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눅15:25~32 불평하는 큰 아들.

ereducation 2024. 1. 16. 13:43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드립니다. 전능하사~

찬송가 304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315 내주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2:11,12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 새벽에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곤히 자는 단잠에서 깨어나 주의 성산에 올라온 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자가 다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 또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즐거워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5:25~32 불평하는 큰 아들.

 

1511~19은 탕자에 초점을 맞춘 말씀으로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의 방탕과 궁핍, 그리고 회개.

15:20~24은 아버지에 초점을 맞춘 말씀으로 아버지의 용서와 기쁨의 잔치.

오늘 본문 15:25~32은 큰 아들에 초점을 맞춘 말씀으로 맏아들의 불평과 아버지의 권면입니다.

 

1.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도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25-30절은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장남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탕자비유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계시냐 하면 바리새인들에게 하고 계십니다. 왜 바리새인에게 이 탕자 비유를 말씀하셨나 하면 (15:1,2)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였다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여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아들은 당시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나 창기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고,

장남은 바리새인을 지칭한다는 것을 우리가 미리 알고 말씀을 보시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사랑이 없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인들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엄격한 종교 규례에만 집착하여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23:4) 정죄와 비판하는 일에만 익숙해 있어서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못마땅해 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선 장남은 작은아들이 아버지께 용서 받는 일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그 잔치가 회개하고 돌아온 작은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기쁜 잔치라는 사실을 알고는 도리

어 크게 노했습니다 (28).

죄인된 작은아들이 마땅히 아버지께 정죄받고 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잔치까지 벌이고 환영 해 주는 아버지의 처사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장남은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예수님을 원망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또한 장남은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과 뜻에 불순종했습니다. 자기은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섬겼다고 자신을 드러내지만(29). 아버지가 가장 바라는 작은아들을 되찾아 오는 일입니다.

아버지가 나와 잔치에 참여 하라고 권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세는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이 만든 인본주의적인 규례들은 철저히 지키면서도 정작 예수 믿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고 불편해하고 대적하며 훼방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가장 큰 뜻에 불순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끝으로 장남은 아버지를 아주 인색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29).

이는 당시 율법주의적인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주 무섭고 두려운 심판주로만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독생자까지 이 땅에 보내 죄인을 구원하실정도로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분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종교 생활도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큰아들은 돌아 온 동생을 자기 형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아들’ (30)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를 재산을 창기와 함께 탕진한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장남처럼 잘못된 자기 우월감에 빠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고 독선적이며 무자비하고 관용도 모르는 비정한 사람들이 됩니다. 용서도 사랑도 모르고 정죄와 비판만 일삼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런 종교인들은 맛잃은 소금이고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무익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본인 자신에게도 아무런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과 함께 사랑과 덕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밷후1:5-7).

사랑의 눈과 사랑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바라보아야 예수님의 십자가도 이해가 되고 그 교훈도 깨 달을 수 있습니다. 종교란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시키고 기쁘게 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니다.

이 진리에 무지한 사랑 없는 종교인들은 참으로 불행한 자들입니다.

내가 사랑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샤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팽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연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샤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자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나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8)

 

2. 우리에게 주신 특권과 의무를 선용해야 합니다.

31, 32절은 분노하는 큰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먼저 큰아들에게 내것이 다 네것이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 다음 잔치를 벌인 이유에 대해서는 잃었던 동생을 다시 찾았기에 잔치 를 벌이는 것이라고 설 득했습니다. 큰아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축낸 것을 자기의 재산을 허비한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도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다만 은혜로 나눠 준 것입니다.

아버지가 송아지를 잡은 목적은 그저 즐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합니다(4:22). 모든 인류 중에 하나님의 선 민으로 선택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19:6). 제사장은 희생 제물로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시키는 일을 합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내것이 다 네것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선 종교적 특권입니다.

바울 사도는 (9:4,5)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 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하나님이 함께하는 특권을 누렸고, 하나님의 선민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율법도 주시고 구세주 그리스도를 그들 가운데 나게 하시는 등의 특권을 주신 것은 그들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 이방 죄인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의무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특권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외면했습니다.

율법과 예배도 자기들 마음대로 변형시키고 자기들의 규례를 하나님 명령보다 더 중요시 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사죄와 사랑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정죄하고 죄인들로 낙인 찍어 공동체에서 쫓아내기에 바빴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과 율법을 전해야 했음에도 할례 받지 않은 자와는 같이 식사도 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여러분(32)아버지가 장남에게 동생을 되 찾은 일로 인하여 잔치 벌이는 일이 합당하다고 가르친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종교적 특권을 죄인들에게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세리와 창기같은 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럼에도 바리새파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거절하고 그리스도까지 대적하여 죽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들과 같아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큰 특권과 의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은사를 풍성히 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0:22,23)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는 특권도 주셨습니다(16:17,18) 그리고 이런 특권은 모두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의무를 행하라고 주신 것입니다(1:8) 우리는 저 무지한 바리새인들같이 이 특권과 의무를 사용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린 마음을 지니고 만민에게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의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특권과 의무를 망각했기에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빼앗아 우리 이방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한번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되겠습니다.

각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특권과 의무에 최선을 다합시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회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회와 항상 함께 었으리라 하시니라" (28:18-2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를 멀리 떠나 허랑방탕하다 돌아온 작은아들은 결국 우리같은 이방인들입니다. 불신앙과 죄악 속에서 살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또 장남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상실한 유대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에 굳게 뿌리 박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고 의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에 준행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