, 시도 찾아볼 수 없고 사소한 규칙과 절차들만 가득할 뿐”이라며
“레위기의 복잡한 의식은 핵 기술을 둘러싸고 있는 절차와 매우 흡사한데,
이 유사점을 잘 생각한다면 레위기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원자력 분야 작업자와 구약의 제사장이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잘못하면 터진다.
터지면 다 죽는다. 그 정도로 조심성 있게 중요하게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
필립 얀시는 “레위기는 원자력발전소 종사자가 읽어야 하는 훈련교본이나 마찬가지인데,
레위기가 다루고 있는 위험은 원자력보다 더욱 강력하다”며 “어떻게 우주의 창조자인 전능하신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 원자로 훈련교본은 한가할 때 읽으면 지루하겠지만 운전중인 원자로 곁에서 읽는다면 정신을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레위기도 그 뒤에 숨어있는 멋진 소식, 즉 하나님이 작고 보잘것 없는 한 부족의 생활에 개입하셨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걸맞도록 그들의 삶과 음식, 성, 경제생활 등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하다고 해서 오랫동안 할 내용은 아니고 해서 3주 정도만 할 예정인데
오늘은 레위기의 첫번째 시간으로 제사에 관한 규례만 알아 보도록 하자.
레위기의 5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죄이다.
레위기에서 가르치는 제사는 그 의식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예배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 정신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1)번제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지옥불에 들어갈 것을 흠 없는 동물
즉, 양과 소, 새가 인간을 대신하여 불타므로 속죄 된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상징하며 철저한 자기부인을 의미한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지 않았으면 우리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성한 번제를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눅9:23
2)화목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입니다. 오늘의 의미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그리고 나눔의 제사입니다.
롬5:10,11 고후5:18,19
3)소제
오늘의 의미는 희생과 봉사입니다.
밀이나 곡식의 알갱이가 깨어져서 가루가 되지 않으면 한 덩어리의 떡이 될 수 없습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 앞에 깨어지고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자신의 옛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한 덩어리의 진설병이 되기 위하여서는 모두가 깨어져야 합니다.
빌2:1~8
4)속죄제
여호와의 법령을 그릇 범한 경우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의미는 자백과 회개입니다. 속죄를 위한 제물을 드릴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를 드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백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백이 자기 혼자만 자백하는 것이 되어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또 신부에게 가서 자백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죄는 그 죄로 말미암아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자백해야하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앙공동체에서 자백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그러한 자백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요일
5)속건제
부지중에 하나님의 것이나 이웃의 소유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했을 경우 깨닫게 되는 날에는
원금의 1/5을 더하여 변상할 것이요, 그리고 나서도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부지중에
죄를 범하고 본의 아니게 이웃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한 경우에 그 손해를 보상하여줌으로써 본의가 아니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곁에서는 결코 손해보는 사람이 없도록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과 끊임없는 교재를 원하신다.
죄를 지었다고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용서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러브레터이자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 방법이 기록된 책이다.
레위기는 예배의 책입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나듯이 우리도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예배시간 전에 일찍 와서 뜨겁고 열정적인 찬양을 드리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집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쏟아내어 기도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예물을 드릴 때 예배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둘째 제사에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많은 종류의 제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낮, 오후예배, 중고등부예배가 있다.
예배에 목숨을 거는 예배의 사람이 되라. 나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귀히 보시겠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여러분이 된다면
우주의 주인이시고 능치못하심이 없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필요한 데로 다 주실 것이다.
학생으로서 중고등부 예배는 당연히 드리는 것이고 새벽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싶다
셋째 제사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죽다 만 불에 그을린 개 같이 뛰어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백% 죽어야, 백% 태워야, 그것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아가 있다면 그것만큼 징그러운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자아가 살아 있는 사람은 보기에 흉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는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제단은 죽음으로 갈 때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존경스런 사람, 제일 멋진 사람이 누구일까요? 자아가 죽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제일 강력한 사람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수준이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달란트에 따라 수준에 맞게 드리면 됩니다. 황소를 드릴만한 사람은 황소를 드리고, 비둘기를 드릴만한 사람은 비둘기를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 같이 번제로 백%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황소를 드릴만한데 비둘기를 드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신앙과 예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