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8:18~22)하나님을 기쁘시게
시99:4,5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을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시고,
교회를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요18장18~22절.
1. 믿음이 약해지면 비굴한 삶을 살게 됩니다.
18절에서 예수님과 자기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부인한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한심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행동일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자신은 예수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은 사탄이 좋아했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꺼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쉽게 무너졌으며, 예수님의 수제자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형편없이 무너져 내린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도 세상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도 베드로처럼 위기를 만나게 되면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신앙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만나도 믿음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믿음이 흔들리면 비굴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중무장한 애굽 군대가 곧
들이닥치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애굽 병사에게 몰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세에게 원망, 불평하였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에 이끌고 우리를 죽게 만드느냐고 항변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새로운 지휘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울부짖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변에서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세상에서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고 편법과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화되지 못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길은 성령으로 충만한 방법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 해지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하고, 예배자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다짐하고 세상이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합니다.
예수를 믿고 또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예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면 결단코 주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성도로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벗어난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지 살아 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한 가운데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당당하게 밝히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도의 언어와 행실에는 비난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교훈을 묻는 안나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고 당당하게 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인의 회당이나 예루살렘 성전, 갈릴리 바닷가, 산과 광야
등지에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 교훈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씀을 하셨거나 악하고 불의 한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에 크게 감탄하였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인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 대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의 신분을 감출 수도 없고 또 감추려 해서도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의 언어가 거룩하고 우리의 생활이 거룩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또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언어와 행실에
거룩함이 없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거룩하다’ 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별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하다’ 는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구별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며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악이나 불의, 음행, 술수와 같은 일체의 더러운 것들로 부터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은 주께 열납되지 못하며,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게 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보인 것처럼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모든 면에서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의를 쫓고 선행을 힘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듯이 우리의 행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가 모든 일에 선한 말을 하고 의로운 행실을 보이면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지만, 정반대의 모습을 우리가 보여준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는 곳이든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있음을 잊지 말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거룩하게 하여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22절에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실 때에 이를 듣고 있던 곁에 있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지 그른 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또 알고자 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자기의 주인인 대제사장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대해 이처럼 무례한 행위도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안나스의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강아지가 주인에게 잘 보여 간식을 받아먹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위,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잘못 하는 것이 됩니다.
누구든지 사람에게 기쁨을 주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원하는 일 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선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 일지라도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 기쁨을 주고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잘 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다고 찬사를 보낼지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한 자입니다. 성도가 힘써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은 주의 뜻을 쫓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인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므로 세상과는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 임금이 사단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은 세상이 반하나님 적이며, 따라서 여론이나 사람들의 요구를 쫓으려고 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반하나님 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이것은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두 주인을 겸하여 섬겨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중에서 세상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도 붙잡고 세상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맙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1:10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 이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좋게 하고 하나님에게 기쁨을 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위기를 만나더라도 결단코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려 하지 말고 믿음과 신앙의 절기를 지키도록 성령충만함을 주시옵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녀로써 책잡히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거룩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말고 하나님에게 잘보이기를 힘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들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