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시119:66-70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거짓말로 저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유혹하고
그 유혹에 넘어가서 세상에서 고난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 따라 살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평상시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함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둔하고 무감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오나
저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사옵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도 다 선하시오니
저희들에게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저희가 준행하겠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야고보서1장19-20절
19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고 즉시 순종하고 말씀을 가르칠 때에는 신중히 하라는 뜻입다.
누구와의 대화라도 상대의 말을 먼저 들어주고 난 후 내 말은 하되 성내지 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주장 내 의견이 상대에게 관철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말을 하고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말은 조금 듣다가 잘라버리고 아예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계속하고 안 들으면 화를 냅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대화의 목적이 내 뜻을 전하는 것이라면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내 말을 들으려 하고 결국 옳은 말이면 따라 줍니다.
반면에 아무리 내 말이 옳고, 맞고, 바르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무시를 당하고 있다 생각하고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면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쓸데없이 고집만 부르다가 나중에는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 이르고 맙니다.
여러분들은 부부싸움 잘 안 하시죠? 저는 과거에 아내와 굉장히 많이 다투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고 집사람은 느긋한 편입니다. 저는 이성적이고, 집사람은 감성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뒤 전후 사정을 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하지만
집사람은 일단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해버리는 성격입니다.
그렇다 보니 부부싸움을 하면 이론적이고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보면 제가 항상 옳습니다.
그런데 말싸움을 하다 보면 집사람도 절대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이기려고 끝까지 말 대답합니다.
마지막에는 제가 화를 못 참고 먼저 집을 뛰쳐나갑니다. 그러면 집나간지 30분도 안 되어
집사람에게 전화가 옵니다. 화가 풀리지 않는 제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집으로 돌아오세요” 라고 문자가 옵니다.
그러면 집 나가봐야 갈 데가 없으니 교회에 가거나 센터에 가서 분을 삭인 후 못이긴척하고
들어가서 나중에 화가 다 풀리고 집사람에게
“내 말이 맞는데 그때 내 말을 들으면 될 것인데 왜 안 듣고 끝까지 우겼냐?”고 하면
“당신 말이 옳을지는 몰라도 왜 아내 말을 무시하고 왜 내 기분을 상하게 말해요”라고 합니다.
“그래도 내 말이 옳으면 좀 들어라” 하면 “옳긴 뭐가 옳아요?” “그럼 왜 잘못했다 하는데?”
“내가 뭐 잘못해서 잘못했다 하나?” 아내 말이 맞습니다.
제가 이론적이고 논리적이고 상식에 맞다 해도 사실 세상이 상식대로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마귀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다 하나님 뜻대로 흘러갑니다.
그러니 ‘내 말만 맞다’고도 할 수 없고,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일이고, 내 말을 안 들어준다고 화내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런데 부부관계 뿐만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아이들 셋은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일가친척들도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아이들이 착하다.” “반듯하다.” ,“믿음 좋다.”, “부모가 어떻게 저렇게 자녀교육을 잘 시켰냐” 이런 말을 듣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주일학교예배, 주일대예배, 오후예배를 다 드리게 하고 집에서는 특별히 무슨 일이 생기거나 큰 문제가 생기면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QT식으로 합니다. 사도신경, 찬양, 본문을 정하여 읽고 각자가 깨달은 말씀을 나누고
제가 최종적으로 설교하고 통성기도 후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애들이 예배에 대한 불만은 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상 생활 속에서 공부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강조하지 않았지만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좀 엄하게 대한 편입니다. 거짓말하거나 욕하거나 싸우는 것은 애당초 못하게 했고,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말대꾸를 했다 하면 난리 납니다.
방안에 들어오라 해서 꿇어 앉혀 높고 30분이고 한시간이고 설교 폭격을 합니다.
그럼 아이들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반성하면 기도를 5분이상 해서 내보냅니다.
제가 예수 믿는 아빠로서 아이들이 잘못하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말씀대로 정말 잘 교육을 시킨다고 제 스스로 자부하였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일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의 심성이 착해서 반듯하게 잘 자란 것이지 잘 가르쳐 그렇다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옳은 아빠일지는 몰라도 절대로 좋은 아빠는 아닌 것입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고 고3이 되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기가 되니까, 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에게 대들은 적이 없었는데 딸들은 달랐습니다.
나중에 말대꾸도 하고 반항도 하고 대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권위로 눌렀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하나님 앞에 회개가 되었습니다. “아~ 내가 결코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무서운 아빠이기만 했지, 사랑의 아빠는 아니구나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려 노력하였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였고 아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아니거나, 제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눈에 보여도
잔소리를 하지 않고 넘어 갑니다.
예전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아빠가 하라는 잔소리하고 안 하면 화를 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라 말하고 내 말 대로 하지 않아도 그냥 놔둡니다.
