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ereducation 2019. 9. 2. 17:43

사16:1~14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330 어둔밤 쉬 되리니

 

이번주는

이사야 선지자는 15장에이어 16장에서도 모압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멸망하는 모압의 안타까운 모습을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새들이 자신이 만든 보금자리에서 알을 낳고 새끼가 알을 깨고 나와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어미 새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먹이를 물어 날라오면

작은 새끼 새들은 엄마 새가 물어온 먹이를 얻어 먹기 위하여

찌어질 정도로 입을 벌리면서 먹이를 달라고 경쟁하듯이 짹짹거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의 천적인 매가 날아와 먹이를 찾는 어미 새들을 잡아 먹기 위해 공격해 옵니다. 매의 공격을 피해 도망하는 새의 모습이 흡사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와 같다고

 

이사야는 모압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절의 아르논 나루는 사해로 흐르는 강의 하류이며, 모압과 에돔의 국정 지대에 있습니다.

그 아르논 나루에 피난민이 몰려들었지만 그곳은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어미 새를 잡아 먹은 매는 새끼 새들이 있는 보금자리로 향하는데

이처럼, 모압의 딸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흩어진 새끼 새 같을 것이라고

이사야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는 모압의 미래를 예언 하였습니다.

그러한 운명에 처해진 모압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본문 1~5절에서 모압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1절에서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양을 드리라는 것” 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모압이 다윗 왕국 때의 역사를 되새기며

이스라엘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백성과 화친하라는 뜻이지만

영적으로 해석하면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어린양을 희생 제사로 드리라는 뜻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 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3,4절에서 유다의 피난민들을 선대하라는 것 입니다.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고 모압 족속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압이 유다의 피난민에게 삶의 방법을 알려주고 공의와 자비를 베풀어 주고,

도망자 신세인 그들을 숨겨주고 함께 있어 피난처가 되어 주라는 부탁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압 족속은 하나님의 부탁을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유다 민족을 쫓아내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 입니다.

모압 족속이 누구 입니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올 때

아버지가 없는 조카 롯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롯은 아브라함 덕분에 큰 부자가 되었으며, 또, 아브라함은 롯에게 땅의 선택권 먼저 주었으며,

롯이 전쟁 포로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구출해 주었고 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아브라함의 끈질긴 중보 기도로 롯의 가족들이 구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압은 자신들의 조상의 은인인 아브라함의 후손 유다 민족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멸망에서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우리는 심판 중에도 멸망에서 벗어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4절의 토색하는 자, 멸절하는 자, 압제하는 자는 모두 앗수르를 가리키며

그들의 압제가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5절에서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모압은 이것을 거절하고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모압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교만하였으면 성경은 6절에서 모압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모압이 교만하고 심히 교만하고, 거만하며 교만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모압을 교만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포도와 같은 농산물이 매우 풍부하였기 때문에 교만하였습니다.

7절을 보시면 길하레셋 건포도 떡과 8절의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나옵니다.

이것은 모압이 자랑하는 농산물과 그 산지들입니다.

얼마나 풍성하고 풍족하였으면 한때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야셀에까지 뻗어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웃 나라에까지 수출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자랑이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민족은 언젠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열국이 모압의 농작물을 짓밟아 버리고, 그래서 수확의 노래와 즐거움이 사라지고

포도즙 틀에 포도를 밟아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그 오만함 때문에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모압의 멸망을 지켜보는 이사야의 마음은 11절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선지자의 그 마음이 너무나 애절하여 수금같이 구슬프고

너무 울어서 창자가 끊어질 것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모압이 멸망한 첫 번째 원인이 교만이라면 두 번째 원인은 모압이 우상숭배를 한 죄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를 광신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모스를 섬기는 방법은 잔인하고 포악합니다

모압인들은 자신의 소원을 위해서 그모스 신에게 인신공양을 드리는데,

신을 달래기 위해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잘 먹고 살 살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를

그모스의 내 민손 위에 올려 놓고, 불로 인해 뜨거워진 손은 아이를 태워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죄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입니다.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

그 결과 14절을 보시면 3년 내에 모압의 모든 영화가 사라지고 능욕을 당하고

남은 수가 심히 적게 되어 결국, 모압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앞에 심판과 용서의 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나 또한 하나님 없어도 부족할 것이 없다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으로 내 미신 구원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말씀 앞에서 내 모습을 돌아보는 새벽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고 장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이 이룬 것들은 모래 위의 지은 집과 같고 거품과 같아서 영원하지 않을뿐더러

재물도 건강도 지위와 명예도 모든 것이 한 순식간에 다 사라집니다.

결국 남는 것은 허무함과 실망만이 남을 뿐이며 죽음 이후에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사람만이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 갈까요?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는 말씀은 모압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압의 족속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어도

모압의 경고가 이사야를 통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세상 불신자에게만 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온전히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한 채 이리저리 세상을 기웃거리며 사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모압이 무슨 선한 일을 하여 포도와 같은 농산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까?

우리는 무슨 선한 일을 하여 이처럼 풍족한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먹을 것이 차고 넘쳐서 먹고 남은 음식은 음식쓰레기가 되어 수백 톤을 바다에 버리고 있으며

입을 것이 차고 넘쳐서 옷장을 가득 채우고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이 수거함에 넘치고 있으며

아름답고 웅장하고 멋지게 지어진 아파트들이 분양되지 않은 체 남아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인 북한은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들은

깨끗한 물 한 모금, 밥 한끼 먹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며, 우리 주변에서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형제가 누가 있는가? 알려 하지도 않으며 구제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노인팅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복음성가 가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의 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없으면, 나는 한순간도 못 삽니다 주님의 생명이 없으면

이제 내가 사는 것 아니요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시니 오직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 나의 모든 날들도 주의 것 나는 오직 한 분 바랍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 나의 주”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하나님이 하신 것을 잊어버리고 내 힘과 내 노력과 내 의지로 이룬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으시대고 교만한 마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바로 잡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희들은 한 순간도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복을 누리며 살고 있으며,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모압이 그모스를 섬기듯 물질을 섬기고 돈을 위해서 신앙도 저버리며 살진 않는지요.

때로는 교만하고, 때로는 자랑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례히 행하고

오로지 나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 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면서도 악한 것을 생각하고 불의를 행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새벽 저희들에게 주신 말씀을 통하여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고

성령 충만하게 하심으로 주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