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7:25-18:2)세상은 하나님에 대해 반역적입니다.
시92:12-15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생명력이 강하여 어떤 땅에서도 잘
자라는 종료나무 같이, 아름다움 집을 건축하는 재료로 유용하게 쓰이는 백향목 같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하나님의 집에 심기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생명을 아름답고 유용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집에 심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평생을 푸르고 청정하게 유익한 삶을 살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208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요한복음 17장25-18장2절.
1. 세상은 하나님에 대해 반역적입니다.
2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영적 상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시10: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반역적이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사람들이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했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지옥 판결을 피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지의 대가가 참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반역적인 사람들을 크게 둘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론적, 지식적으로는 잘 알면서도 끊임없이 반역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율법사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실 정도로 율법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율법을 잘 알 뿐 율법을 지키지 않아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단지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게 된 것을 삶에 실천하는 사람이 참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졌으므로 다른 민족들에 비해 하나님을 알 기회가 훨씬 많았지만
말만 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기에 반역하는 자라고 책망과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마귀의 자식들’ 이라고 하신 것만 보아도
그들의 반역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반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내가 반역자의 무리에 들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리와 신조들을 잘 알고 성경에도 밝으면서도 반역하는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둘째는 이론적, 지식적으로 알지 못해서 반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시급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지만, 그렇다고 말씀을 몰라서 반역했다고 죄가 없지는 않습니다.
모르는 것이 자랑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령,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자연을 통해서 계시하고 계시며, 각 사람의 마음속에 양심을 주시어 그들로 하나님의 법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몰라서 하나님께 반역한 일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불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사 알게 하시고 또 충분히 인내하면서 기다리신 다음에
심판을 하시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아무 사람도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 반역적인 세상과 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반역자와 짝하는 자는 그 역시 반역자로 취급되어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세상을 멀리하고 세상과 그 안에 속한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입니다.
객관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알고 신뢰하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이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역할에 충실해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지성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에 빠져 스스로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어리석음이 그들의 영향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막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최선의 방법은 바로 세상에 복음을 열심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2. 어디든지 주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제자입니다.
18:1절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드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의 동산으로 들어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예수께서는 전에도 제자들과 종종 이곳에 들러서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제자들이 함께 하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가시는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찬장에서 그것을 말씀하셨고 또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으므로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묵묵히 따라간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이미 죽는데까지라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한 상태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잡히시리라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실제로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붙잡히시자 다 도망갔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겟세마네로 향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주님의 참된 제자란 어떤 사람들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된 제자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생사 고락을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참된 제자이고 진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릅니다. 무엇을 하기로 다짐하고 맹세하고서도 너무도 쉽게 깨뜨리는게 인간입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열심을 보이다가도, 고난이 따르고 많은 손실을 감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여겨지면 슬그머니 발을 빼는 사람이 많습니다.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불의가 드러나고 목적이 변질되면 당연히 빠져나와야 합니다.
인간적인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지만 의와 진리되신 예수님을 쫓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일사각오로 따라가야 합니다.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런 사람들 만이 참 제자로 인정을 받고 약속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신실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참된 제자의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를 사랑하고 주의 제자임을 드러내려면 이해 타산을 버리고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과 언제든지 함께 있는 사람이 진실한 제자이며 성도입니다.
3.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2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신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을 팔아 넘길 가롯 유다도 알고 있는 장소였습니다.
가롯 유다는 3년여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끝내고 가실 만한 장소를 어렵지 않게 생각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이러한 사정을 다 아시면서도 굳이 대적하는 자들이 아는 그 곳으로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마치 가롯 유다에게 ‘내가 여기 있으니 와서 체포해 가라’고 알려 주시기라도 하려는 듯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룰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한결같은 태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소망이 있는 성도가 배워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은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귀한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아니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 것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약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하갈과 그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하실 때에도 인정을 끊는 아픔을 참으면서 순종하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백세나 되어서 얻게 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리라고 명하실 때에도 말없이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따랐기에 이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런 모습으로 결단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라면 나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도 이해 득실을 먼저 따지고 선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든지 경건한 성도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대에 응하고자 했을 때에 그는 동족들의 비난을 의식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으므로 사람들에게서 듣게 될 비난을 감수하고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것입니다.
설령 심각한 위기 속으로 들어 가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임을 안다면 피하지 말아야 진정한 성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단하고 행할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신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와 같이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 세상을 성도인 저희들이 사랑하거나 동경하여 세상사람들을 따라 살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든지 유불리와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따라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순종하며, 충성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