그 대신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는 아내와 자녀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려 하고
예전에는 불만 불평을 절대 못하게 했지만 지금은 불만불평을 터뜨리게 놔두었다가
그래 불평하니 뭔가 문제가 해결 되었나? 아니면 네 마음이 좀 편해졌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아니라고 하면 그래 경험해 봐야 알지
잔소리를 그치고 화를 내지 않으니 가정에 평화와 안식으로 화목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에 앞서 아내와 자녀의 마음의 문이 먼저 열리도록 하고 내가 잘못된 생각과 판단은 아내와 자녀의 뜻에 따르고 아빠가 말이 옳은 말이면 따라 오더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할 때 마다
잔소리하고 혼내고 화내고 징계하고 채찍을 가하신다면
아마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웬만큼 잘못해도 내버려두시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이 1%라면 사랑의 하나님은 99%일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믿음으로 또는 우리의 생각으로 살다 잘못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스스로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잘 혼내고 잔소리하는 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감옥에 들어갔다가 탕감 받고 나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돈 갚으라고 목살이 잡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죄 짓는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리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자녀들과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 보고 들어줄 것은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어떻게 대화하셨습니까?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 그녀의 사정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그녀의 상황에 공감해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고, 그녀의 질문에 친절하게 다 대답해 주셨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니고데모가 영적으로 둔하여 잘 모르고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느냐고 엉뚱한 말을 해도 다 받아 주시고 알아듣도록 다시 설명해 주셨습니다.
병을 고쳐 주실 때에도 38년 된 병자에게도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질문하시고
그 병자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신다음에 혼내지도 않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에게도 그 여인의 믿음의 대답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일부러 들은 채도 안 하시다가
나중에는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매정하게 말씀하셨지만
결국에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칭찬과 함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다 아시지만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다 들어 주신 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이알이 학원 선교비전센터에 나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은 대화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와 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실어증이 아닌 실어증을 앓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대화가 아니라 늘 명령만 듣고 자랍니다. “일어나라, 밥먹어라, 학교가라, 공부해라 게임하지 마라 잠자라”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중3아이는 정말 엄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심하니 나중에도 대답조차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공부하라고 우리 센터에 보냈는데 공분들 제대로 할리가 없습니다.
매일 늦게 오고 왜 늦었냐 그러면 학교에서 반성문 쓰다 왔다 하고, 왜 반성문 썼냐 하면 대답하지 않습니다. 집에는 들어 가지도 않고 친구들과만 어울려 다니고 매일 문제만 일으키고 외박하고 밤새워 게임하고 학교에 가서는 항상 졸고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그래도 센터에 오면 저는 혼내지만 집사람은 그 아이와 상담을 합니다.
그럼 묻는 말에 다 대답하고 자기 말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저희 집사람에게 전화하여 우리 아이 뭐라고 합디까? 하면서
묻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래도 아직도 그 아이는 아빠 없는 상실한 마음, 공허한 마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잡기 못하고 있어 달리 방법이 없어 매일 센터에 오면 먼저 성경읽고 10분 정도 설교하고 기도해주고 그리고 공부를 시키면 입을 열고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십여녀 이상을 그러한 문제 아이들을 만나고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의 마음 문을 열고 공부를 시키고 복음을 전하여 예배를 드리게 할지 연구하며 가르치며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문제 아이들이 신학을 갔다가 상담학으로 전공을 바꾸려 한다고 찾아와 인사하고, 공부 안하고 문제만 일으키던 아이가 자동차 학과를 졸업하여 취업했다고 인사하러 오고,
삼사관학교에 들어 갔다고 인사하러 오고, 틱 장애 앓던 아이가 취업하여 돈을 벌어 엄마에게
대형tv를 바꾸어 주었다는 소식도 듣고, 요리학과를 졸업하고 호텔에 취업한 아이,
그 외에도 대학에 들어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비단 이원리가 부부간의 대화나 부모 자녀 간의 대화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하고 싶은 말을 삼켜서 체하는 법은 없다” 라고 말하였으며,
또 미국 속담에도 “준비된 말이 성공을 부른다“,
“최고의 대접은 손님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고 내 말만 하면 모든 관계가 다 깨어집니다.
자녀들과 대화를 잘 하십니까? 하루에 몇분이나 하십니까?
내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고 이야기할 친구들이 있습니까?
혹시 나와 대화를 회피하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 대화 기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아내가, 남편이, 자식들이, 그 누군가가 따라주지 않아서
짜증이 나고 성이나 화가 나시면 이 구절을 생각하시고 이런 노래를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부려서 무엇하나?
그렇습니다. 세상 내 뜻대로 안 되고 사람 마음을 누가 바꿀 수 있습니까?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내 뜻대로 안 되면 하나님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시고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 뜻대로 되어진다고 믿으시면
짜증도, 성이나 화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만 스트레스 받고 내 몸만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약19절의 말씀을 따라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화도 내지 말아서 대인관계에 성공하고 상대의 마음을 얻어 상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누구든지 간에 상대의 말은 잘 들어주고 상대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이 되는 말을 하여,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많이 들어주고 받아주고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사랑해주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