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21-23)우리는 살아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드리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찬송가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84.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요한복음 11장21-23절
시119:98-100 하나님 아버지! 악한원수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온갖 계략을 다 부리지만, 저희들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한다면 넘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마귀를 물리쳐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교훈과 하나님이 주시는 법을 지킨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학자와 박사에게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되며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기를 원하오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듣고 행하게 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 우리는 살아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은 이틀 후에나 나사로의 집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어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나사로에게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여동생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에게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던 인물이고 마르다는 그의 언니입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 마리아가 먼저 달려 나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21-27절이 그 대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마르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21절을 보시면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계시지 않아 오빠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예수님께서는 죽어 가는 자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는 의미합니다.
22절에서는 이제라도 예수님께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실 줄 믿는다고 하였으며,
또 27절에서는 마지막 날의 부활도 믿었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정도만 보아도 마르다 또한 마리아 못지않는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뛰어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맞먹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신앙에도 2%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도 쫓아내시고 어떤 질병도 다 고치시고, 죽어 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듣고 보아 알았지만 죽은 사람을 그것도 죽어 무덤에 들어 간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날 정도의 심각한 상태에 있는 오빠를 지금 당장 살려 낼 수 있는 능력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믿는 지식에 치우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적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삶에 적용하고 체험하는 믿음을 가지지못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르다와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질병이라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믿고 있지만, 막상 나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만나서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면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금방 이루어지지 않고 쉽게 응답되지 않으면 기적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르다와 같은 신앙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역사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르다처럼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만 현실 문제에 부딪치면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 믿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화석화된 신앙을 깨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 해결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순간에도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함으로 믿음으로 나아가되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때까지 참고 인내하고 기다려야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나에게 없다면 그 믿음을 주시기를 오늘 이 새벽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기도하셨지만,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라는 마르다의 고백은 비록 오빠는 죽었으나 지금이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구하면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24절에서 마르다가 마지막 날의 부활만을 고백한 것이나
제39절에서 정작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무덤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을 때
마르다가 이미 썪어 냄새가 난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아 마르다가 오빠가 즉시로 살아 난다는 것을 믿고 한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는 마르다였지만
이미 죽어서 썩어 냄새나는 자신의 오빠를 당장 다시 살려내실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21,22절을 연결하여 해석해보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만약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오셨더라면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이것은 마르다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마르다의 훌륭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나, 꼭 구해야만 들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알고 있으나 하나님 그자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이적과 기적을 베푸실 때 기도하지 않고 말씀만 하시므로 이루어진 사례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해야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새벽 미명에 한 적한 곳에서
기도하셨고, 때로는 혼자 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에게는 기도 생활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도해야만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도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평상시에 기도를 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구약의 모세나 사무엘이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모든 기적이 예수님의 기도로 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으시고도 많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니 마르다와 같이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성도이고, 여제자라도
아직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완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니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약의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나 의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시므로 그것을 확실하게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셔야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일이든 능히 하실 수 있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왜 기도를 하신 후 나사로를 살리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기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기적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목사님이나
능력이 많은 부흥 강사님이 기도해야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도 잘못된 믿음입니다.
내 믿음으로 내가 기도해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물론 의인의 중보기도도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하지만 자신은 간절한 마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기도해서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자기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을 위해 기도부탁하고, 취업을 위해 기도 부탁을 하고
가족 중 누가 병에 들면 치유되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새벽기도 한번 나오지 않는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까요?
중보기도해주는 사람보다 그 누구보다도 더 자신이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하고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말씀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믿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23.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지금까지 마르다의 말을 듣기만 하셨던 예수님께서 마르다에 하신 첫마디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란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마르다가 가장 간절히 바라고 듣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마르다와 그녀의 가족이 가장 바라고 원하는 말씀이지만
마르다는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되어지고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진 것만 믿으려 합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즉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고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잘 알면서도
실제 자신의 생활에는 그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들을 분석하거나 평가할 만큼 우리의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가 주의 전능하심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할 때
비로소 주님은 그의 놀라우신 능력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네가 기도한다고 세상이 변화되겠나 라고 생각하니 기도회에 나와서 나라와 민족과 세상 열방을 향하여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더라도 형시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질병이 치유되겠나 라고 생각하니 간절한 마음보다는 의심하는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겠나 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면
기도하면서도 근심과 걱정과 염려 가운데 기도하고, 기도하고 나서도 개운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기적은 내가 일으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누가 일으킵니까?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지 기적이 일어날 것인지 일어나지 않을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만 계속하면 하나님의 뜻이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신의 마음이나 교만한 마음으로 말씀을 판단하지 말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계속기도하시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지금도 살아 계시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신앙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기도하지 안으셔도 되는데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달어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되 말씀 그대로 순수하게 믿고 기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