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7:37~39생수되신그리스도
찬송가 : 172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요한복음7:37~39
1. 영적 갈증을 해소하려면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37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초막절 마지막 날이 되자 서서 크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목마름은 육체의 목마름이 아닌 영적 목마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모여 든 수많은 군중들을 향해 이 말씀을 외치신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고 시들어 있고 영적 갈증이 극심한 상태인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세기 동안 강대국의 식민지로 살아오면서 선민의식이 무디어지고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초막절을 지키고 있지만 메시아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이 사람이 혹시 메시아가 아닐까 기대하다가 아님이 드러나고 그래서 또 낙심하고,
그것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이라 설마 그리스도 하는 마음과
역시나 아니군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영적 갈망에 대해 말씀하심으로 그들을 영적으로 일깨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갈증은 쉽게 느끼고 인식합니다.
조금만 목마르면 금방 물이나 각종 음료수로 갈증을 해소합니다.
사람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갈증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만일 물을 마시지 못하는 기간이 며칠이고 계속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체적 존재일 뿐 아니라 영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혼도 마찬가지로 갈증을 느낍니다. 영혼의 갈증은 하나님과 단절로 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적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점을 치고 굿을 하고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수많은 잡신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서, 자신을 지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고 그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아야만 만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과 하나님의 영적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의 단절로 본능적으로 영혼의 갈증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교이자 신학자인 성 어거스틴은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 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간 스스로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도 애굽의 열가지 재앙을 눈 앞에서 보고
홍해가 갈라지는 체험을 직접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는 물을 먹고도 영적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소식도 없고 내려오지도 않으니
아론을 협박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섬기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에도 그들의 죄악이 여전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이방 우상들을 들고 와서 성전을 더럽히는 일들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단절이 왔고 그로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 갈증인 상태로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 영적 목마름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영적 갈증을 해소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그리스도이시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화목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은 물론 그 회복된 관계를 통해 내면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는 예수님의 말씀은 빈들에 마른 풀 같이 메마른
영혼들이 누구든지 예수께 나아오기만 하면 영적 갈증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2. 교회의 모든 예배와 행사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심으로써 사람들 내면의 영적 갈증 문제를 제기하시며 자신에게로 와서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외치신 때가 바로 명절 끝날,
곧 7일간의 초막절 절기가 끝난 후 성회로 모이는 제8일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3대 명절 중의 하나로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 광야에서 40년간 장막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절기 행사는 7월15일부터 시작하여 7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7일 동안 매일 제사장 중 한 명이 실로암 연못에서 금으로 된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 가지고서 성전의 제단에 붓는 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백성들은 큰소리로 외치고 환호하였으며,
한마디로 도시 전체는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옛날 광야 시절에 하나님께서 반석을 통해 물을 주신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제 메시야가 오셔서 자신들에게 영적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내었던 그 반석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오랫동안 고대해 왔던 그 메시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작 반석이 예표하는 생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어도
전혀 알아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작 초막절 절기의 진정한 주인공이신 분은 제쳐 놓은 채 자기들끼리만 축제를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와 행사들이 예수님 중심이 되기보다 사람 중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것이며, 교회의 모든 예배와 집회는
우리의 대속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 내의 예배와 집회들이 사람들만의 축제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예배와 집회에 설교도 있고 찬양도 있고 기도로 예배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 찬양이라기보다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노래를 부르고,
기도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이기 보다 기복적인 기도를 하고
설교는 오직 예수님, 오직 천국, 오직 복음만을 선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적 설교, 정치적인 설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의 예배 모임들은 일시적으로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런 모임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깊은 영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치 초막절 명절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영적인 갈증을 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께서, 정작 주님의 교회에서 소외 당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는 항상 깨어 기도하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모든 예배와 행사의 주인공으로 참석하실 때, 변화가 일어나고, 생동감이 일어나는 그 교회는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십니다.
38절을 보시면,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곧 믿는 자의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 39절 말씀을 보면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그 생수의 강이 무엇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곧 성령께서 그 사람의 속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39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 하시더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령의 내주가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 및 승천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 이후에 있게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다 수행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기점으로 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성령이 믿는 자 속에
그 거처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의 속에 거처를 정하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물론 성령님은 구약 시대에도 활동하셨고, 예수께서 지상에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성령의 사역은 나실인과 같은 소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특별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하시기 위해 임하신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구약 시대에 성령의 임재는 그 사람의 본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성령께서 특정 인을 감동하시고 능력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그것이 영속적인 내주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에도 성령께서 활동하셨지만 그 역시 예수님과 제자들의 활동 반경에 따라 팔레스틴이라고 하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의 사역과 활동은 특정 인물이나 특정 지역의 경계를 초월하여 전세계의 어느 곳에서 든지 믿는 자 누구에게나 임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부터는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일시적으로
또 특정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주하시는 것입니다.
곧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서, 믿는 자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놀라운 신비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습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혹 성령의 내주를 확신하지 못하시는 분은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믿음을 고백하고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의 내주를 확신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엄청난 사
실에 진정으로 감격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이 주님이 허락한 성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교회 밖은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마시지 못하므로 이미 죽은 상태에 있으며
교회 안에서도 성령의 단비를 마시지 못하여 시들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이 성령의 단비를 부어
교회 밖 세상의 죽은 영혼들에게는 새 생명을 주시옵시고
교회 안 시들은 영혼들은 생기를 찾아 힘차게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