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말씀에 의지하는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스2:1~20)

ereducation 2023. 9. 16. 11:42

1.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2장은 70년전 바벨론에게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이 바사의 고레스의 귀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로 돌아온 명단이다. 1절을 보면 “바벨론으로 갔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라고 하였다. 이는 포로되어 간 자들 모두가 돌아 온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만이 고국으로 귀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고레스의 귀환 명령을 듣고도 이스라엘로 돌아 오지 않은 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로 귀환한 자들은 대부분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다(1:5). 즉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과거 시리아에게 멸망한 북이스라엘에 속하였던 열 지파 사람들은 거의 귀환하지 않은 것이다. 고국으로 귀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방 나라에서 사는 것이 좋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살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왜 망하였나?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도와주시지 않았나?

그들의 죄로 인하여 큰 징계를 받아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나고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죄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만약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이방민족과 동화되고 선민을 상실하고 이방 민족처럼 타락했을 것이다. 그런즉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 포로라는 징계를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징계를 다 받고 회개한 사람들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로 속히 돌아와야 마땅하다. 하나님은 (슥10:9) “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지라" 고 예언하셨다.

우리도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고난을 겪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난도 다 하나님의 은혜다. 왜냐하면 나의 죄를 회개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결국 구원박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아도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그 역시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알고 인내로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는 은혜를 베푸실 때 신속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만일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에 머물면 그것은 결국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가라지 신자가 되는 것이다.

시ㅇ와 현ㅇ이가 예배도 드리고 에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러나 마귀가 역사하여 불신 부모로부터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과거의 추억에 젖어 학원을 찾아오고 머물다 간다. 현ㅇ이는 자기 아빠에게 계속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의 기도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 허락하지 않아 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다시금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은 선택받지 못한 영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유ㅇ이도 우리 이알이 선교비전을 통해 다시 하나님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가르치고 기도해주고 믿음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겠다.

 

2. 우리는 세상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2절은 제1차 포로 귀환자 중 지도급 인사들의 명단이다. 그들은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를 드리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레스의 귀환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먼저 귀환을 준비하여 다른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1:5). 그리고 성전재건에 앞장선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정착하여 나름대로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스룹바벨은 유다의 왕족으로 페르시아에서도 대접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예수아는 제사장 스라야의 손자로서(대상 6:14) 귀족 가문의 사람이다.

비그왜도 그 종족이 2천명이나 되는 인물로서 정착한 사람이다(14절;느7:19).

그런데도 이들은 고레스의 귀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가장 먼저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선 사람들이다(5:2).

이들의 귀환이 당연하고도 쉬운 일로 여겨지나? 그렇지 않다. 이들이 귀환하는 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갈대아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모세가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백성들과 함께 고난의 길을 택한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히11:24,25).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바사에서 닦아 놓은 삶의 기반과 명예와 재산을 다 포기하고 황폐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는 삶의 기반은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서 또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고 온갖 어려운 일을 다 헤쳐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사에서 이루어 놓은 삶의 기반과 명예와 재산 등을 아낌없이 포기하였다. 즉 그들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세상의 지식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 것이나 다름없다(빌3:8).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려면 세상 것들에 대해 애착과 미련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부를 쫓아간 부자 청년처럼 된다(마19:16-22). 부자청년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그 길을 가겠다고 예수님을 찾아 왔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너의 모든 소유를 가난자에게 나눠주고 따라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자신의 재물이 아까워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다.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주실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얻는 일에 있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마라. 오직 하나님과 그 구속의 은혜만을 절대 소유물로 여기고 세상의 것들은 쓰다 버릴 배설물처럼 여기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다.

 

우리가 사역을 한다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편히 쉬는 날이 없다. 주중에 쉬는 날이 없으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계속이어진다. 사람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하루라도 일을 떠나서 편히 쉬고 싶다. 그런데 쉬고 나면 또 힘든 여정이 시작되니 지치고 잘못하면 번아웃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요즘 많이 지친다.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싫다 주된 이유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다 하루 정도는 몰라도 계속 하기 싫어하면 다시 마음 잡고 공부하도록 만드는데 너무 힘이 든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저들이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데 언제 또 예배 드리기 싫다고 뛰쳐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바꾸지 못하니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 생각말고 현실에 충실하자.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기자 내가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애썼는데 안되면 화나고 화내면 도망가거나 다시 따라와도 언제 싫다고 도망갈지 모르니 힘쓰고 애쓰고 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열정이 없어지는 것 같고,

아무튼 지혜롭게 해야 한다. 열정을 다해 하되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그래야 번아웃되지 않는다.

