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의 쓴물과 엘림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려진 후에야 비로소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바로의 변심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 왔다.
이스라엘 백성은 앞은 바다로 가로 막혀 있고 뒤에는 무시무시한 애굽 병사가 쫓아오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 한 사람을 통해 홍해가 갈라지므로 이스라엘은 구원받고
애굽의 병사는 바다 속으로 수장되어 멸절되는 엄청나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였다.
우리는 나를 나으시고 기르시는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며 산적이 있는가? 나는 부모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무엇인가 나도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가?를 생각해봐라
이와 마찬가지로 나를 지으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감사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잘 아신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 시기 적절하게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어 주신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필요하다고 지금 당장 달라고 외친다.
그것이 지금 받으면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는 주지 않는다고 뛰쳐나가버린다.
하나님 없다고 소리친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니다.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려고 예비해 두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말과 행동을 해야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복의 선물보따리를 풀어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과 행동을 하고 하나님이 하라시는 것은 절대로 안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 달라고 조르고 보채고 안 준다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힘대로, 자기 맘대로 살고 있으니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피곤하고 힘든 것이다.
여러분들 “난 세상살이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요?” 라는 사람 있는가?
“애들아 아빠는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단다” 라고 말하는 아빠가 계시는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은 없다. 세상살이는 고달프고 힘들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말씀 가운데, 기도 가운데,
예배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사람들과 똑 같은 환경과 처지에 산다 하더라도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이것이 하나님 은혜구나’ 하고 느끼며 감사하며 살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사할 때도 감사해야 하지만 감사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솔직히 쉽지 않다. 가난하여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없는데 감사할 수 있는가?
엄마아빠가 싸우는데 ~,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는데 ~, 몸이 아픈데 감사할 수 있나? 힘들다.
그러니 믿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환란을 기뻐하라 하셨다.
왜? 환란을 겪어야 인내를 배우게 된다. 환란 가운데 인내 하면 연단이 된다. 단단하여 진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쉽게 좌절하거나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라. 결국 그 연단을 통해 소망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본죽의 대표 최복이 그녀는 남편의 사업 성공으로 400개의 점포로 크게 성공하였으나 하나님과
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뿐만 아니라 주일까지 어겨가며 세상을 즐기다가 남편 사업이 부도나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되기까지 했다.
병원을 나와 믿음이 회복되어 호떡 장수, 주방보조를 거쳐 요리학원 을 다녀 허름한 본죽을 열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나갈 때 그것이 성장하여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서원 한대로 노숙자들, 빈곤아동, 장애인, 쪽방촌, 새터민 등을 돕고
해외에서 NGO로 활동하며 빈곤 아동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중요하다. 믿음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참고 인내하고 감사하게 된다.
“아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고 계시는구나. 이 고비만 잘 넘기자. 그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여러분은 적어도 중3, 고3, 대4, 군2 연단을 이겨내야 한다.
여러분 중고등학교 때 6년간 원 없이 한 없이 할 것 다하고 실컷 놀고 평생을 힘들게 살것인가?
아니면 남들 다하는 힘든 10년을 참고 인내하고 기다려 그 후에 열매를 따 먹으며 살 것인가?
어느 것이 좋은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든 것이 금방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 참아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배필을 만나고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며
또,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잘 감당하여 천국에서의 상급을 쌓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2.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
홍해의 기적으로 애굽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스라엘이 바로 잘 먹고 잘산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다시 눈 앞에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지 알 지 못한 체 길을 떠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없이 펼쳐진 수르 광야 길을 헤매었지만 파라다이스는 고사하고
물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일 만에 마라라는 곳에서 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물은 써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가?
그 동안 참고 참으며 3일 만에 겨우 발견한 물인데 못 먹는 물이라면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다. 믿음의 사람, 온유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똑 같은 상황, 똑같이 고난 받고 힘든
환경이지만 이스라엘은 원망, 불평했고 모세는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여러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다. 그렇지 않고야 왜 돈이 많은데도 싸우고 이혼하는가?
부자들이 왜 고통스러워하고 타락하고 우울증이 오고 불면증이 오고 왜 자살하겠는가?
진정한 행복은 돈이 많음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돈이 없나? 왜 가난한가? 왜 풍족한 생활을 못하나?
