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만이 양들의 참된 목자이십니다.
시119:24-25.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을 나의 즐거움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상담자가 되신다고
고백하였으며, 설사 내가 완전히 낙심하여 죽게 되는 상황이 닥쳤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고, 새 힘을 얻어 살아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므로 저희들이 밤이나 낮이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찾기 위하여, 내 모든 상황을 하나님에게 아뢰기 위하여, 낙심하고 좌절하고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이 영혼을 소생케 해주시기를 간구하기 위하여, 주님의 전에 나왔사오니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채워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50장 큰 영화로신 주, 요한복음 10장1-3절
1. 그리스도만이 양들의 참된 목자이십니다.
1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실로 진실로는 헬라어로 아멘 아멘을 해석한 말씀입니다.
아멘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으로 두 번이나 반복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고 이 말씀에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의 우리가 나오는데, 요10장에서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목축 풍습을 반영하여
유대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양과 목자의 관계를 비유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팔레스틴의 양 우리는 진흙담이나 거친 돌 또는 가시덤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침에는 그 우리에서 양들을 풀어 놓아 방목하다가 밤이 되면
다시 우리 속으로 몰아넣고 도적들이 양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목자는 문 앞에서 밤을 세워 양을 지킵니다.
그래서 도적들은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갑니다.
양 우리로 들어 가는 문은 하나뿐이데 이 문을 목자가 지키고 있기에
도적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려면 담을 넘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 가지 않는 자들을 절도요 강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빗대어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을까요?
요9:39-41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 눈뜬 자를 출교하였습니다. 그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예수님은 영적 소경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하나님의 양의 생명을 보호하고 양을 위해 수고하는 신앙의 목자가 아니라
양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도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소경으로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자신들이 지닌 교권으로 백성들의 영혼과 물질을 수탈하는데 여념이 없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절도와 강도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 대비시킴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암시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십자가 고난을 약 6개월 앞둔 초막절기가 끝난 시점에서 말씀하셨으며,
이 시점 이후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노골적인 배척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이미 다 아시고 하시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양의 우리는 구원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를 비유하며, 문은 구원의 유일한 방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문으로 들어 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이며,
유대 종교를 대표하는 바리새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문으로 들어 가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가 누구이든 절도며 강도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는
그것이 아무리 많은 추종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해도
영혼들을 도적질하고 죽이는 사단에 속한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성도들을 노략하기 위하여 교회 주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피 묻은 예수의 십자가보다는 좀더 고상하고 관대해 보이는,
또한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축복만이 가득한 구원의 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양 우리의 문이 하나이듯 구원의 유일한 문이 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구원은 모두 거짓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양떼 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시고
양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 되신 그리스도가 가신 길입니다.
예수님은 양의 주인이시므로 정당하고 합당하게 양의 문으로 출입하십니다.
비록 그 문이 희생과 고난의 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가 정해 놓은 진리와 사랑의 문이기에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그 문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양들에게 오시되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길로 오시어 양들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참 목자이시며, 인생의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주님만이 우리들이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목자이심을 믿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세우신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3절에 보시면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양의 이름을 불러 각각 인도하여 내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즉 양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가 참 목자에게만 우리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참 목자만이 양의 우리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문지기’ 란 밤에 순번에 따라 양 우리를 지키던 동료 목자를 가리킵니다.
그는 밤새 양을 지키다가 다른 동료 목자가 오면 그를 위하여 양의 문을 열어 줍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이 문지기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 성령님, 모세, 세례요한 등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문지기를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문지기를 참 목자로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위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문지기는 낯설고 의심되는 자들에게는 결코 양 우리의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자기와 약속한 동료 목자에게만 문을 열어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비유는 예수님 만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우신 중보자라는 사실을 강조해 줍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에서 이 땅으로 보내셨고,
또 그를 다시 천국문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대속 죽음을 담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보다 먼저 천국의 문으로 들 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해 주시고 간구해 주시는 중보자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중보와 구원의 기도는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또한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구원의 은혜를 받는 성도에게만
천국문을 통과할 수 있는 영생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이름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주신 일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천국문으로 들어 가도록 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로 믿어야 합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나 다른 성인들도 중보자로 믿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는 성도,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만 천국문을 열어 주신다는 진리를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그리스도는 나를 알고 계시는 유능한 목자이십니다.
3절을 다시 보시면 예수님은 참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해 낸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에서는 양을 목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보통 양을 전문적으로 목축하는 사람들은 약 300마리 이상을 목축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신기하게도 그 몇백 마리의 양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그 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가령 어떤 양은 ‘얼룩이’ 라는 이름으로 또 어떤 양은 ‘검은귀’ 라는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목자가 수백 마리의 양의 이름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부른다는 것은
그 양의 생김새나 그 양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수억 명의 성도를 양떼처럼 거느리신 큰 목자이십니다.
그래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그 형편과 처지를 아주 세밀하게 살피시고 보살펴 주시는 유능하고 세심한 사랑의 목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지 않는 듯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 주님이 나의 처지와 어려운 형편을 몰라주신다고 불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 대해서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고
또 적절한 방법으로 보호해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주님의 이 세심하고 신실한 사랑을 굳게 믿고 어떤 처지에 있을지 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하게 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우리의 참된 목자 되시고 선한 목자 되심을 찬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보게 하심에 무한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내 이름을 불러 주시고 내 모든 형편과 처지와 상황을 다 아시고 험하고 악한 이 세상에서 주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만 경배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