 

3. 고난의 때에 더욱 신앙의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

3-20절에 나오는 가문의 조상들은 성경에 그 행적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가문이 어떠한 가문인지 잘 알 수 없다. 3-6절의 바로스 자손,스바다 자손,아라 자손들의 경우가 그렇다.

아라는 여행객이라는 뜻으로 포로 생활 중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가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많은 후손들로 번성하여 귀국하였다.

6절의 바핫모압 자손은 2,812명의 후손을 데리고 귀국하였는데, 바핫모압은 모압의 통치자라는 뜻으로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서 모압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력과 번식력은 대단하다. 포로 생활 중에도 자손을 번성시키고 높은 자리에 오르며,제일 먼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충성스러운 신앙 가문들이다. 즉 그들은 가문도,신앙도 진일보하였다.

우리도 이처럼 고난의 때에 더욱 성장해야 한다. 환경이 어떻든지, 처지가 어떻든지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진보해야 합당합니다. 하나님은 딤전4:15에서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신다. 안정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는 타락하기 쉬우나 고생스럽고 부족한 환경 속에서는 믿음이 더욱 성장되는 것이 원리다.

역사가 그 사실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현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리들은 환경과 처지를 원망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상황과 환경이 어려울수록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고 믿음으로 나아가려고 애쓰게 된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참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고난의 기간이 바로 나의 신앙이 진보되고 성장하는 은혜의 기회라는 사실을 믿고 나가야 할 것이다.

10:38,39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 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 말씀에 의지한 소망은 반드시 현실화됩니다.

7-15절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문의 후손들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이 포로 생활을 어떻게 참고 견뎠는지를 암시해 준다. (7절)엘람은 높은 장소라는 뜻이고, (8절)삿두는 사랑스럽다라는 뜻이며, (9절)삭개는 순결하다 또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다. (10절)바니는 세움받다라는 뜻이며, (11절)브배는 자애롭다라는 뜻이고, 아스갓은 갓은 강하다라는 뜻이다.

아도니감은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라는 뜻이고, 비그왜는 행복하다라는 뜻이며,

(15절)아딘은 여호와께서 영화롭게 하심이란 뜻이다.

이렇게 보면 이 이름들을 포로로 잡혀가 고난받은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처럼보인다.

즉 그들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높일 것이며, 기억할 것이고, 또 자비를 베푸시고 든든한 곳에 세우실 것을 소망하고 산 것이다. 더 나아가 행복하고 즐거운 심령으로 징계를 달게 받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반드시 귀환하게 해주리라고 하신 언약을 확신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가문들은 자신들 가문의 이름처럼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고국 땅으로 귀환하고자 하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소망은 신앙이 있어야 생겨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헛된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간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소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망은 반드시 현실화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헛된 소망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를 걸고 하신 약속이다(골1:23,27).

물론 자신의 탐심에 근거한 소망, 사망의 권세를 의지하는 소망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지 않는다(욥27:8; 31:24; 8:24).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에 의지하여 품은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10:28)‘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가문의 후손들처럼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 언약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자.

그 소망으로 오늘의 고달픔과 고난을 이겨내자. 고난은 잠깐이고 하늘의 영광은 영원하다.

(119:74)“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23:17.18)“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영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결론)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레스의 귀환 명령이 떨어지자 자신들이 포로지에서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귀환한 것은 아니다. 고국으로 귀환한 무리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성전과 나라를 재건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그들의 가문과 수효는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는 학원이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벌어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곳에 여행다니며 여생을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은 헛되고 헛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소망을 천국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이헌신과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작은 벽돌이라도 쌓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보상을 받으려 하지 말고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위로받고 칭찬과 함께 상급을 받으려해야 한다 그것이 영원히 복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