’친구는 집도 좋고 자동차도 좋고 값비싼 PC나 3D TV도 있는데?’,
’친구는 돈이 많아 돈을 마음대로 펑펑 쓰고 해외 여행도 잘 다니는데’
이러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고 상하게 하지 마라.
그런다고 문제 해결이 되나? 오히려 더 비참해지고 속된 말로 열 받아서 더 빗나갈 뿐이다.
차라리 기도를 하라 “하나님 저희 부모님 고생하는 것 보니 제가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제가 우리 가정을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저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어 공부를 잘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저의 재능이 무엇 입니까? 발견하게 하시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제가 부자가 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돕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라. 그리고 노력하라. 그리고 인내하라.
그리고 기다려라. 그리하면 써서 먹을 수 없는 물이 달고 시원한 물로 바뀌듯이
지금은 공부도 못하고 무시당하고 쓸모 없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손 쓰시면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세상이 인정해 주는 사람,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다.
내 한 사람이 변화되면 가정의 저주가 떠나가서 집안의 싸움이 그치고 질병이 사라지며
가난이 물러가고, 건강하고 밝게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가정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3. 사막의 오아시스 엘림, 세상의 오아시스 교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를 지나 엘림에 도착한다. 엘림은 사막가운데 작은 오아시스다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고, 12개의 샘에 샘물이 넘치는 곳이었다.
여러분은 돈이 좋은가? 엄마가 좋은가? 아직은 엄마가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순간 순간 여러분은 엄마보다 돈을 선택할 때가 많다.
진짜? 예를 들어 볼까? “엄마 나 돈 이 만원만 줘 친구하고 시내 가서 놀다 오게”
“엄마 하고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되?” “싫어 재미없어 심심하단 말이야 돈 줘 빨리 친구 기다려”
좀 더 심한 예를 들어 보면 누가 여러분에게 “10억 줄 테니 네 엄마 마귀에게 팔아라”하면
엄마를 팔 사람이 있나? 없는 줄 믿는다. 그런데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사탄에게 예수를 판 이 시대의 가룟유다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정말인지 잘 들어 봐라 맞는지 아닌지?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엄마만 있으면 된다.
엄마에겐 젖이 있고 엄마 품이 있고 엄마와 눈 맞추며 놀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다.
그 어떤 놀이 보다 재미있고 좋다. 그러나 아이가 자랄수록 달라진다. 왜 그럴까?
아이가 자라 엄마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세상은 더 없이 넓다
세상엔 먹을 것도 엄청나게 많고 쉴 곳도 다양하게 많고, 놀 곳은 세상 천지에 늘여있다.
머리가 커져 세상을 맛본 아이는 세상 것이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고 신기하고 세상을 동경하게 된다. 그대신 엄마는 시시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고 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엄마에겐 더 이상 아무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런 만큼 여러분도 변한다. 순수하던 내 아들이 변질 되어 간다.
그렇게 착한 딸이 엄마를 무시하고 공격한다. 귀엽기만 할 내 아들, 딸이 괴물이 되어가고
마귀처럼 느껴지고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그 자녀 역시 세상 속에서 시달리고 고통 받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체념하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고 자신 역시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되고 아이 키운다고
늙어서 아주 낙이 없을 때가 되면 그때서야 하나님 품으로 돌아 온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젖과 꿀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맛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품이 세상 어떤 곳보다 더 편하고 좋으며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할 때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 세대가 이미 경험한 것을
자녀 세대인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들려줄 때 깨닫고 진실로 받아 드리기 바란다.
여러분이 부모님을 떠나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향할 때부터 불행과 고통이 시작된다.
말씀과 함께 먹고 마시고 쉬고 놀고 동행하기 바란다.
그것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고 잠시나마 일부분이나마 천국을 맛보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광야와도 같고 사막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엘림과 같은 오아시스를 만나야 한다.
그곳이 어디이겠는가? 바로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곳 교회가 오아시스다.
교회에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시고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교회에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지친 영혼을 안식시키는 곳이다
교회에는 사랑과 행복이 있다.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교회에는 꿈이 있고 비전이 있다.
왜? 교회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창조주, 구세주,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고 그 말씀이 역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