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주 예수를 부르는 자는 구원되리(스1:5,6)

ereducation 2023. 9. 6. 10:47

지난 시간엔 에스라1:1-4에서 바사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귀환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한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고,

오늘, 5, 6절에서는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레위인 중심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본국으로의 귀환 준비를 하는 것과

바사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가지 재물을 주면서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격적으로 귀환이 이루어진 것은 고레스의 칙령이 내려지고 약 1년 후부터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포로 귀환 칙령이 내려졌다고 해서 무작정 귀환할 수는 없다.

귀환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 이스라엘의 땅은 황폐하여져서 귀환한다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인데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그래서 4절에서 고레스가 자기나라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는데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라고 하였고, 그 명령에 따라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재물을 주었다.

모세의 출애굽 당시에도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금의 재물을 주었던 것과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사건이나 출애굽 사건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깨닫고 적용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지만, 구원에 이르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5절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지파가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지파 기타 마음에 감동된 자들만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자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고레스는 분명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하였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가서 건축하라고 하였다.

 

그당시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와서 노예로 생활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범죄하므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되었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였고, 앗수르와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되었고,

바벨론은 바사에게 멸망되어 북이스라엘 9지파, 남유다 3지파, 이스라엘의 12지파 족속들이 다 포로로 잡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사왕 고레스가 남유다 백성들만 귀환하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하라고 한 것인데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귀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에 속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들도 다 귀환하지 않는 무리들이 많았다.

제2장을 보면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은 5만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것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조차도 다 귀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기를 바라셨지만 소수의 사람만 돌아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하여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버리고 황폐화된 조국으로 가서 다시금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두려워 가지 않았을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 안주하기를 바라는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였고,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두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이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많지만 주된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그것을 누리거나 즐기며 사는 세상적인 평안과 유익을 포기하고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16:24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며 노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많은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보다 지금 현실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을 바라고 원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교회 오지 않고, 교회 와서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헌금 드리기는 더더욱 싫어하여 예수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며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고 여러 가지 봉사와 사역을 하는 신앙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다 말씀에 순종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온전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삶이다.

마7:14,15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길로 가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은 적다고 하셨다. 구원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좁은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22:14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기 위하여 좁은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앞길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다. 앞으로도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신앙 생활하는 것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주의 사역을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영적전쟁을 날마다 치루며 살아야 한다.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면서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는 수많은 대적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방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지금도 여전히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그 길을 완주하는 날 우리에게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성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밷후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알이선교비전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이들이다. 택한 자녀들이다. 여기서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난 아이들은 선택 받지 못하고 물질의 도움만 주고 사라진 불행한 영혼이다. 물론 우리가 전한 그 복음이 이곳을 떠나서도 그 아이 심령에 자리하고 있다가 다른 교회를 만나 꽃피울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 확실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정확하고 분명한 복음을 계속 전하여야 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아이들이 집중하여 듣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그러나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듣던지 아니 듣던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말씀을 따라 결과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복음만 전할 뿐이다.

 

2.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선한 일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5절.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여기서 ‘일어나니’ 이 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결단한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어떤 일을 실행에 옮길 때에도 쓰이는 말이다.

 

교회에서 성도들 중에는 성경을 알고 입으로 진리를 말하고 선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진리와 선은 하나님의 속성이지 근본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능력을 주셔야 가능하다.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의와 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의와 진리와 선을 행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세상 죄악의 풍조와 사단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과 이끌려야 진리와 선을 실행할 수 있다.

성령은 환난 가운데서도 기쁨을 주시고,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죄에서 자유함을 주시며,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힘과 용기와 지혜와 의지를 북돋워 주셔서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10:19,20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그러기 때문에 엡5:18에서 사도 바울은 항상 성령의 충만을 받기를 힘쓰라고 강조한 것이다.

 

성도가 의와 진리와 선을 행하는 것은 곧 사단과 싸운다는 의미다.

그리고 자신 안에 남아 있는 타락한 본성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을 행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12:28; 행10:38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사역하셨다.

하물며 육신의 죄악된 본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말해 무엇하는가?

늘 깨어 간구하여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진리와 선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성령에게 사로 잡혀야 진리와 의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살전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알이선교비전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므로 주인 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부흥이 가능하다. 장로가 주인인 교회가 있고, 목사가 주인인 교회가 있다. 그런 교회는 절대로 부흥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바래야 하고, 기도해야 하며 말씀을 가르치므로 말씀이 역사하실 것이다.

 

3. 이웃에게 덕을 베푸는 것은 존귀함을 얻는 비결입니다.

6절은 바벨론 사람들이 고레스의 명령대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온갖 물품을 제공하고 예물까지 드리는 내용이다. 바벨론 사람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귀중한 보물들과 물품들을 순순히 내어주었다 하더라도 마지못해 억지로 내주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런데 바벨론 사람들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두려워서 억지로 내 준 것이 아니라 즐거이 드렸다고 하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도운 것이다. 천사가 아니고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바벨론 사람들은 엄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 순간 마음이 변하여 이렇게 선대할 수 있을까?

이 역시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감동하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평상시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우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무런 호감도 없는데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돕고 나설 수 있었겠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비록 바벨론 사람들의 노예로 살지는 않았다 해도 바벨론 사람들의 경제 생활에 있어 매우 지대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바벨론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바벨론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풍성한 물질을 제공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환을 기뻐해 준 것이다. 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과 덕을 베푸는 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은 비록 이방 땅에서 고된 포로 생활을 하였지만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처럼, 또 다니엘과 에스더처럼 성결하고 덕을 베푸는 생활을 했기에 이방인들에게 존귀한 사람들로 인식된 것이다.

바울 사도는 롬2:7에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영광을 주신다고 하셨다.

또한 롬2:10에서도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게 된다고 하셨다.

또 베드로 사도는 벧전3:13에서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성도를 해롭게 할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선한 행실과 덕을 베푸는 일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모든 불행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다. 적도 원수도 나의 친구로 만드는 수단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산 제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한다. 덕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귀한 열매를 얻게 된다.

12:28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

11:27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엄하리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나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알이선교비전을 출입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으면 학원을 오기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잘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선생님, 착한 학생들, 재미있고 즐거운 학원이라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광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