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라

ereducation 2015. 9. 14. 10:34

사르밧 과부는 어느 날 찾아 온 하나님의 사람을 만남으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엘리야의 말을 믿고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자신과 아들은 먹지 않고 엘리야 선지자에게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테스트에 믿음으로 행동하므로 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고

굶어 죽을 위기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고 목숨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또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병이 들어 잠시 앓다가 손쓸 틈도 없이 갑자기 죽어 버린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문제가 발생한다. 바르밧 과부도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런대도 원치 않는 문제가 생긴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실직을 하여 생활이 어렵게 되거나

가족이 병이 들거나,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문제를 극복해나갈 것인가?

우리 인간의 삶을 살펴보면 문제의 연속이다. 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그래서 일평생 문제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왜 그럴까?

이 세상은 완전하고 완벽한 세상이 아니다. 어느 곳이 완전하고 완벽한 세상인가?

그곳은 바로 천국이다. 천국만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전한 세상이다.

천국만이 근심걱정이 없고 괴로움과 고통이 없는 완벽한 세상이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문제로 가득한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탄의 말을 따라 살기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되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테스트로 인하여 발생한다.

죄로 인하여 발생되는 문제는 하나님에게 회개하면 해결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테스트로 인한 문제는 믿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성경 안에서 그러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가 있다. 그 중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또한 요셉이 꾼 꿈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요셉을 죽이려고 웅덩이로 밀어 떨어뜨렸다.

그러나 르우벤과 유다의 도움으로 죽임은 당하지 않고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갔다.

동생을 죽이려 하다가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린 형들은 그 죄의 대가로 어떤 문제가 생겼나?

그 죄값으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죽음 직전까지 내몰리는 아주 위급한 문제를 만났다.

그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나? 자신들이 지은 죄, 동생을 죽이려 한 죄를 지은 지 13년 지난 후 자기가 죽이려고 한 동생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죄를 울면서 자백하므로 해결 되었다.

반면 요셉은 거부이자 족장의 사랑 받는 귀한 아들에서 이방나라의 천한 종으로 전락하였다.

요셉이 무슨 죄를 지었나? 죄를 지었다면 자신은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형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아버지에게 고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두 번에 걸쳐 꾼 꿈을 자랑 삼아 형들에게 말한 것뿐이다.

그것이 죄인가? 그것은 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으로 팔리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나?

자신을 산 주인에게 나의 아버지가 거부인데 나를 산 값의 10배라도 물려 줄 재산이 있으니

나의 아버지를 찾아가 나를 구해 주시오라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준 그 꿈과 비전을 믿는 믿음으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드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종의 신분이면서도 주인 보디발 다음으로

그 집에서 높은 위치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요셉은 또 두번째 문제를 만났다.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 증거로 감옥으로 들어간 것이다.

요셉이 무슨 죄를 지었나?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 계속 되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다.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강제적으로 덮치자 겉옷을 벗고 도망하였을 뿐이다.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한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요셉은 두번째 만난 문제도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았다.

난 죄를 짓지 않았다. 보디발의 아내가 나를 유혹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뿌리쳤고 강제적으로

나를 성폭행하려 했지만 겉옷을 벗어 던지며 도망하였을 뿐이다라고 항변하지 않았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의 꿈과 비전을 이루시려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 믿음으로 요셉은 감옥에서 최선을 다하였고 간수장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까지 올라 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바로를 섬기던 두 관원장을 감옥에서 만나고

그들의 꿈을 해몽해 주고 결국 그 일로 인하여 애굽에서 총리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최대강국인 애굽나라에서 바로 다음으로 높은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가므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그 꿈, 해와 달과 11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을 이룬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가뭄에 빠진 애굽을 살리고 자신의 족속을 살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 기초를 다지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므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었다.

사르밧 과부도 마찬가지였다. 사르밧 과부는 첫 번째 문제(가뭄)를 믿음으로 해결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난 문제(아들의 죽음)도 믿음으로 해결하였다.

사르밧 과부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어떤 믿음을 보였나?

그것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소연 한 것이다. 만약 사르밧 과부가 자식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소연 하지도 않고 그냥 땅에 묻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말씀을 보면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왜 자신의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내 죄로 내 자식을 죽게 하려고 오셨냐고 원망하고 있다.

비록 선지자를 원망한다 하더라도 선지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식이 죽은 것을 알리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어떻게 되었나? 선지자의 기도로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큰 기쁨의 체험을 하였다.

선지자의 기도로 죽은 아들이 살아난 사건은 예수님이 오시어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예표한 것이고 예수님 자신도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예표하는 사건이다.

이와 같이 사르밧 과부는 두번째 만난 문제도 믿음으로 극복하고 해결함을 받았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많은 문제들을 만나고 있다.

그럼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믿음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그 문제로 인하여 힘들고 고통스럽고 죽음의 위협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꿈을 주시고 비전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이런 문제들을 생기게 하였다고 믿고, 믿음으로 모든 문제들을 극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목사님에게 기도를 요청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다른 사람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의 동정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직을 하던가 중병이 걸리던가 부부간의 문제가 생기던가, 자식이 문제를 일으키면

숨기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그것이 알려지면 이사를 가거나 교회를 떠나버리기까지 한다.

그것은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니다.

나에게 발생되는 문제는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테스트 하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배를 잘 드리고 더욱 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지 달아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고통과 환란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열국의 아버지로 삼으셨다.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고 기름을 부어놓고 곧바로 왕이 되게 하지 않으시고

사울의 죽음의 위협에 당하게 하시고 도망자가 되게 하시고 살기 위해 적국으로 들어가 미친척하고 거짓으로 적국의 부하가 되기도 하면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내가 죽일 수 없다고 살려주었다.

그러한 믿음을 보이므로 결국은 30세에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환란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죽을 병인 암에 걸렸는데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몰래 기도한다고 그 병이 났겠는가? 또는 내가 사업을 하다 완전히 망하였는데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기도한다고 다시 사업이 번창하게 되겠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

사업이 망하고, 중병이 걸리고,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고, 자식이 문제를 일으켜도 그 사실을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다 안다 하여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오직 나와 하나님 과의 관계만 생각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통회하고 자복하여 그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면 그 문제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됨으로 나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된다.

어떤 문제든지 나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큰 문제가 생기면

크게 당황하여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영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고통과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해결된다.

그렇다면 그 어떤 문제라 하더라도 모든 문제를 영적 지도자이신 목사님에게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여야 하고 목사님의 지도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지혜를 주시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신다.

때로는 목사님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목사님에게 개인적으로 기도를 부탁한 것이 소문이 나서

다른 사람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여 목사님에게 상담하지 않고 기도를 부탁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다.

우리의 축복은 목사님의 축복기도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내가 몰래 부탁한 기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 밝혀진다 한들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사탄의 사주를 받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말쟁이 들이 비웃고 놀린다 한들

무엇이 두려운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신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더 빨리 해결되고 내가 소원하고 바라던 일이 더 빨리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사탄의 어떠한 공격과 방해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믿음으로 나가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시고 나를 조롱하던 자들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케 된다.